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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너 때문이야....


BY 그대향기 2009-04-07

 

 

오월아.

맛사지 받은 얼굴은 좀 빛나니?

전문샵에서 얼굴 만졌는데 봄빛처럼 화사한지?....

오월이 덕분에 잊고 있었던 내 과거가 생각나서 말이야...ㅎㅎㅎ

아픔이 묻어나는 이야기지만 추억인데 뭘.

 

세상 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무경험의 좌충우돌 이야기 시작할까?

해병대 팔각모가 얼마나 멋있던지 앞 뒤 안가리고 가난한

해병대 남자랑 결혼을 하고 나니 후후후후후...................

난 군인들의 월급이 그렇게 낮은 줄은 정말 몰랐지 뭐.

사랑 하나만 있으면 다 해결 날 줄 알았지 무식하게.

삶은 적당한 현금도 필요했고 사랑도 필요하다는 걸 아주 조금 지난 다음에 알았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뜰히 모아뒀던 돈을

결혼자금으로 쓰고 신혼살림하는 재미로 세상 부러울게 없을 그 때.

그 무렵에는 부족한게 없었지.

둘이서만 사는거라 뭐든 재미있었고 알콩달콩 깨소금 볶는 맛이고...

그러다가 첫째가 생기고 군인들의 전통적인 의식 같은 회식자리가 잦아지고

전출입을 하는 동료나 후임 선배.....

그럴 때 마다 지출은 많아지고 난 일이 필요했어.

 

남편의 저금을 좀 헐어서 우린 작은 동네 슈퍼를 차렸단다.

부식도 같이 취급하는 군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동네 슈퍼.

지금이야 대형마트가 즐비하지만 그 때 (22년 전 쯤??)는 동네 슈퍼도 꽤 많았지?

자잘한 생필품과 간단한 반찬거리도 같이 파는 만물상 같은..

어린 큰 딸을 데리고 퍽 열심히 살았지.

남편은 일찍 퇴근해서 가게도 봐 주고 물건도 사다 나르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침장을 보러 오는 동네 아줌마들의 찬거리를 팔고

출근하는 아저씨 군인들의 일용품을 팔던 가게는 그럭저럭 생활비는 떨어졌지.

큰 딸을 데리고 방 둘 딸린 가게에서 우린 참 열심히 살았단다.

푼돈 아쉬운 줄 모르고 생활에 여유도 좀 생기고.

그러다가 웃동네에 가게가 새로 생기고 우린 사향길로 접어 들었고 가게를 처분했지.

 

다른 동네에 아파트가 밀집한 곳에 화장품가게를 냈단다

그러기 전에 난 전문학원에서 맛사지기술을 익히고.

자격증은 안 땄고 수료증을 받고 맛자시샵을 같이 차렸고.

큰 딸을 데리고 6개월을 비싼 수강료 들여가며 아주 착실히 교육받았지.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결석없이 착실히 받았고

학원강사로 부터 아줌마가 아주 잘한다는 칭찬도 받았단다.

화장품  가게 옆에 침대를 놓고 전문 맛자시샵에 있는 기구들을 들이고

동네 젊은 아줌마들한테 전단지를 돌리고......

제법 사람들이 모이고 맛사지 손님도 있고.

넌 내가 맛사지 전문가인 줄 몰랐지?

이 작고 두툼한 손으로 남의 얼굴을 만지리라곤 상상도 못했지?

그 뒤론 다 잊어 버렸어. 내 얼굴도 못해.ㅋㅋㅋㅋ

근데.....작전미쓰.

우리한테 그 가게를 세 놓은 사람은 우리가 젊고 경험이 부족한 점을 이용

그 동네에 우리 가게 앞 뒤로 상가가 들어서는 걸 말 안한거지.

처음에는 훤하던 가게가 조금 지나고 나니 으이구....

상권이 엉망이 되고 말았고 화장품 코너도 상가 안에 생겨버리고

우린 보증금에 월세를 내는 가게가 힘이 들더라~~

다른 사람한테 인수를 하는데 권리금이하 물건값을 얼마나 안 주는지...

돈 받으러 가서 내가 도로 울고 온 일도 다 있다~~

안 주는 사람 앞에서 내가 울고 온 날.

남편이 가서 한방에 해결하고 왔더라.

우리 집사람 눈에 눈물 한번만 더 냈다가는 가만 안 둔다고..그랬대.

 

 

그래서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고.

시장은 그래도 늘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니까.

마침 통닭집을 내 놓으시는 분이 계셨어.

같은 군인가족이었는데 그 가게를 우리가 샀지.

근데..말이지 처음에는 잘 됐다~~??

내 음식솜씨가 좀 기본적으로 있긴 했나 봐.

생전 처음 통닭을 튀겨 손님 집으로 배달했는데 맛있다고....

전에 사람보다 더 맛있다고 그럴 때 얼마나 신나던지.ㅎㅎㅎ

남편은 일찍 퇴근해서 배달도 잘 다니고 참 많이 도와줬지.

난 양념통닭 소스 개발에 힘을 쏟고.

지금처럼 체인점이 아니라 자체개발 소스로 하는 그런 통닭집이었거든.

마늘을 많이 넣고 재료비 안 아끼며 참 열성적으로 했단다.

그래도 곧 안되겠다 싶은 생각은 술을 달라는거야.

늦은 시간까지 통닭 한마리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자는데....

큰 딸은 가게 옆 작은 쪽마루에 새우잠을 자고...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

 

그 자리를 개조해서 장날에 장꾼들을 상대로 하는 밥집을 했지.

추운 날 장 마당에 앉아서 국수 한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하시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많았거든.

난 반찬값은 계산도 없이 이것 저것 맛난 음식을 해서 아주 싼 가격으로

밥상을 차렸지 멀.

ㅋㅋㅋ

결과는?

국수나 수제비를 찾는 손님들한테 쇠고기를 얹어서

내 드렸으니 뻔 한거 아니야?

인심 후한 이야기만 들었지 수입은 우리 가족 입 산거 밖에는...

난 돈 남기고 하는 음식장사는 못하겠더라.

또 뭐 했냐구?

 

음식장사는 다 치우고 깨끗한 장사를 하자.

수입도 정해지는 장사.

그래서 마루를 깔고 가게 문도 고쳐서 유아용품집을 열었지.

베비랜드.

대구 서문시장에서 물건을 남편이랑 골라서 가게를 열면서  우린 꿈에 부풀었지.

그 부근엔 유아용품점이 없었거든.

나름의 시장조사는 하고 열었지.

어떻게든 남편의 수입에 내 수입을 보태서 살림을 일구고 싶었기에.

두려움은 없었고 힘도 드는 줄 몰랐지.

뭐든 신났으니까.

남편은 참 여러가지로 날 믿어줬고 실패가 거듭되도 기 죽이지 않았고.

그 가게를 우리가 산 거였으니 별로 큰 부담도 없었고.

아가방이나 베리라 같은 유명 유아용품이 아니라도 시장 물건 중에서도

제법 좋은 걸로 사다가 진열대에 걸고 아기자기 이쁜 이불들을

진열장에 넣으며 얼마나 예쁘고 고운지....

저 이불을 덮을 애기가 누굴까?.....

베넷저고리 ...애기포대...신발...이불...딸랑이며 젖병.....

신생아가 태어나면 필요한 모든게 다 있었지.

새로운 일에 새로운 손님들.

할머니께서 며느리가 낳을 아기선물을 사러 오면 고마워서 깍아 드리고

맏동서가 아랫동서의 선물을 사러 오면 사랑스러워서 또 깍아 드리고..

뭐가 남겠니?

날마다 시장에 나가서 세월이나 보낸거지.ㅋㅋㅋㅋㅋ

 

그런 중에 둘째가 생겼단다.

난 배가 불러오고 무거워진 몸으로 가게를 본다는게 힘이 들어서

큰 돈을 벌지도 못하고 가게를 그만뒀단다.

처음 우리가 들어가며 들였던 돈을 다 받지 못하고 가게를 내 주던 날.

참 허전하고 아깝더라구.

그 자리에 곧 큰 아파트가 들어 설 계획이 있었거든.

우린 남의 돈을 후벼야 하는 장사먹기는 아니었지.

이문에도 약했지만 정보도 약했고.

그리하여 그대향기의 장삿길은 막이 내렸단다.

번돈?

오히려 마이너스였어.

가게를 새로 오픈 하면서 계속된 지출이 수입보다 훨씬~~많았지.

둘째가 생기고 군인은 너무 널푼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린 전역을 결심했고 퇴직금으로 마이너스를 청산.

남의 빚은 안 남기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부산행을 결행.

 

 

부산에서 아버님이 하시던 사업을 하면서 비로소 제법 큰 돈을 벌었단다.

사람이야 좀 화사하지 못했지만 알짜배기 돈을 모으며 꿈을 키웠지.

시시한 중소기업 사장들보다 더 알찬 돈을 벌면서 통장을 불리고...

애들도 잘 자라줬고 남편의 사랑은 날로 더 진중해졌단다.

시어른들과 시누이 시숙분들과 같이 살면서 맘 고생도 많았지만

그럴 때 마다 남편이 늘 방패막이 되어 줬고 밤마다 남항시장으로

둘째를 업고 밤산책을 나다니며 우동그릇에 우리의 꿈을 담아 먹곤했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재밌더라구~~

그 재미도 잠시.

수입개방화가 되면서 우리는 또 크나 큰 시련에 부딪히고 말았단다.

엄청난 물건을 패기처분하면서 또 빚까지....

말이 그렇지 하루 아침에 통장의 돈이 다 날아가고

그것도 모자라 빚까지 남기며 회사를 그만둬야했던 남편.

참 많이도 힘들어했고 좌절했지만 우린 일어서야만 했어.

달세방이 힘들지경으로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우리에겐 두 딸이 있었고

내 뱃속에는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었으니까.....

 

우린 서로 맞잡은 두 손을 굳게 힘주어 흔들었단다.

어깨를 맞대며 울기도 했지만.... 숱한 밤을....

아이들한테는 가난이나 시련을 남기지 말자며.

실패란 없다.

다만 성공을 위한 끊임없는 과정과 노력이 있을 뿐.

결과는 좀 더 두고 볼 일이야.

남편은 그럴 때 마다 나에게 미안해 했고

죄인처럼 미안하다고 그랬지만 난 오히려 내가 그 모든 일의 시발점을

만든 사람처럼 더 미안하더라.

장사를 한다고 그러지 않았더라면 퇴직금도 고스란히 남았을거고

그 돈으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지금 쯤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남편은 단 한번도 그런 말은 안했지만 난 늘 이 부분이 미안하더라.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결과가 늘 안 좋았으니까.

 

오월아~~

지금은 다 여유가 생겼지만

지난 날을 생각하면 흐유.......

그 순간순간들을 어찌 이겨냈을까??? 싶어.

애들은 어렸고 앞날은 암담했고.

그럴 때 마다 남편은 든든한 버팀목으로 나와 애들을 보듬어 줬고

단 하루도 가족을 나 몰라라~~하지 않았던 성실한 남편이고 아빠였어.

늘 하루하루를 특별한 날들로 시작했던 긍정적인 내 삶의 방식도

그런 날들을 잘 이긴 결과가 아닐까 싶어.

살아도 죽은 것 처럼 사느니 죽을 때 죽더라도 사는 것 처럼 살아보자고

힘들어 하던 남편의 늘어진 어깨에 기대어 울던 밤도 많았지만

내가 그럴 때 마다 남편이 더 힘들어 했기에 난 울지 않기로 했단다.

어느 작가가 그러더라.

 

\"희망...그것은 아침부터 우리 곁에 머물다가 상처투성이의 하루를 보낸 뒤

           저물녘에 숨을 거둔다. 그리고 새벽 여명에 다시 살아난다.\"

 

오월아~~

우린 희망을 밥처럼 먹고 살았다고 봐.

허기진 배를 희망으로 부풀리며

희멀건 국물에 희망이란 찐한 양념을 타서 먹었지.

어린 애들을 키우면서 내일은 맑음이리라.....

그 힘든 과정을 지나면서 남편은 암을 키운 것 같았고 남편은 죽음의 문턱에서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지.

피를 부른 그 고통스런 여러 날들이 남편을 갉아 먹었던가 봐.

세상 모든게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아직은 아니었던가 우리 곁에 남겨 주셨어.

지금의 우리가 느끼며 사랑하는 이 삶을 어찌 희미하게 보낼 수 있겠니?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내렸다.

내 삶의 정원엔 비록 비바람도 있었고

폭풍우에 태풍까지도 휩쓸고 지나갔지만

지금은 화사한 꽃들도 피고지는 푸르른 생명들이 만발하구나.

소낙비도 품었고 타 들어가는 가뭄도 견뎌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이 푸르름이 그 어느 정원의 봄 보다 더 황홀하단다.

오월이 너 때문이야....

나의 과거를 밝히게 만든 너 오월이.....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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