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201

그저 제 생각입니다.


BY 선물 2009-04-01

고3 자습시간에

남자 연예인에게 편지를 썼답니다.

인물이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왠지 푸근한 인상이 사람 좋아보여서 팬레터를 썼지요.

지금 돌아보면 엉뚱한 짓이지만 그래도 그 나이에 한번 해 볼법한 엉뚱한 짓이긴 했습니다.

친구들과 답장 올지에 대한 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벌떼 같은 팬들이 있지는 않을 것 같은 연기자였기에 그래도 제 글을 읽어줄 여유는 있으리라 기대했어요.

 

답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왔습니다.

제가 쓴 글보다 더 긴 답장이었습니다.

사진까지 넣어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소개서까지 자상하게 적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맨 끝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지요.

 

난 묘한 결벽증이 있어서 맞춤법이나 글 내용이 별로이면 답장을 쓰지 않게 돼. 너는 글을 참 잘 쓰는구나.

 

그분은 명문대학교에 다니는 좋은 집안의 연기자였지요.

그때 글을 쓸 때 격식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사실 이 사연은 어쩌면 얼마 뒤 제 추억담에 소개될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연을 소개하는 것은 글에 관한 몇 가지 생각을 전하고 싶은 까닭이지요.

처음 인터넷 세상을 알고 우연한 기회에 한 카페에 가입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올리던 중 정식으로 글을 쓰고 싶단 욕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문학 사이트에 가입했지요.

쟁쟁한 글 솜씨를 뽐내는 빛나는 글들에 주눅 들어 처음 글을 올렸다가 금세 글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용기내어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댓글이 달리면서 반겨주시더군요.

기쁘고 감사했어요.

그런데 몇 편의 글이 올라간 뒤 조심스러운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맞춤법에 대한 지적, 띄어쓰기에 대한 지적, 전체적인 글 흐름에 대한 지적 등 제가 쓴 글에서 잘못된 것들을 가르쳐주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쓸데없이 글은 왜 올렸나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잠시 조금만 생각을 바꾸니 오히려 그분들이 고마웠습니다.

제 글을 정성껏 읽어주시고 또 맘 다칠까봐 조심해가면서 지적해주신 마음들이 읽혔습니다.

당시에 제 컴엔 한글97이 갈려 있었는데 그곳에 제가 썼던 글을 붙여보니 온통 빨간 줄 투성이었어요.

특히 띄어쓰기는 거의 다 틀릴 정도였지요.

그 뒤로는 꼭 확인하고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몇 분의 고마운 지적이 없었다면 전 제대로 써서 글 올려야 할 공간에서도 엉터리로 된 글을 올릴 뻔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컴을 알았습니다.

제가 있던 사이트와 그 전에 가입했던 카페의 중간 쯤 되는 성격의 공간이었습니다.

올려진 글들을 읽어보니 살아가는 냄새 가득한 생생한 삶의 공간이었고 무엇보다 편안함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격식을 제대로 갖춘 글이나 그렇지 못한 글이나 똑같이 호응하고 공감하게 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먼저 알게 된 사이트에서 길들여졌던 저로선 안타까움도 좀 갖게 되더군요.

하지만, 이공간은 처음부터 거창한 문학을 공유하는 곳이 아닌 마음을 나누고 일상의 어려움이나 기쁨 등을 토로하는 곳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저도 금세 적응이 되었지요.

물론 여전히 제대로 격식 갖추고 훌륭한 글 솜씨를 보이는 분들의 글을 만나면 참 기분 좋고 읽는 기쁨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 다 무시하고 그저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드러내고 느끼는 바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분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감동도 얼마나 크던지요.

전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 때 뭔지 미진한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 부족한 몇 퍼센트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역시 저를 다 발가벗기지 못하는 그 무언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딱딱한 어조로 들리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런데 이곳 몇몇님들 글을 대하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맑은 느낌을 받게 되곤 합니다.

거르고 걸러서 정제된 규격화된 글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글.

저라면 어쩜 숨기고 싶었을 이야기들인데도 가감 없이 들려주는 용기있고 정직한 글들.

그런 글에서 받은 감동, 용기가 얼마나 제게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 색깔을 버리고 글을 쓴다면 감동도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짧은 넋두리 같은 글에서 때론 더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잘 쓰지도 못한 글 올려도 될까로 혹시 걱정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건 아니다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글로 인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갖게 된 저 같은 사람이 있음을 아신다면...

우선 저부터도 때론 시답잖은 낙서 같은 글 올리면서 주춤거린 적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분들의 글을 평가하거나 자로 재듯 받아들이지 않고 가슴으로 읽듯이 다른 분들도 그렇게 받아 들여 주리라 생각하니 이젠 그런 주춤거림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었지요.

이곳에 댓글만 달거나 읽기만 하고 쓰기가 주저되는 많은 분들을 글로써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 님들을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