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내가 만약에 이 나이에 갑자기 죽는다면?
그런 상상을 하다가 가슴이 아파오면서 통증을 느낀 적이 있었다.
어딜 다친 적 없고... 누가 때린 것도 아닌데
맥박이 빨라지면서 숨쉬기가 힘들지경으로 아픔이 왔다.
현기증이 나고 발걸음이 나른하다.
봄을 타는 성격도 못되고
시끌덤벙한게 좋은데
갑자기 조신한 아줌마가 된다.
웬 내숭??ㅎㅎㅎ
봄비 맞고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온갖 꽃들이 지는 꽃처럼 시들해 뵈고
마른가지를 흔들며 겨울 잠을 깨우는
부드러운 봄바람도 성가시게 다가왔다.
에이~~
뭐야..
낯이나 간지럽히고 말이야...
땅이나 질척거리게 만들고
잡초들이나 돋아나게 하고..
넓은 정원 청소시간이나 많게 하고..
봄이 왔다고
새봄이 겨울 언 강을 건너 왔다고
맑디맑은 목소리로 비비추..비비추르르...
야산언덕에서 울어주는 봄새소리도
잡음처럼 들리는 그런 날이 있었다.
잰 누구래?
자동차 소리도 시끄러운데 웬????
앞으로만 보고 터보엔진 달고 달려 온 시간들이
바보처럼 느껴지던 날의 어느 오후.
아픔도 없이 주체 할 길 없는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륵...
행복은 분명 나랑 짝하자고 하는데
아무도 모르게 만약에 내가 지금 죽는다면?
누가 가장 슬퍼할까?
남편?
세 아이들?
아님 친정엄마나 오빠들?
시댁어른들?
문제는 그런 남은 자들의 슬픔이 아니라
죽어야만 한다는 나 자신의 깊은 후회와
못 다한 사랑들과 나누지 못한 감사들이지 않을까?
온 세상이 다 푸른 빛의 희망이 넘실댄다 하더라도
내가 만약 죽는다면 그 푸르름은 깊은 절망이지 않을까?.
내게 허락해 주신 시간이 여기까지라면
난 과연 초연히 받아들이며 감사할 마음이 열릴런지..
믿음이 약한 탓이리라.
생명 주심도 또 거두어 가심도
내겐 허락되어진 것이 아님을 알지만
세상 걱정이나 세상 즐거움은 늘 나를 약하게 만든다.
살아있을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하루를 더 산다는 것은 삶의 하루가 더 없어진다는 것인데도
아침 해가 떠 오르면 기쁨이 충만해지고 오늘은....
새 날 오늘 하루는 무얼하면서 기쁠까?
무슨 일을 하면서 주위를 기쁨으로 가득채울까?
서러운 일도..반갑지 않은 미운 손님도
자존심이 상실되어야 하는 일도
좀은 어리숙하고 둔하고
명석하지 않은 머리로 손해보는 계산법으로 흔들어 지우곤
예민하지 않은 성격 주심에 감사하며 살아왔다.
만약에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남편은 재혼을 내가 하랠까?
아님 본인이 할까?
하더라도 너무 급하게만 안했으면...
그래도 사랑했었더라면
몇년간은 내 추억에 잠겨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자기 목숨을 내 주더라도 내가 산다면
그리하겠다던 사람인데...ㅎㅎㅎㅎ
내 욕심일까?
반대로 내가 남고 남편이 먼저 간다면?
난 혼자이고 싶다.
아니..혼자 있을거다.
애들 다 시집 장가 보내고 혼자 남더라도
남편하고의 추억을 빈 가슴에 간직하며
빛 바랜 앨범 속의 사진을 꺼내 보듯
같이 한 시간들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다.
새로운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길 들이는
그 힘들고 고된 작업을 그만 하고 싶다.
지금도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는 그 시간까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으로 무마되어진다고는 해도
서로를 완벽하게 잘 안다는 부부가 몇이나 있을까?
서로를 알면 더 알수록 깊어만 가는 외로움.
사랑했었던 시간만큼 잊혀짐의 시간도 아플 터.
남편이 내게 준 무한한 그 사랑이 다 없어질 시간까지
풀잎에 맺히는 아침이슬까지도 서러우리라.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질 때 마다 그리우리라.
둘이 걷던 거리거리마다
둘이 함께 울었던 시간시간들 마다
녹아 내리고 스며든 그 서럽도록
처철한 기쁨들은 내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하리라.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으리라.
세 아이들 공부며 결혼은 누가 맡아줄까?
다 컸으니 스스로들 알아서 갈까?
금전적으로 빚진 사람이 없으니 그건 좀 편하고
사랑의 빚은 너무 많은데 다 갚질 못해서 좀 아쉽다.
미안하고...
물려 줄 유산이 없으니 그건 좀 미안하네.
유언장을 쓸 만큼 복잡한 재산도 없고
가족관계도 의붓남매 의붓형제가 아니고
단촐하니 의논껏 살아가겠지만
급할 때 엄마 손이 필요하면 그 땐 슬플거야...
애들이.
샘물호스피스 소식지를 받아 보면서 늘 느끼는 마음인데
언제 죽음이 우릴 찾아 올지 모르는 일이라
날마다가 소중한 만남들이어야 한다는 것과
매 순간순간들이 최후의 한 순간처럼
주어진 시간을 후회가 적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
사랑도..봉사도..자신을 돌 보는 것도.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냐는 각자의 개성이지만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에
내 능력껏은 최선을 다했노라는 자부심이 생기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리라.
날마다 최우수는 아니지만 우수쯤은 되는
점수를 스스로에게 매겨 줄 수 있는 자신있는 삶이길.
미리 쓰는 유언장이 눈물범벅이 아니라
생의 전반에 걸쳐 감사함이 묻어나는
그래서 남은 자들에게 아픔이 아닌
아름다운 이별식이 되기를 바란다.
한줄 또 한줄....
미리 쓸 유언장에 남길 글들을
준비하는 차분한 시간을 갖고 싶다.
그래서 꽃피는 봄날이 눈물의 꽃이 아니라
온 몸을 던져 살아 낸 감사의 꽃들만이 만발한
찬란하면서도 값진 땀의 정원이기를.
망각의 축복을 빌려서
아름답지 못한 것
더럽고 추한 것
내가 아팠던 것과 아픔을 준 것
오해했었고 오해를 준 것
어리석은 질투에 마음 아파했던 것
마음밭에 미움을 뿌렸던 것.......
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어린아이처럼 살아지기를.
마지막 한 줌의 재로 내 한 생이 마감되는 날
육체는 비록 허물어지고 영혼은 옷을 벗어버려도
남은 자들에게 잠깐이나마 함께 한 세월들이
기쁨이었노라고 기억되고 싶다.
체증 내려 가듯이 시원한 이별이 아니라
앓던 이 빠진 듯이 후련한 이별이 아니라
더 오래 함께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아까운 사람이고 소중한 이웃이고 싶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심어준
그런 딸이고.. 아내고.. 엄마이고
밑 그림이 한결같았던 한 여자이고 싶다.
바보와 어린아이들은 잘 웃는다지 아마?
그래 그런가 나도 잘 웃는데...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