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13

엄마가 미안해...정말 미안해...


BY 꿈과같이 2008-12-26

 

딸애가 왔다.

힘들게 임신했는데 육개월째부터 유산기가 있어 겨우겨우 사수하며 낳았던 딸이다.

열달을 못 채우고 결국 9개월만에 자궁문이 3센티나 열려 유도 분만을 통해 세상에 나온 아이다.

2.6 Kg 의 작은 몸으로 태어나 제대로 울지도 못해 간호사가 발바닥을 파랗게 멍이 들도록 때려도

한 두번 겨우 응애~하고는 끝이었던 내 딸 아이.

같이 태어난 다른 아기들은 우유를 10cc를 먹었다는 둥 20cc 를 먹는다는 둥 하는데

우리 딸은 두 모금 이상을 빨지 못했었다.

우리 엄마는 말 그대로 \'핏덩이\' 그 자체인 첫 손주를 들여다 보며 심란해 하시는데

서른 살의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뭐가 뭔지도 모르던 나는 소변이 나오지 않은 것에만 괴로워하고 있었더랬다.

그렇게 작고 어렵게 태어난 딸 아이는 참으로 유순했다.

입이 짧고 병치레는 잦았지만 별로 보채는 일 없이 혼자서도 순하게 잘 놀았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호기심이 왕성해서 조용히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일이 많았지만

나대지 않고 혼자 뚜릿뚜릿 잘 돌아 다니곤 했다.

주변에서는 어린애가 속이 꽉 차보인다며 영특할 거라는 예언(?)을 듣기도 했다.

 

딸 아이가 세살 때 한 여름인데 열감기에 걸려 잘 낫지를 않은 적이 있었다.

그날도 역시 무척 더운 날이었고 난 감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아파트 주차장에서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아유~이렇게 더운데 뭘 애를 업고 가요? 그냥 걷게 하지. 안 힘들어요?\'

하시며 지나 가셨고 난 웃음으로 답례를 하며 지나쳤는데 아이가 내려 달라고 버둥거렸다.

어린 마음에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는 자기가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직 세살짜리가.....

그렇게 자란 딸은 누구에게나 생각이 깊고 배려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성장했다.

친구 사이에서는 늘 중심이 되어 카운셀러 역할을 해주곤 했던 딸아이.

\'어릴 때 엄마가 너무 엄격해서 진~~짜 진~~짜 싫었었는데 나도 나중에 엄마가 되면 엄마처럼 교육할 것 같다\' 라는 말을 할만큼 성장한 우리 딸.

엄마의 충고를 받아들여 심리학과에 진학해서는 전공이 재미 있다고 말했었는데.....

아이비 리그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심리학으로는 5~6위권 주립대학에 합격하여

주변의 칭찬과 부러움을 받았던 자랑스런 내 딸.

그 딸 애가 방학이라 들어 왔다.

이번에 비자를 새로 바꾸어야 하고, 그 비자가 제대로 나와도 다음 학기를 기약할 수 없는데

우리는 서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예전처럼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시늉을 한다.

내가 딸애 몰래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딸애 역시 나 몰래 혼자 기막혀 하고 슬퍼하고 있을 게다.

2년만 더 있다가 이런 일이 생겼어도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2학년까지만 마쳐도 한국 대학에 편입이 가능하니까.

중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온 아이가 여기서 수능을 다시 볼 수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한 달, 두달 후를 예측할 수 없기에 아이의 미래를 가늠할 수가 없다.

대학 1학기만에 이런 사단이 벌어졌으니 아이가 너무 가엾고 측은해서 미칠 것만 같다.

우리 딸, 착하고 속 깊은 우리 딸이 받을 상처와 좌절을 생각 하면 가슴이 찢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다.

 

아빠의 파산을 듣고 처음 딸애가 한 소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가 보다\' 라는 거였다.

그리고는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왔었는지 잘 아니까 나 때문에 슬퍼하지는 말라고 했다.

힘들고 서글프기야 하겠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지 않느냐고....

우리는 잠시 내리막 길을 걷게 된 거고 열심히 극복하다 보면 다시 올라가는 날이 올 거라고...

나는 괜챦다고....엄마가 더 걱정이라고....

아직 열아홉밖에 안 된 내 딸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딸아....그 말이 엄마 가슴을 더 찢었던 거 아니?....

딸아, 미안해...엄마 아빠가 이렇게 돼서 미안해....네 날개를 꺾어 버려서 정말 미안해....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정말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