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은 소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여 단 방울인데 소가 움직일 때마다 느리고 투박한 방울소리를 낸다.
워낭소리가 들리면 방안에 앉아서도 소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영화 ‘워낭소리’는 경북 봉화 오지에 마을에 사는 팔순 할아버지와 마흔살 소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영화다. 소의 주인 할아버지는 어릴 때 한쪽 다리 힘줄이 늘어져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농사일을 하신다. 보통 소의 수명은 길어야 20년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 소는 마흔살이나 먹었다는데 툭툭불거진 뼈마디와 뒤틀린듯한 발톱으르 보니 꽤 늙은 소다.
이 소가 논,밭을 갈아 할아버지의 9남매를 키워내고 공부시키는데 큰 몫을 톡톡히 해냈단다.
할아버지는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농약을 친 꼴을 소를 먹일수없다는 할아버지의 소신으로 손쉬운 사료 대신 매일 소죽을 끓여 소를 먹이니 그만큼 오래 살았을 것이다.
모를 심고 추수할 때도 미련해 보일 정도로 다리를 질질 끌며 일일이 손으로 심고 베어낸다.
멀찍이 떨어진 논에서 트랙터롤 논밭을 갈고, 추수하는 모습의 대비된 장면은 19세기와 21세기를 넘나드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할머니의 지청구는 이 영화의 단연 백미다. 몸이 아파도 쉴 줄 모르는 남편, 할아버지는 농기계,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일일이 손으로 모든 농사일을 다 해야하니
일감이 늘어 할머니는 일을 하면서 계속 신세타령을 한다.
“아이고 내 팔자야”
소리 쳐도 원체 말수가 적고 귀도 잘 안들리는 할아버지는 들은척도 않는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할머니 또한 쉬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밭으로 따라나선다.
혼잣말로 계속 할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없다.
할머니의 푸념이 짜증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지청구를 하면서도 할아버지를 따라 밭으로 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실과 바늘, 해묵은 된장같은 구수한 관계때문이다.
한 걸음한걸음 옮기는 다리가 힘들어 보이는 늙은 소가 끄는 수레에 할아버지는 말없이 타고 논으로 향한다. 쪼그려 앉아 풀을 메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불편하니 숫제 엎드려 기면서
쩍쩍 갈라지고 투박한 맨손으로 풀을 뜯는다. 수시로 찾아오는 두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할아버지.
“아이구 머리야” 할아버지의 두통에 안타까워 영화를 보는 내내 애가 탄다.
그래도 쉬지 않고 미련스럽게 농사일을 하는 할아버지를 마지못해 거들면서
할머니는 계속 지청구를 해댄다.
“일 고만혀”
늙은 소와 할아버지는 오랜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많이 닮아있다.
느린 걸음도 힘겨워 보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고집,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의 엉덩이와, 다리를 절뚝거리며 꾸부정하게 걷는 할아버지는 한 몸이었다. 할머니는 늙은 소가 없으면 일을 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소를 팔라고 할아버지를 계속 졸라댄다.
할머니의 성화에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가기 전 날, 마지막 여물바가지를 소에게 주면서 할아버지는 한숨만 내 쉰다. 늙은 소도 자신의 운명을 아는 지 선량하기 그지없는 그 큰 눈에 눈물이 흐른다.
우시장에서 할아버지는 턱없는 값을 불러 소를 팔지 못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라고 사람들이 싼값에 팔라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집을 피우며 끝내 다시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마 일부러 팔지 않으려고 할아버지는 엉뚱한 고집을 피웠을 것이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동안에도 늙은 소와 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나뭇짐을 실어 나른다.
마당 한 켠에 주인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나뭇단을 가득 쌓아두고 늙은 소는 쓰러진다.
다리를 접힌 소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힘겨운 숨소리와 함께 눈을 감는다.
할아버지는 평생 멍에처럼 코에 꿰인 꼬삐와 목에 걸고 있던 워낭을 벗겨준다.
사람의 장례처럼 소를 장사지내고 평생을 자신과 함께한 소를 땅속에, 할아버지의 가슴속에 파 묻는다.
우직하고 미련스러운 사람을 소에게 빗대어 말한다. 영화속의 늙은소는 진짜 미련하다. 하루쯤은 일터로 나가기 싫다고 뻗댈만도 하건만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해 죽을때까지 주인을 위한 충정이 눈물겨울 뿐이다.
이 영화는 어느 PD 감독의 작품이다.
2005년, 전국을 헤매며 다큐를 찍다가 오지마을인 봉화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늙은 소의 삼각관계를 조용히 멀리서 지켜보며 3년간 찍었단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 관계의 소중함이라는 보편성을 확인시켜주는 이 다큐는 단연 우수한 영화, 아니 PD감독의 훌륭한 독립작품이다.
간신히 발을 떼는 늙은 소의 걸음걸이, 머리가 아프다며 자주 쪼그려 눕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계속되는 할머니의 지청구가 영화를 다 본 후에도 머릿속에서 필름이 돌아가면서 맴돈다.
이 영화는 소의 느림과 우직함의 교훈을 뭐든 빨리빨리를 외치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였다.
정말 좋은 영화다.
요 근래 영화가 상영되고 난 후, 할아버지가 사시는 경북 봉화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간단다.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그 분들을 귀찮게 하는일은 우리가 할짓이 아니다.
그냥 조용히 살아가실 수 있도록 모른채 하고 그냥 영화로만 만족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