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생활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살면서 참 여러 만남을 경험하게된다.
또래 친구들이나 지인들, 또는 집안 어른이나 교회 분들, 봉사하는
영성훈련에서 같이 섬기는 젊은이들과 나이드신 어른들....
대학강단에 서는 큰딸 아이가 종강을 하면서 가르치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글과 함께 블로그에 실었길래,
읽어 보니까, 제자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애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어서 아주 따뜻한 감명을 받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밝은 아이의 성격 탓도 있지만,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주위의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바른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로서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내게는 병석에 누워있는 오빠가 있다.
군인 장교였었고, 나이 드셔서는 목사님이셨다. 74살이신데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원에 계신지가 3개월이 되어 간다.
자녀가 없으신 오빠를 보면서, 그의 말년이 외롭고 또 외로운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형제들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 삶을 각별히 안타까워 하는 사람이 없다는게....
두번째의 아내는 생활고에 쫒기면서, 어떤때는 정말로 못견뎌 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빨리 뭔가 결정이 나기를 바라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부의 애정도 건강 할때만이 존재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
하면 씁쓰레 하다.
지금은 간병인을 쓰고 있지만 얼마간 내가 병원에 가 있기도 했었다.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모습들이 우울 해서 내가 병이 날 지경이었다.
정확하게 알수 없는 수많은 약들은 링거를 통해 환자의몸속으로 들어 가고 수도 없이 검사를 위해 해가는 채혈과,
간호사들의 체크, 또 체크.....
옆에서 바라보는 것으로는,
고통을 실감할 수 없으니 그저 짐작으로만 알수 있는 환자의 고통...
내생각도 생활도 어쩔 수 없이 피폐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두통이 오기도 했고,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신록이 어떤 때는 노랗게 보이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은 사람은 누구나 꼭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난 그것 보다 사는 동안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한 사람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에 슬퍼하고 못견뎌
하는 사람이 적어도 몇몇은 존재해야 만 살았다는 보람을
느끼지 않겠는가 말이다.
누구나 한번은 가는 것인데,
자식이고 정인이고 친구고 무에그리 중요하랴만은 오빠를 옆에서 바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월남을 2번씩이나 갔었고, 더군다나 목회를 하셨던 어른인데, 그의
말년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몇년 전 갑자기 남편이 쓰러져 입원을 했던 그때,
우리 세아이들과 내가 경험했던 병원생활은 어땠었나?
아이들이 아빠를 위하고 섬기는 것을 옆에서 보는 이들이 칭찬을
많이 했었다.
밝고, 긍정적이고, 순종하던 아이들.... 우린 같이 울기도 많이 했고,
하얗게 밤들도 새면서 서로 위로 했었다.
그때, 가족의 필요성과 서로의 결속을 다짐 하는 기회가 되었던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빠에게 그렇지가 못한 것은 .....
애정은 강요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빠는 다정한 분이시지만, 넓게 사람들을 사귀는 성격이 아니고
자기 굴레를 확실히 하고 사신 분이라서 주위에 사람이 없다.
요즘 존엄사 라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데, 말기암 환자를 병원에 두고 있는 가족 입장으로,
\'존엄사\'라는 단어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헤어진다는 일은 싫은 것이다.
더구나, 막연하게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슬픈일이다.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가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