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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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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황춘예 여사님.


BY 부엉이 2008-11-14

 

 2004년 4월 1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은 그 전날 저녁, 출장간 막내 여동생을 빼곤 우리 형제들이 다 모였다.

나는 월말 마감 탓에 저녁 여덟시까지 야근을 하고서야 병원으로 갔다.

엄마는 이미 초점을 잃은 눈으로 그릉그릉 숨을 몰아쉬며 불편하게 침대에 앉아 계셨다

간병인 아줌마는 아마 오늘, 낼 가실거라고, 용변을 크게 보셨다고 하시곤 병실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형제가 일곱이다. 팔남매.

엄마는 아홉명의 자식을 낳으셨고, 큰오빠 위로 첫째 아들을 돌도 안돼 잃으셨다. 

   엄마의 게슴츠레한 눈빛은 이미 산사람의 것이 아닌듯했다. 피부에는 끈적끈적한 체액이 만져졌다. 나는 엄마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우리가 병실에 머문 시간은 한시간 남짓.  나는 다리를 계속 주물러 드렸다. 그래야 될 것같았다. 그래야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볍게 육체에서 혼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잠드신 후 둘째언니와 막내 남동생이 곁에 지키기로 하고 우리들은 다들 각자 집으로 향했다.

    둘째언니는 끊임없이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엄마의 임종을 지켰다. 엄마의 혼이 육체에서 빠져 나가는 걸 본 것도 언니 혼자였다.

    엄마는 폐암이셨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다시 갈 요량으로 일찍 일어났다. 7시 15분쯤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난 통곡했다. 어디서 통곡이 나오는지, 어디서부터 눈물이 솟는지 알 수 없었다.

가슴도 아니었다. 머리에서 나오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깊이나 강도를 헤아릴 수 없는 슬픔.

한참을 그렇게 목이 쉬게 울고 놀라 잠에 깬 애들과 남편을 뒤로 한 채 나는 차를 몰고 먼저 병원으로 향했다.

늘 가던 병원이었는데 이상하게 한번에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시체 보관실 보관고에서 나오는 엄마를 보았다. 얼굴만 부분부분 보랏빛일뿐 체온이 그대로였다.  눈물이 넘쳤다. 울었다. 그냥 울었다.

마치 드라마 한 장면인 듯 현실감이 없었다.  누구나 피해 갈 수 없어 꼭 한번은 마주쳐야 하는 죽음! 남겨진 육체..

   순간 어제 저녁 엄마 다리만 주물러 드린게 너무 후회스러웠다.  엄마를 한번 안아드릴걸. 그리고 여지껏 한번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

 ‘엄마, 사랑해’ 한마디 해드릴걸.

   시한부 6개월 선고 받고도 새해 첫날,  좋은 꿈 꿨다고 1년은 더 살꺼라고 자랑하시던 노인네.  막내 남동생, 고거 하나 남은거 장가가는거 보고 죽어야 한다고 다짐다짐 하시더니, 가셨다..그렇게 가셨다.

‘엄마, 황춘례 여사, 사랑해요. 그리고 너무 감사해요.

지지리 가난에 괴팍한 아버지랑 끝까지 살아주고, 우리 팔남매 울타리처럼 잘 지켜서 키워내 주신거.  그리고 주무시면서 그렇게  돌아가 주신거......


ps: 애정표현 없던 가족인지라 안아준다거나 안긴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참 어려웠습니다. 지금 내 새끼들한테는 잘도 하면서 엄말 제대로 한번 안아드리지 못한게 후회가 되더라구요. 여러분 중 혹 저같은 분 계시면 지금 당장 안아드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