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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37

증명 사진


BY 그대향기 2008-12-05

 

 

남쪽지방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눈이 왔었다..... 낮에.

눈이라기엔 너무 뭣한 눈이.

심하게 부는 바람에 흩날리며 몇 방울 내리던 눈은 금새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구석데기에 쫴끔 ..눈이 내렸었다는 기억만이 희미하게 몇방울의 눈이 그늘에 남았다.

첫 눈 치고는 미친듯이 내려버리고 사라진 눈이 아쉽다.

좀 쌓여서 꼬마 눈사람이라도 만들게 해 주시지.....

하다못해 남편이 지나가면 몰래~`등에다가 뭉친 눈이라도 한번 넣으며

장난이라도 치게 해 주시지....

날씨만 디립다 추워지니 갑자기 월동준비가 바빠진다.

동파 위험이 있는 수도파이프 물 빼기

노출된 보일러관 스폰지로 된 보온제 감기

그도저도 안되는 파이프는 물 똑..똑...떨어뜨리기

물론 남편이 급하게 다 해야하는 작업이지만 난 김장을 걱정하느라

이리저리 봉사자들 구하기에 바쁜 요즈...음.

 

두주 전부터 시작한 노인요양보호사 교육에 들어가는 서류에

붙일 증명사진을 찍고는 난 그만 전의상실~~`

어쩌면 사진에 낯선 여자가, 그것도 웬 중년의 나이든 티가 역력한 부인이 있다니...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내가 아니다.

사진사가 고개를 이리 돌려라...어깨를 이쪽으로...눈을 위로 ..아래로....

참 주문도 많았고 드디어 큐~~싸인을 받고 찍힌 사진인데 어쩜.....

웃는 입술은 일그러져 있었고 눈은 자꾸 내리깔아라 해서 그렇게 했는데도 맹~~하고

헤어스타일은 손질을 급하게 하고 간거라 이리저리 완전 촌 아줌마 스타일이고(?)

다 풀어진 파머 머리에 결코 세련하고는 천리만리 동 떨어진 엉뚱녀가 있는게 아닌가 !!

 

내가 날 봐도 너무 낯설다.

아니??

누구....?

옷을 보니 분명 내가 맞는데 오잉?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든거야?

스냅사진은 웃기라도 하고 안경이라도 착용하면 아직은 볼만하던데....

미소가 아직은 젊은데 증명사진의 나는?

오랫만에 찍은 증명사진 속의 나는 분명 오십을 두해 남긴 마흔 여덟의 중년의 여자.

그 사진을 보고 난 섭섭해서 사진이 실물보다 더 못나왔다며 우기는데 눈치없는 남편은

\"뭐 당신 얼굴 맞구만 그래.\"

@#$%^&*@#$%&

일단은 그 사진을 서류 첨부에 다 넣었다.

꼭 낯선 사람을 갖다 주는 것 같은 찜찜함을 뒤로 하고 교육도 받았고.

그런데..말이지....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해도 나중에 자격증이 나오면

그 사진으로 나올걸 생각하니 아찔했다.

평생을 그 자격증의 사진을 봐야 한다고 생각이 드니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세월이 날 배신한거야.

엊그제만 해도 환~한 미소로 지인들을 만나며 밝게 웃던 여자는 어디로 가고

눈가에 자글자글한 잔주름까지 다 보일 지경인 이 사진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섭섭하고 또 믿어지지가 않아서 사나흘을 혼자서 고민고민.

 

그래.

다시 사진관을 바꿔서 찍는거야.

다른 사진관에 가서 찍어도 그렇게 나오면 그땐 믿자.

아무리 앞머리에 흰머리카락이 나와도 나이듦을 자연스럽게...자랑스럽게

받아들이던 내가 사진 속의 낯선 모습에 이리도 당황스럽다니...

혼자서 잠들기 전까지 왜 그리도 서운하고 우습던지.

남편 몰래 혼자서 사진관을 바꿔서 다시 증명사진을 찍었다.

최대한 이쁘게~`치아를 드러 내 놓고는 증명사진이 안된다니

입술꼬리를 최대한 올리면서 눈은 치 뜨지 말고 자연스럽게~~

표정을 온화하고.. 밝게..지적이게..똘망똘망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무슨 웃기는 원맨 쇼????

결국은 사진관을 바꿔서 증명사진을 또 찍는 헤프닝 끝에 나온 사진??

그 사진에도 조금 나이 든 아줌마가 있었다.

주민등록증하고는 증명사진을 안 찍었으니 그 세월이 얼만가 말이다.

중간에 주민등록증 갱신을 하면서 새로 찍은 사진이 있긴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봐 줄만 하더니만 우찌......

남편은 극성이라며 피씩..웃었다.

남은 심각해 꼭 뭐한 기분이구만 웃어????

그래 서운해서 한마디 던지고야 말았다.

\"난 당신 사진 나오면 실물보다 다~~못 나왔다고 했는데

사진이 잘 못 나왔다고 서운해 하면 좀 달래주는 흉내라도 내지

실물하고 똑 같이 나왔다고요? 너무 한다~`남은 심각한데....남편 맞어?\"

 

결국 다시 찍은 사진을 교육원에 갖다주고는 마음을 달랬다.

그나마 약간 긴장이 풀리고 똘망똘망해 보였으니...

두번 찍는 사진이라 표정도 좀 나아졌고.

처음 사진관에서는 얼굴을 이리 돌리면 아니다..저 쪽으로 해라

어깨를 활짝 피면 너무 큰 자세니 약간 작게 하고 바란스를 맞춰라

얼굴을 약간 들면 눈을 내리 떠라.....

나중에는 영~`자세에 자신까지 없어지게 하던 나쁜 사진사~`ㅎㅎㅎ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일년에 한번씩 증명사진을 찍어두며 추억을 만들었는데

결혼을 하고선 특별히 그럴 여유도 추억도 뭐 해서 안 했더니 이런 황당한 일이....

 

나이 듦이 이렇게까지 낯설 줄이야.

눈꼬리가 쳐지고 표정이 전형적인 아줌마로 변했다니.

내가 내 모습에 이리도 낯선 반응이 올 줄 감히 상상도 못했었다.

자연스럽게 다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애들도 많이 자랐고 장모님이란 좀 어색한 이름도 얻었고

살림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고 있으니 나이 드는게 당연하고

눈가의 잔주름도 얼굴의 변형도 너무나도 자연스런 변화겠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참... 나 자신에게도 어색한 일이다.

요즘 좋다는 뽀샷이라도 해 달라할걸....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