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아침은 신선하다 못해 쨍~하고 깨어질 것 같은 유리잔 같다고나 해얄지....
집을 떠나서 느긋하게 늦잠도 자고 밥 걱정을 안해도 되어서 푸근하게 뒹굴줄 알았는데
새벽 5시에 혼자 일어나 모텔 베란다 문을 열고 혼자서 미명의 바다를 마주 하고 서 있었다.
영원으로 사라질 순간들이 너무 안타까웠고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여유가 너무 감사해서
그냥 늦잠으로 없애버리기엔 그 새벽이 울고 싶을만큼 소중했고, 어스럼한 그 새벽시간이
가슴에서 뭔가가 울컥 뜨거운 것이 솟아 올라 오는 느낌 같은 감격에 겨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긴..운전시간으로 늦잠을 자는데 아니지, 새벽 5 시면 아직은 늦잠이 아니라
내가 너무 이른 시간인 거지.ㅎㅎ
새벽공기가 너무 차가운 탓으로 옷깃을 꼭꼭 여미고 바다의 소리와 바다의 냄새를 깊이 깊이
호흡하고 새겨 들으며 붉으스럼하게 먼동이 떠 오를 때 까지 바다와 대면식을 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나의 흔적들이 있을 이 지구에서, 저 바다의 태양이 떠 오르면 아주 작은 먼지 같은
존재로 희미해질 순간이 안타깝고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진 않을까?...
살아온 날들이 많을지..살아갈 날들이 더 많을지.......
그렇게 상념에 젖어 한참을 서 있노라니 드디어.....
동쪽 바다가 붉어지면서 하늘까지도 덩달아 고운 해돋이 준비로 바뀐다.
정동진에 가서도 해돋이를 못 보고 왔었던 몇년 전의 아쉬움을 이 곳 남해에서
성공 할 순간이다.
점..점...점....
붉다가 붉어지다가 더 이상은 그 붉음을 감당하기 어려울 무렵에
어느 순간 아주아주 곱디 고운 해의 이마가
빛나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해의 이맛살이 부드러우면서도 뜨겁게
뜨거우면서도 힘차게 불쑥 올라왔다.
아주 작은 모습이 보이는가~싶었는데 금방 수면 위로 누가 바다 밑에서 힘차게 밀어 올리 듯이
순식간에 쑤~~욱 솟아 나고야 말았다.
너무나 눈 깜짝 할 순간에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대신하는 남해의 해 돋이는
벅찬 감동이었고 주르륵...나도 모르게 두 뺨을 적시는 두 줄기 눈물.
새로운 날을 내게 주심에 감사했고 남편과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에 감사했다.
아침 바다의 뜨거운 기운을 가슴 가득 품고 활기찬 갈매들의 비상에 눈을 빼앗겼다.
그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고 내게 주신 날을 기쁨으로 살아보리라.
늦은 아침을 휴게실에서 해결하고 전남 영암으로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던 터라 점심은 남도음식으로 맛깔나게 먹으리라 마음 먹었던 우리는
도로 중간 중간에 \"입소문 난 정식집\"이란 프랭카드에 눈이 홀리고야 말았다.
몇 킬로미터 뒤에 있다는 상세하고 친절한 안내에 따라 그 맛집을 찾았다.
기대를 잔뜩하고 남도음식이 반찬 가짓수에서도 타 지방 음식을 압도하지만
맛에서도 월등하다는 입소문을 익히 들은 바.
정식을 그러니까 그 입소문 난 정식을 시켜두고 군침가지 삼키며 기다리는데
??????????????????????????????
금방 차려져 나온 그 입소문 난 정식이란게
마른반찬 대여섯가지에 젓갈 너댓가지, 나물반찬 몇가지 시커먼 된장국 하나
삶은 오리알 하나가 전부였다.
벌써 눈으로도 음식이 거부반응이 올 정도로 성의가 없고 입소문 날만한 음식은 아닌 듯..
생선도 없고 된장찌개 뚝배기도,남도 특유의 정성과 맛깔은 아예 상실된 무성의한 밥상에
난 그만 남편과 함께 식욕을 잃고 말았다.
겨우 콩나물 무침 한 가지로 밥 반 공기를 비우고 삶은 오리알은 아까워서 토하젓이란 것으로
간을 해 우물거려 삼키는데 아...목말라.
생수를 벌컥거려 배를 채우고 검으로 입가심을 하곤 차를 다시 영암으로 몰았다.
간판보고 밥 먹으러 가는게 아니었는데.....
안 먹은만 못한 점심으로 해서 화려하고 푸짐한 남도의 점심을 꿈꾸었던 우리의 환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야 말았다.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화.려.한. 입.간.판.에.속.지.맙.시.다~~~
월출산님과 박실언닐 만나러 갈 참이었다.
그런데......
박실언니가 식당을 그만 두셨단다.
아니 왜~~에요?
으..응....몸이 좀 안 좋아서.....
어디가요?
혈압이 좀 높아서 입원하라네....
어쩌나.....
그 동안 여러번 몸이 안 좋았었는데도 일이 많아서 피곤한가 보다~라고만 생각했고
병원의 정밀 검사를 못해 보다가 요즘 부쩍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엘 갔더니
악성혈압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식당은 당분간 문을 닫아 놓으셨단다 글쎄.
그래도 저녁시간을 일부러 내 주신 박실언니.
저녁시간과 우리의 점심시간 후의 공백시간에 월출산이나 올라 갈 요량으로 월출산
국립공원엘 갔는데 차로 일주는 안되고 도보산행만 가능하다고 해서 입구에서 돌에 새긴
\"월출산\" 앞에서 기념사진만 한장 남기고 하산.
월출산님이 점심을 자기 집에서 하자고 했지만 저녁 약속이 되어 있는 마당에
갑자기 점심에 들이 닥치면 그 무슨 실례랴~싶어서 밖에서 짐심을 한거였다.
월출산님을 말도 안되는 점심 후에 영암에서 만나고 같이 목포에서 언니를 만났다.
월출산님은 내 고등학교 1년 후배이면서 인생은 2년 선배.ㅎㅎㅎ
호칭이 어색하다가 한번 선밴 영원한 선배라는 해병대 버전으로 한바탕 웃고는
편하게 대하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깍듯이 선배~선배~불러 주신다.ㅋㅋㅋ좋은데~~
남편은 전자대리점을 하시다가 요즘은 공사도 맡으시고 컴퓨터를 담당하시는
엔지니어라 하셨다.
자식들을 다 훌륭히 키우신 알뜰과 털털함이 잘 어우러지신 두 부부가 아름다워 보였다.
무공해로 감 농사를 지으시며 마음이 여유롭고 꾸밈이 없고 참 솔직한 모습이었다.
대봉감을 한 박스나 실어주시며 안 이뻐도 약을 안 친거라 달다며 특유의 환한 웃음....
박실언니와 저녁에 목포의 준치 식당이라는 횟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노으리님도
같이 했으면 좋겠단 말에 호출.
목포의 춘치횟집은 꽤 유명한 횟집이라 손님이 아주 많았다.
참고로 박실언니의 아주 친한 어쩌면 가장 친한 친구일거라는.
목포역 근처에 살고 있던 노으리님도 금방 합류.
우리 부부와 월출산님 부부, 박실언니와 노으리님.
불그스럼한 색깔의 회와 갈치찜이 일품인 그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도 먹고
이야기 꽃이 만발했는데 그러니까 분위기가 어쨌냐면......ㅎㅎㅎㅎ
박실언니는 큰 언니같은 푸근함이
(큰 두 눈엔 서글서글한 쌍꺼풀이, 수줍은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소녀 같으신 모습)
나직나직한 목소리엔 친근함과 신중함 다정함이 같이 베여 있었고
첫인상은 꼭 친정엄마 같은 넉넉함과 잡아주시던 두 손이 얼마나 말랑말랑하고 따스하던지.
월출산님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기 발랄, 재치만발,분위기 메이커까지.
아무튼 좌중을 많이 웃기고 고음의 목소리로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쏟아 놓던지.
저녁은 이미 다 먹었는데도 우린 하하호호깔깔......
두 남편들도 같이 웃으면서 여자 넷은 많이도 웃었다.
언니는 웃기를 주로 하고 월출산님이 거의 개그우먼 수준으로 나머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줬었고, 노으리님도 이야깃 거리가 많은 님이었고 뭐..나도 조금....ㅎㅎㅎ
박실언니가 밥 값을 치뤘고 난 이번 여행길에서 만나는 님들께 드릴 선물을 따로 준비했고
박실언니도, 월출산님도 노으리님도 하나씩.
가정주부들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겠다 싶어서 준비한 건데 어떨지.
늦은 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월출산님은 남편 차로 떠나면서 박실언니를 모시고 갔고
우린 이튿날 아침 8 시 배로 다물도 즉, 흑산도 옆 작은 섬으로 노으리님과 떠나기로 하고
같이 여객선 부두 옆으로 숙소를 잡기 위해 왔는데 작지만 불편해도 노으리님 아파트에서
하룻밤 잘 것을 권했지만 불편할 거라며 따로 숙소를 정하려는데 어찌나 빠르고 완강하게
숙소를 잡겠다고 하시는지........
멀리 찾아 와 준 것도 고마운데 집에서 못 재워서 미안하다며 기어히 숙소를 잡아주고 가셨다.
박실언니도 영암 집에서 못 재워준게 미안하고 죄송하다면서 전화가 왔었다.
언니.
저희 걱정은 마시고 언니의 건강을 잘 챙기세요.
아무도 대신 해 주지 못하는 건강지킴을 이제라도 잘 하셔서 곧 식당 문을 다시 열게되시는
건강으로 돌아오시기를 진심으로 바랄께요.
혹여라도 언니의 아픈 몸이 우리 때문에 신경 쓰는 일로 더 불편해 질까 봐 걱정입니다.
숙소걱정에, 식사챙기기까지.
우린 어차피 집 나와 고생을 각오했는 사람들이니 너무 걱정마시고 마음 편히 하셔서
하루 속히 평정이 찾아오시길.....
여행다니면서 우리 부부가 세운 원칙은 가는 집에서 잠 자리 불편을 드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부담은 우리한테 줄어들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사람이 둘씩이나 집에서 자게되면
얼마나 서로가 챙길게 많은지, 손님으로 간 것도 부담인데 잠자리까지 짐이 된다면?
한팔이 불편한 노으리님은 두 팔이 있는 우리보다 행동이 더 자유로울 정도?ㅎㅎㅎ
그리하여 목포 여객선 부두가 가까운 곳에서 또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여객선 부두답게 간판 이름들도 배와 바다가 들어가는 정겨운 이름들이 많았고
건어물가게가 즐비한 모습이 목포가 항구임을 실감하게 했다.
새로지었다는 목포 여객선 부두는 넓었고 깔끔했다.
내일이면 저 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다물도에 들어 가겠지?
목포의 밤은 깊어갔고 여행의 설레임은 쉬 잠이 못 들게 했다.
참고로 지금은 다물도 여행을 마치고 목포항에서 제천을 가기 위해 신탄진에서 또 하룻밤.
다물도 여행기는 우리 부부가 살아오면서 가장 호강했던 만 하루의 여유로움이었다.
목포에서 제천까지는 450여 킬로미터.
밤 8시에 출발해서 도착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제천을 가기 전에 신탄진에 머무르면서 다물도까지 다 적으려 했지만 다물도 여행은
워낙 특별해서 따로 한편을 적어야 할 것 같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대해주셨던 노으리님과 목사님 또 다물도의 집사님부부.
다물도 여행기는 다음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