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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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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내 딸아이가....


BY 그대향기 2009-01-02

 

 

할머니들 아침 식사가 끝나가고 설겆이를 한참 하는 중에 인터폰이 주방으로 왔다.

남편이 전화를 받으란 말로 바꾼 전화엔 부산에 가 계시는 올 해 아흔의 할머니가

가 계시는 목사님 댁의 사모님께서 날 찾으신다.

새해 인사를 간단히 하고 순간적으로 뭔가가 서늘한 느낌.

\"아침 일찍 어인 일로 전화를....할머니 식사는 잘 하세요?\"

내가 안부를 묻는 말에 사모님께선 힘 없는 목소리로  대답이 들려 온다.

\"그게 좀...통 식사를 못하시고 자꾸 토하시는데 사흘이나 됐어요.

어머님께서 수의를 좀 챙겨 보내시라 하시네요. 집사님이 좀 수고를 해 줘야겠어서요....\"

 

며칠 전에 도무지 음식을 못 삼키시고 어찌어찌해서 좀 넘기시면 금방 토하시다가

김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고 퇴원을 해 계셨는데  호전이 아니라 또 재발이 되셔서

부산의 아드님 댁으로 가셨는데 이젠 ...그만 정리를 해야겠다며 수의를 챙겨 보내시란다.

누룽지를 만들어 뒀다가 입 맛이 없으시다면 푸..욱 ..무르게 삶아서 드리면

참 구수해서 자..알 드셨다며 흐뭇해 하셨는데 이젠 그 마져도 못 드신단다.

성격이 대쪽 같으셔서 남한테 조그만치의 누를 끼치는 일은 안하시고

허리가 땅에 가깝게 꼬부라 지셨어도 여행가방이며 성경책 가방도 손수 들고 다니시던

암기력이 우리 젊은 사람들보다 더 확실하시고 성경책 거의 대 부분을 달달달.....

 

그런 할머니는 생전에 친자식은 목사님과의 사이에 없으셨는데

남매를 입양하셔서 두 남매를 다 목회자를 만드신 대단한 할머니시다.

원리원칙대로 삶을 고단하게 사시면서도 남을 돕는 일에는 열 일 거두절미하고 나섰던

참 실천력이 대단하신 할머니셨는데 이제 그만 이 생의 고단함을 접고

천국에 들어가실 채비를 하신다.

어디 어디에 수의가 있고 속옷은 어느 서랍에 있고 쉐타는 어디에 등 등......

나한테 하나 하나 일러주시던 할머니께서 가쁜 숨을 한번 몰아 쉬시더니

\"최집사야...니는 내 딸아이가......

그래서...내가....다른건 줄거 없고....내 옷장에 보믄.....

분홍색 옷이 하나 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그 옷...가져가거라.

프랑스에서 온 비싼 옷인데....내 옷이 머가 탐이 나겠노마는...

내 맘이다....그거라도 주고 가야..내가 보답이라도 되까 싶어서.....

나한테 딸처럼 잘 해 준거..고마버서...

다 나아서 가머 좋겠지마는 아매도 안되지 싶으다....

꼭 가져 가게래이....

그 동안 너무 잘 해줘서 내가 호강 잘 하고 간다 아이가....

고맙데이.....\"

 

난 전화기를 붙들고 거의 울부짖으며 할머니를 불렀다.

\"왜 그러시는데요?

곧 나아서 오시면 생신잔치도 해 드릴거고

맛있는 거 많이 해 드리면 회복하실건데

그런 말씀은 마세요.

병원 가시면 곧 나을건데...\"

말 끝을 다 맺지 못하고 난 거의 엉..엉..그리다가 흐린 눈으로

불러주시던 수의며 다른 옷을 넣어둔 옷장을 적었다.

며느님의 전화도 끝으로 받으면서 할머니가 준빌 하시는 것 같다며 우린 섭섭한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할머니 방에서 차근 차근 짐을 정리하면서 참 기억력도 좋으셔라~~

어디에 뭐가 있고 뭐가 있고가 딱 딱 정확하시다.

별 헤매임 없이 짐을 다 정리하고 할머니께서 이야기 하시던 그 프랑스제 옷은

찾긴 찾았는데 아직 할머니가 살아계신 관계로 그냥 보기만했다.

분홍색의 긴~~쟈켓인데 크리스찬디올.....

이미 유행도 많이 지났고 할머니께서 오래 입으셔서 여기저기 보풀까지 핀 명품.

할머니는 내게 그 옷의 가격까지 이야기 하시면서 꼭 가져가라고 하신 뜻은

할머니의 이런저런 잔심부름이며 마음을 읽어드렸던 그 작은 보살핌에 대한

마지막 보답이리라.

 

내가 이 곳에 근무한지 벌써 해가 바뀌어 16년째.

여러 분의 할머니들을 천국에 보내 드리면서 장례식도 다양하게 치렀었다.

일가친척이 많으신 할머니의 장례식은 너무도 성대하게 치러졌었고

그렇지 못하고 피붙이가 거의 없으신 외로운 할머니의 장례식은 기본적으로

예를 다 갖춘 다음 화장을 해서 공동묘지 우리 할머니들 산소 부근에 뿌리는

고인의 유언을 중심으로 장례식을 치렀었다.

살아 계실 때 많은 분들한테 사랑을 베풀고 후학들을 길르신 할머니들은

장례식 때 그 분의 도움을 받았고 사랑을 받았던 분들이 미국이며 다른 나라에서도 오시어

가시는 분의 마지막 길을 축복해 주신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평범한 진리가

여러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느끼는 당연한 일로 다가오면서

살아 생전에 누구를 만나던지 나를 만남으로 해서 그 사람의 생이 변화되고

최소한 기쁨을 주는 그런 삶이기를 바라지만 생각은 많아도 실천이 어려운

어리석음이 많은 ...비범의 삶이 못되는 평범 이하의 내 삶을 다시 한번 뒤 돌아 보게된다.

과연 내가 나에게 주어진 생을 다 마감 하는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아쉬움과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아..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좀 더 우리랑 있어 줬으면......

아..그 엄마 참 좋은 엄마의 본보기였는데 그렇게 가시다니....

아..그 며느리 참 착하고 시부모님들한테 잘 했는데.....

아..그 딸 친정부모님한테 끔찍하게 잘 하더니 그렇게 아쉬움을 두고...

아..그 부인 남편이랑 참 다정하게 부부애가 돈독하더니 .....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사람을 앞에 세워두고 칭찬하기는 쉽다.

면전이니까 한번쯤 아부성 발언을 해 준다고 세상이 뒤집어 지는 것도 아니고

죽었던 공룡이 살아나서 도시를 뒤집을 것도 아니니까

해서 기분 좋고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남겨질 말들이 과연 얼마나 칭찬 할 만하고

오래오래 남은 자들의 추억에서 차지할 몫이 길는지......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행동하며 발로 실천하는 생활이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기를 새해 벽두에 어쩌면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바쁜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이 싯점에서,

유난히 손끝이 매워서 내게 안마도 곧잘 해 주시던 할머니를 추억하며

새롭게 열린 올 한 해를 의미있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는

값진 시간으로 시작하게한다.

 

그래도 난 언제나 이별이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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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컴 에세방의 모든 님들~`

새해 아름다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의 축복도 받으시고

자신있게 주어진 삶을 이겨 나가자구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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