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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제18회)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BY 만석 2009-08-06

 

1부 제18회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아침 이른 시간에 핸드폰 운다. 막내 딸아이다.

  “엄마. 상기를 어떻게 해요? 언니랑 금방 통화했는데 알려야 하지 않냐구…….”

  “그냥 둬. 모르면 약이지. 괜히 걱정만 하라구. 오지도 못 할 텐데.”

  “엄마. 엄마가 지금 보통수술을 하는 거유? 아닌 말로 잘 못 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 애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텐데요. 우리도 원망을 들을 거구.”

  

  제 동생을 이르는 말이다. 한국 굴지의 회사에 취업이 되어, 일본으로 파견을 나가있는 내 막내아들. 어느 자식이라고 안 그렇겠는가마는 막내아들은 언제나 내 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녀석이다.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구호로 가족계획을 강요하던 70년대 후반. 나는 배짱도 좋게 네 번째 임신을 했고, 내 뜻대로 두 번째 아들을 낳았다. 내 나이 36이었으니 그때로서는 노산이었다. 내 마음대로 딸도 둘이고 아들도 둘이니, 이제 마지막 산고를 치룬 셈이라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187cm의 키와 80kg을 육박하는 몸매에, 내 시댁의 인물을 타고난 아주 근사한 녀석이다. 나이 20살이 되면서부터 녀석은 우리 내외에게 용돈 한 푼을 얻어 쓰는 일이 없었다. 군에 입대해서 장기하사관으로 4년 동안 복무해 대학등록금 전액을 마련해서 복학을 하기도 했다.


  제 모은 돈으로 영국 배낭여행을 다녀오는가 하면, 취업을 하고 일본에 특파되었다. 출국 준비 중 일본어를 배우며 일본 아가씨를 사귀었다. 그녀는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의 Y대학원으로 한국어 연수를 받으러 온 재원이었다. 둘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한국어를 가르치며 사랑을 하게 되었겠다. 청춘남녀가 서로 눈이 맞는 것은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아들은 출국 전에 그녀와의 결혼을 승낙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들이 어차피 타국에서 외로울 터이니, 그녀가 큰 힘이 되어 줄 것을 내가 오히려 부탁했다. 둘은 그렇게 결혼을 승낙 받고 기분 좋게 출국을 했었다.


  이제 그 아이에게 엄마의 수술을 알리자는 이야기다. 얼마나 놀라고 힘들어 할까. 그동안 막내아들에게만은 엄마의 병에 대해서 함구할 것을 맹렬하게 일렀는데……. 영상통화를 하자며 카메라와 마이크를 설치하고 떠났던 터라, 우리는 매일 저녁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다. 긴 날 어미가 보이지 않자 이상한 느낌을 갖는 것 같아서, 평소에 앓던 위장병이 도져서, 이참에 아주 병원에 입원을 해서 검사를 받노라고만 했었다. 그런 그 아들을 불러들이자 한다. 같이 고민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자 한다. 그도 맞는 말이다. 제 형이 전화를 했다 한다. 엄마가 수술을 받게 됐다고. 차마 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술을 받게 되셨으니 다녀가려냐고 물으니 당장 날아온다 한다고.


  막내가 녀석의 그녀와 병실을 들어선다. 나는 웃어야 한다. 안 와도 되는데……하며 말을 흘리고 그녀의 손을 잡는다. 암병동에 누운 어미가 이상한가 보다. 아들은 왜 암전문병원으로 오게 됐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여기에 위 수술 권위가 최고인 명의가 있어서 옮겨왔다고. 속이 깊은 녀석이어서 눈치를 채고도 말이 없는 것 같다. 녀석의 일본 녀도 내 식구가 되려니까 그런가. 너무 고운 얼굴이다. 일본여성 특유의 그 온순함이 몸에 베여있다. 더 다행인 것은 큰 사위와 달리 그녀는 한국어에 능통하다는 사실이다. 다행한 일이다.


  수술 전 날.

  명의와 보호자의 2차면담. 그러니까 예전의 병원에서 가져온 기록과 새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의 종합 심의가 끝난 모양이다. 수술이 가능한가를 알리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면 동의를 구하는 서식인가 싶다. 1차면담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과 아들딸을 대동하고 잔뜩 긴장을 하고 병실을 향한다. 나만 긴장하는 건 아니겠지. 그이도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막내아들과 녀석의 그녀가, 본사에 다녀 올 일이 있다며 잠깐 자리를 비웠다는 점이다. 명의는 아직도 내 기록을 펼쳐놓고 심사숙고 중이다. 한참 그렇게 침묵이 흐르고무엇인가 결심을 한 듯, 의자를 빙그르 돌려서 우리를 마주보고 앉는다. 수술은 할 수 있는 것일까? 수술도 못하는 건 아닐까?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