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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귤 꽃이 피다니


BY 자화상 2009-07-07


 

재래시장에서 겨울에 금귤이 열려 있는 걸 사온 지 만 2년은 좀 안 된 것 같다. 봄이 되기 전 일단은 열매를 다 따고 가지를 쳐 주어야 다음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 하여 그 말을 믿었다.

 

그랬는데 그 해 여름, 가을이 다 가도록 꽃이 피기는커녕 잎도 꼬부라져 있는 게 다 펴지지 않았다. 실망을 안고 다시 겨울과 봄을 매일 들여다보며 이번 여름이 오기 전에는 꽃을 피우렴. 하며 살피고 달래며 통사정을 하였다.

 

그런데 7월이 오는데도 도통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나흘 전에 기다리다 못해 화가 나서 물을 주며 한마디 했다.

“에라, 며칠 더 기다려 보았다가 꽃이 안 피면 작은 방 쪽 베란다 한쪽 구석에 갖다 두어 버려야겠다.”

그렇게 한마디 하고는 그 후로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냥 습관처럼 옆의 단풍나무에 물을 주며 손이 가서 그냥 물을 주었다.

또 싱고니움 이나 만데빌라에 물을 스프레이 하다 지나가며 스을쩍 뿌려주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한마디로 관심을 끊어가는 중이었다.

 

며칠만인가. 오늘 아침 벤자민에 하얀 진드기 같은 게 있어서 약을 뿌리고 혹시 다른 꽃나무마다 이상 없는지 살펴보았다.

금귤 나무를 보는데 작고 하얀 꽃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하고 가까이 들여다보았더니 세상에 금귤 꽃이었다. 조그맣고 하얀 별꽃이 금귤 나무에 세 개나 활짝 피어있었다.

 

거기다 가지의 잎들 마다 하얀 꽃망울을 잔뜩 품어내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 며칠 만에 이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놀랍고 반갑고 고마워서 감탄을 하였다.

“아이구야. 드디어 꽃을 피워냈구나. 금귤나무야. 미안하다. 이렇게 꽃을 피워 낼 텐데 그 새를 못 참고 험한 말을 했으니. 얼마나 서운 했니. 수고했다. 향기도 참 좋구나. 그래 예쁘게 꽃을 많이 피워라.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면 참 보기 좋겠다.”

꽃을 피우기 전과 꽃을 피워 낸 후의 나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마치 애 못 나는 며느리 타박하는 옛날 어느 시어머니 마음이 이랬었나. 하는 생각에 혼자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큰일을 해 낸 금귤 나무에게 사과를 하고 기념사진도 찍어 두었다. 그 참, 금귤 꽃향기가 치자 꽃향기 이상으로 좋은 줄도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쉰 넘은지 언젠데. 아직도 세상의 모든 이치에서 한 수씩 깨달아 가고 있다니. 나도 참 더디게 살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사람도 저마다 다 자기의 때가 있듯이 꽃나무 하나도 지 때가 있는 것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마음 상해하였다니. 에고 부끄러워.

 

내일은 부드럽고 조그마한 붓 솔하나 사러 가야겠다. 들으니 벌 대신 붓 솔로 이 꽃 저 꽃 찍어 주어야 열매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정성들이면 우리 집 베란다 금귤나무에 올 가을이 풍성하게 잔치 열려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