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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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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아녀~!(제19회) 내 편에 서소서


BY 만석 2009-08-07

 

1부 제 19회


 내 편에 서소서


  우선은 위에 꽂힌 관이 자리를 잘 잡아서 수술에 지장이 없다고. 다행이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이르다 뿐인가. 잘 들어야지.

  “그냥 놔두면 2개월 볼 수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면 6개월 볼 수 있고요.”

  이런, 이런.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환자도 앞에 앉았는데……. 그러니까 환자를 볼 수 있는 기간 아니, 내가 살아있는 기간을 말하는 것이렸다. 그러나 시방은 내 기분 따위가 문제 되지는 않을 터. 딸아이가 묻는다.

  “수술을 하면…….”

  

  “예. 수술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절제해서 육안으로 보이는 암을 모두 떼어내는 근치적 절제술이 있고요. 너무 위험한 부위에 암 덩어리가 있으면 보여도 제거하지 못하는 고식적 절제술이라는 게 있습니다.”

  “근치적 절제술을 받는 경우, 완치는 34~40%. 고식적 절제술이 될 경우는 완치율이 낮아지기는 하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고식적 절제술에 완치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라는 말은, 아마 위로의 차원이겠다.   정적이 흐른다. 아무도 반문을 않는다. 허긴. 우리가 시방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환자의 경우는 표피로 밀고나올 정도는 아닌데, 지금 기관지 뒤쪽이 많이 눌려 있어서 움직임에 이상이 있습니다.”

  

  “이 기관지는 대동맥과 붙어 있어서, 그 부분은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는 고식적  절제술이 되겠지요.”

 “수술의 경우, 당장은 위험요소가 있습니다. 수술시 사망률은 3~4%. 항암제 약물 치료는 당장의 위험성은 없으나 회복이 더디겠지요.”

  나는 멍청하게 앉아서, ‘그러니까 항암치료는 치료만 받다가 죽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자. 이제는 결정하셔야 합니다. 사망률을 감수하고 수술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항암 약물치료를 하실 것인지.”
  명의는 용감했지만 우리로서는 그리 용감할 수가 없다. 당장에 환자를 잃을 수도 있으니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있겠는가. 그이도 아들딸들도…….


  “선생님은 어떤 방법을 권하시겠어요?”라고는 막내 딸아이가 묻는 것 같다.

  “위험 인자는 있지만 수술을 권하고 싶습니다. 성공률이 높으니까요.”라는 그의 대답은 단호하고 짧다.

  “어떻게 해요?”

  “수술 받아야 하는 거 아냐?”

  “그래야겠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아이들의 의견이 모아진다. 아이들이 제 아버지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낸다.

  “선생님이 권하시는데…… 수술 해야지.”라는 남편의 답도 단호했으나, 나를 쳐다보는 그이의 눈이 많이 슬퍼 보인다. 아무도 나에게 수술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고식적절제술이 되지 않기를 빌어야 한다. 반드시 근치적절제술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육안으로나마 보이는 암 덩어리가 내 몸에서 모두 제거 될 테니까.


  이상한 일이다. 극단의 예로 나는 수술을 받다가 죽을 수도 있다. 3~4%의 사망률 속에 내가 끼이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근치적절제술이 해당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근치적절제술에 든다 하드라도 생존 률은 겨우 34~40% 뿐이라지 않는가. 그런데도 나는 담담하다. 남편의 무릎에 엎어져서 어~ㅇ 어~ㅇ 소리 내어 울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니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그 고생을 하느냐고 수술을 거부해야 한다. 왜 영화에서는 그리 멋있게 환자 스스로가 수술을 거부하지 않던가. 그런데 수술을 거부하고 싶지가 않다. 왜냐하면 나는 꼭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는 것 같다. 꼭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시장기를 느끼니 정말 괴이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