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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제8회) 주여. 뜻대로 하소서


BY 만석 2009-07-26

 

1부 제8회


주여. 뜻대로 하소서

  드디어 시커먼 봉지를 뒤집어 쓴, 보기에도 흉물스러운 약 봉지가 허공에 매달린다. 지금까지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도 알 수 있다. 약물이 흐르는 속도를 조절하는 네모난 기계가 도착하고, 간호사가 애타게 기다리던 의사가 달려와서 기계를 조정한다. 기계에 수치가 그려지지만 살펴본들 내가 무얼 알겠는가. 내 몸을 흐르는 약의 속도이지만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똑 똑 떨어지는 저 속도로 24시간을 채워야 끝이 난다 한다. 아침 일찍 사무실의 호출로 병실을 나간 남편이, 궁금해서 벌써 여러 번째 전화를 한다. 공중에 매달린 약봉지야 밀고 다니면 되는 것이고, 기계도 잠깐씩은 축전이 되기 때문에 내 움직임은 용이하다. 그러니 서둘러 올 필요 없다고 안심시킨다.


  병실 밖을 내다보니 나와 똑 같은 약봉지를 달고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답답하기로 말하자면 나도 뛰어 나가고 싶다. 그러나 이 몰골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병원이 집과 가까워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을 터인데……. 아는 사람이 환우일 수도 있고 문병인일 수도 있겠지. 주변머리가 없기는 나도 그이도 마찬가지여서 지금의 동네에서 40년을 살고 있다. 그러니 한 사람만 만나도 온 동네가 떠들썩할 것이로구먼.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외로운 산장(원로가수 권혜경씨 버전)은 아니어도 까짓! 암을 이겨내는 중차대한 작업 중인 데에야 답답한 것쯤은 참아야지.


  앞 침대의 환자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 보인다. 의사들이 달려오고 하나뿐이라는 딸이 숨 가쁘게 병실로 달려든다. 복수가 너무 많이 찼는데 물을 뺄 수가 없다고 한다. 간호사들이 몰려와 환자를 태운 채로 침대를 몰아 주치실로 옮긴다. 내 옆 침대의 아주머니에게 시선을 돌리자 아주머니는 금방 알아듣고는 곧 끝이 날 사람이라는 귀 뜸을 한다. 가끔은 시원한 물도 찾고 미국에 있는 아들을 찾기도 했지만, 더 많은 시간을 고통으로 신음하는 통에 말 한 마디 붙여 보지 못한 환우다. 그녀는 그렇게 무서운 모습으로 내 눈 앞에서 사라져 간다. 누구도 그녀에 대해서 더는 말하는 이가 없다. 그게 병실에서의 약속 없는 룰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고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눕는다.


  내 약봉지는 도통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궁금하다. 검은 봉지를 살짝 들어보니 아이구야~, 아직 2cm도 줄지 않았구먼. 짜증이 난다. 나~ 원, 참. 어쩌자고 그 많은 병 중에 식도암이람. 다른 암을 앓는 사람들은 잘도 먹는다. 먹으면서 병과 싸우는데 나는……. 지금도 저쪽 침대에서는 무슨 파티를 방불케 하는 입씨름이 한창이다. 아마 냄새로 미루어 보건데 튀김닭을 뜯는 모양이다. 나도 좀 더 일찍 서둘렀더라면 튀김닭쯤이야 먹을 수 있었을 것을.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내 남편은 이렇게 사그러지는 내 몰골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은 겨? 측은하기만 하던 그이가 원망스럽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인데 핸드폰이 울린다. 그이가 일이 생겨서 천안을 잠깐 다녀와야겠다고 한다. 아니, 천안이 서울 근교나 되? 잠깐으로 다녀오겠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렇지 않아도 심사가 꼬이던 참이라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그이가 가야겠다고 한다면 꼭 가야만 하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가라고 해야겠다. 다시 전화를 거니 여직원이 받아서는, 사장님은 병원으로 가셨다고 한다. 럴 수 럴 수 이럴 수가. 내가 죽기는 죽을 모양이구나. 허허~. 영감도 마음이 많이 달라졌네. 결국엔 죽기는 죽을 모양인데 내가 이거 공연한 수고를 하는 거 아녀? 마음은 늘 그랬다. 죽음의 문전에서 되지도 않을 안간힘을 쓰고 있는 꼴이라고.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만석아. 누구는 결국엔 안 죽냐? 다~ 죽는 것이여. 그저 좀 일찍 가는 것뿐이지.’라고 자위(自慰)를 한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살긴 살아야 할 터인데…….’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우~우~욱!”

  갑자기 머리가 휭휭 돈다. 아니, 어지럽다. 속도 뒤집힌다. 이를 어째.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는데, 마침 남편이 병실에 들어서는 게 보인다.

  “나, 화장실로. 화장실.”
  올 것이 왔구먼. 체질에 맞지 않으면 그렇다더니. 그럼 이제까지의 고생은 헛수고 아녀?

  매달린 약과 기계를 남편이 어떻게 밀고 뒤따랐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저 뛰다 시피해서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고 머리를 들여 밀고 신음 중이다. 먹은 게 없으니 나올 것도 없다. 헛구역질만 요란하게 해 댄다. 누군가의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큰일이네. 고생하게 생겼구먼. 아무튼 간호사를 좀 불러야겠지?”

  아~. 난 이제 항암이 끝날 때까지 죽었구나. 12시간 이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또 2차 항암은…….

  “주여~. 뜻대로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