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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 불행과 행복


BY 바늘 2008-11-15

언제부터 입어 왔을까?

 

때 국물이 꼬질 한 거무튀튀한 옷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도 민망하여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영등포 역!

 

길게 자란 수염 엉겨붙어 떡진 머리, 삼삼오오 소주병을 곁에 놓은 노숙자 아저씨들!

 

검정치마  하얀 블라우스 단정하게 차려입은 대여섯 명의 아주머니들이 어둠이 내려앉은

영등포 역 거리에서 선교를 나왔는지 기타 조율도 하고

마이크  키 높이도 맞춰가며 잠시 그들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도 두려워하는 나와 전혀 다르게

아주 당당하게 춥고 배고픈 그들의 메마른 영혼에 단비가 되어줄 찬양 준비를 하고 있다.

 

희망을 잃어 버린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 이제 희망, 꿈, 뭐 이런 것들은 아주 먼 옛날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희끄무리한 기억의 저편에 있는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면 사랑하는 아내와 똘망한 아들, 재롱둥이 딸의

아침 배웅 인사를 받으며 씩씩한 출근길에 나셨던 그들이었을 터인데...

 

어둠이 내려앉은 도심의 저녁 시간~

 

그러 그러한 일상의 풍경을 지나 오랜만에 직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뿔뿔이 이직한 옛 동료들

만나러 가는 나의 발걸음은 순간 근심 없이 행복했다.

 

지옥과 천국은 몇 발자국 거리를 두고 펼쳐지고 있었다.

 

춥고 배고픈 거리의 노숙자

 

조명등 아래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 

열받은 돌구이판 그위로 적당히 익은 김치와 삼겹살은 노릇노릇 익어가고 그곳이 천국인양 

슬픔과 기쁨은 불과 몇 미터 사이를 두고 교차한다.

 

어쩌면 나의 이런 단정이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포기를 선택한 그들이 차라리 나보다 우리 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영등포 역 시계탑 부근 삼겹살집!

 

사십대 중반의 연령에서 오십까지 직장 선 후배가 고루 모여 앉았다.

 

이직한 직장의 근무여건이 어떠한지 지난달 급여는 얼마였는지 아줌마들의 수다는 끝이 없다.

 

눈이 작은 나와 동갑 명이는 아이 라인을 곱게 그리고 나타났는데  한결 큰 눈으로 예뻐 보였고

 

미소가 아름다운 후배 영주는 초록색 털 코트를 새로 장만했다는데 색상도 잘 어울리고

포근해 보였다.

 

나처럼 가장이 되어 군에 간 아들아이와 고 3 딸을 둔 혜진은 위가 아파 전에는 술을 멀리하더니

한의원에 다니면서 약 처방이 좋았는지 피부도 좋아지고 소주 몇 잔을 가볍게 들이키더니

자기 설움에 겨워 울기 시작하였다

 

이유인즉 딸아이가 언제 철이 들려는지 혼자 사는 엄마를 측은하게  안 보고 툭하면

해준 게 뭐 있냐고 빡빡 대든다는 것이다.

 

생일을 사흘 남겨둔 선주는 매월 적금을 부어 먼 나라 여행을 가자고 서두르고

 

오십 나이에 소녀처럼 늘 긴 생머리를 고수하더니 단발로 과감하게 자른 경순이는 옮겨 간 직장에

급여가 좋아 오늘 2차는 무조건 본인이 쏠 거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남편의 계속된 사업 실패로 괴로움을 술로 달래다 간에 이상이 생겨 지금은 홀로된 후배 원희는

사십대임에도 아직 외모는 상큼한 아가씨처럼 보였고 왠지 그 애가 웃고 있어도 노랫말의 한 소절처럼

울고있는 것 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번 달 모임에는 특별히 사장님으로 계시다 이제는 다른 업종을 찾아 떠나신

전사장님까지 청일점으로 함께 참석해 주시더니 회비 추렴을 할 즈음 서둘러 일어나셔서 계산을 

도맡아 해주시고 바쁘게 또 다른 약속이 있으시다며 떠나셨고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있으면

종종 불러 달라고 하셨다.

 

모두가 정겹고 푸근하다.

 

이제 직장에는 모두가 떠나고 나 홀로 남았다.

 

하지만 떠나고 나서 다음날 그 다음날이면 누군가 또 그자리를 채운다.

 

너 아니면 안될 것 같지만 그도 아니고

나 아니면 안될 것 같지만 그도 아니라서 나가면 또 들어오고 쉽게 자리가 채워지듯 또 비움도 쉽다.

 

 

깊어가는 가을

 

약속 장소를 정하고 모두에게 연락을 취하고 그래서 흩어졌던 동료가 퇴근 후 모여 앉고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더 즐겁게 자주 모여 행복하자고 다짐들을 한다.

 

이렇게 또 가을이 간다

 

천국과 지옥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면서...

 

 

ps---> 동료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