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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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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진실


BY 선물 2009-04-10

1.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만나면 언제나 편안한, 성당 주일학교 교사할 때의 친구들로 벌써 25년 지기지우다.

서로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어머님이 한 달 동안 형님 댁에 가 계셨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얼마간이라도 편했겠다고 한다.

아니라고 답했다.

모두들 의아한 눈빛이다.

다시 돌아오신 지금이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안 계신 동안 누리는 편안함이 더 불안했다고 했다.

하루하루 날짜가 가는 것이 아슬아슬해서 오히려 맘고생이 심했고 차라리 돌아오신 지금의 맘이 더 평화롭다 했다.

친구들은 역시 젬마다운 생각이라며 웃는다.

역시 넌 4차원이야 라는 말을 덧붙이는 친구도 있다.

다들 웃다가 잠시 한숨을 내쉰다.

그만큼 힘들단 뜻이구나, 헤아리며 내쉬는 한숨.

 

어머님 돌아오신 뒤로 정말 차!라!리! 편안하다.

형님이 어머님께 어떤 말씀들을 하셨는지 아무래도 가시기 전과는 사뭇 달라지신 느낌이다.

우선 예민한 부분이 사라지셨다.

말씀이 온화해지셨다.

되도록 웃으려고 애쓰신다.

그 모든 것에 난 감사한 맘이 된다.

힘들다 하면서도 견디고 살맛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4차원?

좋은 뜻? 나쁜 뜻?

착한 친구가 해준 말이니 전자라고 믿는다.

 

 

2.

 

친정 쪽 가까운 친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대구였다.

평소라면 쉽게 내려갈 수 없었을 텐데 딸아이 반찬 몇 가지 갖고 간다는 핑계로 친정동생 차에 동승해 내려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이 많았다.

참 친하게 지냈고 귀염도 많이 받았었는데 결혼 후로 너무나 소원하게 지냈다.

나를 보더니 다들 하나도 안 변했다는 말을 했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일단은 듣기 좋았다.

역시 내 피붙이들이 모인 곳답게 귀가 즐거운 소리들만 들리는 것 같다.

함께 있는 딸아이를 보더니 꼭 자매 같다고들 한다.

딸은 삐쭉거리는 척, 나는 기분 좋은 척 했지만 어쩜 둘 다 속맘은 좀 달랐을 것이다.

친지들과 나눌 지난 이야기는 참 많았다.

그런데 다들 기억하는 내용들이 조금씩 다르다.

기억은 개인에 따라 달리 저장되어 있어 진실과는 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나를 착했다 하고 좋게 평가했다.

반면 여동생은 나보다 고집이 세고 언니를 이겨먹었다고 했다.

진실과는 큰 차이가 있는 말이다.

옆에 앉아 듣던 동생은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그럴수록 친지들은 그저 말없이 살포시 웃기만 하는 언니 편이 되고 만다.

역시 또 이렇게 언니에게 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동생은 체념했다.

그래도 참아라. 귀여운 동생아. 난 언니잖니.

 

갑자기 사촌 오빠가 다가오더니 핸폰을 건네주었다.

뜬금없이 니 친구야, 받아봐 한다.

어리둥절 엉겁결에 전화를 받았다.

(지금부터 모두 가명)

-여보세요?

-은지가, 진짜 은지 맞나, 니 내 알겠나. 가시나,,, 만약에 모르면 기냥 직이뿐데이. 호호

-누구라고?

-내, 맹자다, 알겠나.

솔직히 모르겠다. 당황스러웠다.

-맹자라고? 그래, 알 것 같기도 한데.

-뭐, 가시나, 모르는갑네. 중3때 우리 한반이었는데.

중3때라면 내 추억담 속에 등장하는 일곱 친구와의 추억 가득했던 학년이다.

-그라모 니 누구 누구는 기억나나?

일곱 친구 이름들이다.

-그래, 잘 알지. 잘 안다.

이때부터 설렘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겹던 사투리가 내 입에서도 마구 튀어나왔다.

-우리 담임 수학선생님이었잖아, 맞재.

맹자의 입에선 귀에 익은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다. 반가워서 그래, 그래 맞장구쳤지만 머리 속에선 계속 맹자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아무리 더듬어도 맹자는 모르겠다.

어설프게 아는 척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계속 버벅거렸다.

드디어 맹자는 나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한다.

-안 있나, 니는 키가 커서 뒷자리에 앉았었다 아이가.

-그래, 그랬다.

-은지 니는....

친지들이 날 예쁘다, 예쁘다 하는 중에 받은 전화라서 이 친구의 입에서도 내가 예뻤던 친구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니는 키 큰 애답게 딱 싱거웠는데...

크윽, 역시나 한마디로 싱거운 친구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맹자가 누군지 짐작도 못한 채로 우리는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한반이었던 다른 친구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나를 잘 기억하는 친구의 입에서도 나와의 추억이야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린 아마 별로 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촌오빠와 한 직장동료인 맹자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오빠의 입에서 흘러나온 내 이름을 듣고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나와 인적 사항이 같았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졸업앨범을 급하게 찾아보았다.

김 명자.

으으으...

사투리가 심해서 명자가 맹자로 둔갑해서 들렸던 것이다.

명자는 친하진 않았지만 잘 기억나는 친구였다.

인상도 좋았고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었다.

얼마 뒤, 명자에게 전화가 왔다.

-은지가, 니 아직도 내 모르겠나. 사진 찾아 봤나.

-누군지 알았다. 니, 사투리가 와 그래 심하노. 난 나가 맹자라 캐서 잘 모르는데도 아는 척 하니라고 혼났다 아이가. 명자 니는 내가 잘 기억한데이. 한쪽 눈에 쌍꺼풀 진 모습이 예쁘장 했는데... 맞재!!

하나도 덜하지 않은 사투리로 명자의 사투리를 큰소리 탕탕치면서 타박했다.

잘 기억하고 있다, 그거였다.

명자도 내가 잘 기억해주니 좋아라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눈 뒤에 내가 대구 내려가면 열 일 제치고 나올 테니 꼭 자기를 찾으란 말로 통화를 끝냈다.

그렇잖아도 추억 뒤지기에 한창인 요즘 추억 속 장면들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친구와 연락이 되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 친하지 못했던 친구였는데도 우린 그 당시보다 더 친해진 감정으로 서로를 불러대고 있었다.

정말 대구 내려가면 만나보고 싶었다. 명자를 통해 연락되지 않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도 인연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되었다.

늘 그렇듯 그럴 여유를 갖게 될 날이 언제 올까 하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한마디 못한 것이 떠 올랐다.

그래, 명자 니는 안 싱거웠다. 가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