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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제13회) 2차 항암은 시작 됐는데...


BY 만석 2009-07-31

 

1부 제13회


2차 항암은 시작됐는데……


  7월 21일. 2차 항암을 하기 위해 다시 입원을……. 1차를 끝내고 퇴원 뒤 꼭 3주 만이다. 엽엽한 막내 딸아이가 입원할 때 입으라며 시원한 원피스를 사다 걸어놓았었다. 새 옷을 입고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나선다. 남편은 모자를 쓰면 머리가 더 빠진다고 말하지만, 그냥은 차마 나서지 못하겠다. 병원으로 바로 달려온 막내딸은 제가 사 준 옷이며 모자로 치장을 한 에미를 얼른 찾지 못했다고 안쓰러워한다. 내 몰골이 알아보기 힘들만큼 갑자기 나이가 들어보였나 보다. 왜 안 그렇겠나. 한심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1차 퇴원 뒤 7일 만에 옆구리의 관을 꽂은 자리에 염증이 생겨서 외래를 한 번 다녀가긴 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3주를 잘 보낸 것 같다. 단골(?)이라고 아침 일찍 불러주더니 병실의 자리도 미리 마련해 놓은 모양이다. 지난 번 대로 그병동의 같은 병실. 침대만 지난번의 맞은편이다. 내 옆 침대에는 말이 많고 억새게 생긴 노인이, 생각지도 못한 폐암으로 입원을 했다며 하루 종일 투덜거린다. 담배 한 모금 빨아본 역사가 없고 술 한 잔 넘긴 적이 없는데, 폐암이 웬 말이냐고 큰소리로 푸념을 하고 또 한다.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데……. 처음 입원할 때에는 몰라서 하지 못했지만, 남들이 하는 대로는 해야겠다. 팔에 주사를 꽂기 전에 해야 한다. 좀 단가가 높은 음료수와 귤 한 묵음씩을 침대마다 다니며 인사로 돌린다.


  2차 항암은 두 병의 링거를 비운 뒤 검은 봉지가 매 달리는 것으로 시작이다. 한 번 경험했으니 이젠 보채지 않아도 척척 알아먹겠다. 어머나! 어머나! 검은 봉지를 매달던 인턴인가 싶은 젊은 의사가 약봉지를 떨어뜨린다. 다시 제 자리에 매달지만 약이 똑똑 흐른다. 약봉지가 찢어진 모양이다. 당황한 젊은 의사가 뛰어다니고 간호사가 들락날락 거리는 것으로 보아, 적잖게 심각한 상황인 것을 알겠다. 한참 후에 봉지를 바꿔 단다. 환자나 보호자야 알게 뭐람. 그리하면 그리 하는 건가 보다 하고 구경이나 하는 거지. 자~. 이제 기계도 조작이 끝이 났기에 시계를 보니 자정이다. 그러니까 내일 정오까지는 똑똑 떨어지는 약물만 바라보며 시간을 축내야 한다. 지루하다. 뭐, 시간을 때울 재미거리는 없을까?


  내 앞 쪽 침대의 환우는 뇌출혈로 들어왔다고 한다. 눈동자만 굴리고는 육신은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생활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으나 간병을 두고 수발을 받는다. 그런데 그 간병인이라는 사람은 그 환우의 보호자만 오면 더 많은 간병료를 요구한다. 다른 환자에 비해서 너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힘이 곱절은 더 든다는 투정이다. 그렇긴 하겠다. 거동이 용이한 환자보다는 내가 봐도 간호가 수월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간병료는 병원이 정한 규칙이 있어서, 더는 요구 할 수 없는 게 불문률이라 한다. 그러니까 재수가 좋으면 간호가 수월한 환자를 만나거나 인심이 넉넉한 보호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재수가 없으면 거동이 용이하지 않은 환자나 인심이 넉넉지 않은 보호자를 만나게 된다. 후자의 경우, 이런 저런 핑계로 간병인이 자주 바뀌게 된다. 이 환우의 경우는 살림이 여의치 않아 딸들이 갹출해서 간병인을 둔 모양인데, 그 딸들도 녹녹하지는  않아 보인다.


  딸들이 간호실에 항의를 하고 다른 간병인을 보내줄 것을 요구한다. 간호사에게 불려간 간병인이 노발대발하느라고, 여기가 병실인 것을 잠깐 잊은 듯하다. 간병인들도 그 소속회사가 있어서 이런저런 뒷말이 회사에 들어가면, 그 간병인은 퇴직을 해야 한단다. 가끔 간병인들은 간병인들대로 모여서서 수군거린다. 몇 호 실의 아무개는 오늘 간병이 끝났는데 따로 수고비를 얼마를 받았다더라고 하기도 하고, 몇 동의 아무개는 보호자가 끼니마다 더운밥과 고기반찬을 바리바리 실어다가 간병인을 먹인다는 등 말이 많다. 나도 이제 큰딸도 출근을 해야 하고 식구들이 저마다 바쁘니, 며칠만 간병인을 두자고 입을 모았던 식구들에게 혼자 있겠다고 고집을 한다. 나는 거동이 용이하니 간병료를 더 요구하지는 않겠으나, 간병인에게 끼니마다 따신 밥과 반찬을 바리바리 실어다 줄 식구도 없지 않은가. 차라리 혼자 적적한 게 나을 것 같다.


  얼라리? 주사약이 거의 바닥을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명히 바닥이 보인다. 아니. 내일 정오까지 맞아야 하는 약이 그새? 시간을 보니 6시를 지나고 있다. 12시간을 맞아야 하는 약물이 6시간 만에 끝을 낼 판이다. 병원으로 퇴근을 한 남편이 간이침대에서 잠이 들어 있다. 많이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도 깨워야 한다.

  “여보. 나, 주사약 다 들어갔나 봐.”

  “……”
  잠결에 무슨 소리냐는 듯이 약봉지를 올려다보던 그이가 벌떡 일어난다.

  “어? 그러게. 다 들어갔잖아?”

  사고다. 의료사고다. 항암을 시작할 때에 약봉지가 찢어지고 약을 갈아 끼우더니…….

  “이 새끼들이……. 뭐하는 거야!” 

  그이가 쌩 바람을 날리며 병실을 나선다. 나는 남편이 화를 내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