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점심으로 뜨끈한 추어탕을 먹었다.
떡메로 쳐서 만든 찹쌀떡을 곁들여 내놓는 오랜 단골집이다.
겨울 찬 기운을 금세 덥혀주기에 족한 맛이었다.
음식 값 치른 후, 잇새에 고춧가루 빼고 화장도 고칠 겸 거울을 꺼내 보았다.
잔주름이야 일찍이 무시해온 터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만.
오늘따라 양 미간사이 깊게 패인 인상주름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이름처럼 인상 쓸 때만 생기는 주름이어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어져 있으니.
세로 일자로 새겨진 골짜기 속에 색조화장이 뭉쳐진 듯 보였다.
집게손가락 지문으로 꾹꾹 문지르고 펼쳐본다.
생의 질곡이 대체 얼마나 버거웠기에, 소 쟁기 훑고 지난 밭고랑 꼴인 걸까.
아마도 사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일 거다.
비뚤어진 눈빛으로 순수를 갉아먹었다.
찡그린 채 매사를 바라보았으니 당연히 생긴 결과물이다.
나는 그랬다.
사춘기적 반항심리가 더 자라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몸은 구부러져 신경통을 앓는데도, 속내는 여태 질풍노도의 나이로 들끓었다.
시시 때때 삭신이 쑤셔왔던 것들도 아직 여물지 못한 성장통(?) 탓이리라.
인격이 미완성이니 대인관계를 맺는 일에도 엉성함이 드러난다.
부정적인 면부터 눈을 부릅뜨고 찾아내느라 혈안이 되곤 한다.
내 잣대로 비판하고 점수를 매기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선입견의 도마 위에 상대를 올려놓고 요리할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미간이 자주 찌그러지는 것이다.
거금주고 장만한 한방화장품세트조차 인상주름 없애는 것에는 별 효험이 없나보다.
보습이 뛰어나고 유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더니 볼때기만 날로 번지르르 해질 뿐이다.
가끔 손톱 날을 세워 일부러 가로방향으로 세차게 눌러 자국을 만들어본다만.
풍선을 눌렀다가 손을 떼면 배가 불러오듯 다시 제 깊이를 유지하고 만다.
내 나이 열다섯 즈음에 숱하게 되새김질했던 속말이 있다.
사십대 자기얼굴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던......,
예쁜 여자보다는 인상 좋은 여자가 되어야겠다던.....,
절새가인도 흐르는 세월 막을 수 없어 늙어진다.
누구든 겉모양새가 쭈그러들고 퇴색되지 않는 이가 있던가.
연륜의 깊이만큼 각인되는 얼굴주름들이야말로 그 사람의 내면을 읽게 해주는 법.
지나온 삶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제대로 한번 잘 살아내고 싶다.
뒤늦게라도 보기 싫은 내 인상주름을 없앨 처방전이 과연 없는 걸까.
성형수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은 택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추어탕집 떡메라도 빌려와 마빡을 세차게 박아버리면?
2008년 12월 12일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