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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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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엄마와 놀아주기


BY ㄴㄴ(된장녀) 2009-05-12

엄마, 늙은 울엄마는 혼자산다

마당 너른 집, 혼자 살기엔 좀 버거운 집에 산다.

 

옆집은 비었고, 앞집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데

할머니가 치매걸려 자꾸만 이상한짓 하며 길로 나 다니더니

이제는 그할머니 보이지 않고, 개소리만 들린다.

 

앞집개는 밥그릇을 엎으고 박박 긁고 괴상한 울음을 운다.

울음소리로 보아 꽤 큰개같은데 낮밤을 안가리고 신경질을 내는 모양이다.

엄마는 그 개소리와 밥그릇 엎으고 긁는 소리가 듣기 싫단다.

가끔 내가 갔을때도 밥그릇 엎어 긁고 차고 난리부리는 소리가 나는데

짜증나고 듣기 싫지만 나야 뭐 금방 집에오면 그소리 안들으니 괜찮다.

 

몇 안되는 이웃들은 다 농사짖고 밭에 나가고 일하려 나가고

엄마랑 놀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참 뒤뚱뒤뚱 지팡이 짚고 마을로 내려가면 경로당이 있지만

엄마는 잘 안간다.

 

언젠가 하도 심심해서 경로당에 가봤더니

몇 할배들은 추접하고 보기싫고 할매들은 10원짜리 화투를 치는데

엄마는 화투 칠줄 모르고,  윷놀이도 할줄 모르고,

술도 못마시고 노래와 춤도 모르고..

이바구저바구 이야기나 주고받고 놀라니 수준이 안맞는 모양이다.

 

자갈마당에 나가앉아 풀을 뽑아도 진도가 안나가고

낮에는 너무 덥고 햇님은 길고 잠은 안오고..

지루한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이자식 저자식 자식들한테 전화걸어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하려면

\"엄마 나 바뿌거든~\" 핀잔을 듣기 일쑤고

창살없는 감옥에 홀로이 날을 지세우니 지겹증 깝깝증이 나도 많이 나고..

그래서 가까이 사는 만만한 나를 자꾸 불러올린다.

 

거의 매일 무슨 구실을 만들든지 나를 올라오게 하지만

며칠 가고 건너뛰면 그 다음은 강도를 높여 나를 부른다.

 

\"내가 마이 아파야, 밤새도록 잠을 한숨도 몬잔다. 병원에 가바얄따\"

\"꿈에 너거 이모(엄마의 여동생, 돌아가심), 호계 히(엄마의 언니, 돌아가신 이모들 중 한명)

정미소 히(정미소 하던 큰이모. 돌아가심)도 비고

넉아부지가 와가 손을 끄직고 자꼬 가자한다\"

 

\"언양 가자, 넉오래비(오빠야)가 어제밤 꿈에 비는데.... \"

 

그 외,

목욕가자, 장에 가자, 병원에 가자, 포항가자, 감포가자, 울산가자, 대구가자..

가고 싶은데도 많고 묵고싶은 것도 많고 사고싶은 것도 많다.

 

그때마다 엄마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하지만

그 절반 정도는 어디든지 차태워 훠이훠이 다니는데

갔던데 자꾸 가고 먹었던 음식 자꾸 먹으면 싫증도 잘 냄으로

참 까다로운 노인네라 보통 큰일이 아니다.

 

..

오빠는 고엽제 후유증이 심해 사경을 헤메고 있기 때문에

자기 꼴 보여주기 싫어, 특히 엄마한테는 더 보이기 싫어

나한테 전화걸어 \"절대로 엄마 모시고 오지말라\" 부탁했다.

\"어버이날도 갈 수가 없으니 니가 엄마 모시고 엄마 좋아하는거 사드리고

우리집에는 엄마 모시고 오지마래이, 그리고 내가 혹시 무슨일 당해도

엄마한테 말하지말고, 놀래지도 말아라\" 한다.

 

오빠는 끝내 내게 웬쑤갚을 기회를 주지않고 먼나라에 갈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

오빠네 데려다 달라는 엄마를 차에 태우고 황성장에 가자고 나갔다.

어차피 오빠네 안가려면 가까운데서 몇시간 엄마데리고 훠이훠이 해야되는데

장터에 가자니 너무 뜨겁고 주차할 곳도 마땅찮고 살것도 별로 없고

하여 엄마를 모시고 대형마트에 갔다.

 

엄마는 손수 마트수레를 밀고 시원한 마트로 들어가니

볼것도 많고 살것도 많고 사람구경도 하고..

좋다. 탁월한 선택이다.

수레를 밀고 다니니 불편한 몸을 의지하기에 지팡이보다 수월하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도 잘가고

햇볕을 직접 쪼이지 않으니 피곤도 덜하고..

이보다 더 좋을수는 없다.

 

우유도 사고 자잘한 살림도 사고 편한 신발도 신어보고 하나 사고..

기분 좋아지면 \"니꺼도 하나 사라\" 인심도 쓴다.

 

잘됐다.

더운 날씨에 하릴없이 기름 태우며 길로길로 헤메지 않아서 좋고

돈절약, 시간절약, 실속도 챙기고..

1석3조, 오늘은 나도 기분좋게 잘 놀았다. 으쓱^^

 

엄마랑 놀아주기 신종 프로그램 개발.

1주일에 한번은 재래시장, 1번은 목욕탕, 1번은 대형마트,

됐다. ㅎㅎㅎㅎ

 

어무이~  한꺼번에 다 사지말고 쪼매씩 사고 또 사러 갑시데이~

댓낄이다.

 

`09, 5, 10일

토함산 된장녀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