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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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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


BY 솔바람소리 2008-11-14

가을은 한해가 저물어가는 쓸쓸함을

내포하는 것 같아서 딱히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형용할 수 없는 단풍의

색체가 주는 매력을 느끼는 감성만은 나날이 발전

하는 것 같다.

 

늘 쓸쓸함을 그림자처럼 달고 살던 지난날들...

결혼 전이야 물질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을 풍족함을

누렸지만 독단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때문에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

결혼 후...

여러모로 달라진 환경과 견해차이가 터무니없이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었기에 나는 결혼 전보다 더한 좌절감에 빠져 살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었고 그런 일을 격고서도 나는 아직 이렇게 버티고 있다.

그런 고비들을 격고 보니 나를 뒤돌아보게도 되고

내게 고질적으로 붙어있는 아집과 자만을 느끼며 버렸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샘물처럼 또다시 솟아나는 그것들을 느끼고

또다시 잘라내는 역순환을 겪으며 주변을 살피게도 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의 감사함을 하나 둘씩 깨닫게도 되었다.

 

남편과 살던 신혼 4년 동안 가망과 기약 없는

나와 아들의 앞날이 막막하여 많은 점집을 돌아다녔다.

조상들의 천도가 안됐다는 둥, 아들의 명이 짧다는 둥,

여러 가지 이유를 드는 그들의 저주 같은 말에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더한 절망 속에 빠질 것이 두려워서

굿도 여러 번 했다.

친정엄마가 주신 지독스레 쥐고 있던 돈을 한 번에

미련 없이 쏟아 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게 느껴진 그 일들이 당시에 내겐

부처님의 말씀보다도, 성경의 어느 구절보다도 만신의

한마디가 생명줄과 같이 절실하게 다가왔었다.

모시는 신이 알려준단 얘기를 옮겨준다는 무당들의

말들은 대부분 제각기 틀렸지만 공통적인 몇 가지도

있었다. 그들이 내게,

주변에 사람이 많고 식복과 재복은 타고 났단다. 고집과

욕심이 많아 웬만한 사람 앞에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천하를 호령할 장군감이었는데 부정이 낀

탓에 몸에 칼자국이 생겼다며 아깝다고도 했다.

병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한 것도 같다.

남편과는 원진이 들었다고도 했다. 남편 팔자엔 여자도

없고 자식도 없고 재복도 식복도 없어서 내 복을 깎아 먹고

산다며 헤어지라고 권하고 싶지만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한다는 모성적인 말도 했었다.

그땐 왜 그렇게 그런 말들에 의존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리도 한심할 수가 없다.

 

지난 날을 곱씹어 봐도 38년 길지 않은 세월을

많은 우여곡절 속에 파란만장하게 살아 왔다.

그런 삶을 어떻게 버티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한 가지.

무당들이 했던 말처럼 내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나의 비상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격려를 해주는 그들이 있었다. 내 말에 눈물을 흘리고

웃기도 하고 쪼르륵 달려와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이차도 천차만별, ‘언니’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는

나와도 어느 한쪽 감정에 치우침 없이, 호칭과 상관없이

대화가 통하는 그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내게 참 소중한 사람들이다. 오래된 장맛처럼 구수한

우리들의 오랜 인연... 그들은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을 실어주었다.

누구하나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마음의 정만은

넘쳐나는 만남이기에 어느 자리에서 만나도 우리는

빈곤하지 않았다.

 

그제는 그 중에 한사람인 소중한 내 친구가 다녀갔다.

어쩌다가 온라인에서 알게 되어 나이와 자식들의

또래도 같아 통하는 게 많았고 그런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우린 참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몇 년 전, 집도 없이 하우스에 살던 그 친구가 저는

아이들의 학원도 보내지 못하면서 내가 내 아이

학원비 낼 걸 걱정하니 나 몰래 싱크대 서랍 속에

돈 30만원 넣고 가며 그 마저도 문자로 알려주던

친구는 후로도 다녀가면 이벤트처럼 몰래 돈을 꿍쳐

놓고 가곤 해서 그 친구가 갈 때쯤만 되면 나는 친구의

행동거지를 경계하기도 했다.

내 것과 네 것이 없는 우리들은 서로 갖은 것을

더 못줘서 안달 난 사람처럼 서로를 챙겼고

지금처럼 힘든 세상,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주어주고픈 서로의 심정으로 이어가고 있다.

전엔 그 친구에게 늘 받기만 했던 내가 우리 이런 식의

만남이 싫다며 당분간 연락을 끊자는 내 말에 울먹이며

전화를 주던 친구는 오히려 자신이 내게 많은 것을

받았다는 말로 위로를 했다.

내가 준 것이 뭐냐고 따지듯 까칠하니 자신에게 해줬던

내 말 몇 마디가 세상 뭣보다 값진 것이었단 말을 해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의 난 그 때보다 마음이 더 황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 고맙게 받았다던 내 말들이었다는데

그제 친구를 보내고 생각하니 친구의 말을 듣기보단

내 말만 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내게 있는 이것저것을 챙겨 보내고도 한없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진경아, 미안하다. 넌 늘 내 곁에서 변함없이

있는데 난 자꾸만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아.

지금 네가 힘든 부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 아니? 마음만은 내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근심 가득한 네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을 볼 때 차마 이런 말도 못하겠더라. 내 자식과

내 가정을 위해 네게 향한 내 마음은 단지 마음일 뿐이더구나.

그게 얼마나 나를 염치없게 만드는지...넌 알고 있니?

우리 늘 그랬잖아. 곧 죽을 듯 했다가도 다시 우뚝

서서 견디고 ‘남들 다 그러고 사는데 우리라고 별수

있냐, 세상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 너스레떨듯

얘기하던 것... 우리 지금의 고난도 훗날 그렇게 가볍게

얘기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널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넌 알지? 기운내자. 넌 지금 상황 잘 버텨낼 수 있을 거야...)

 

도둑님이 시가 천 만원 상당의 폐물을 몽땅

들고 가버린 내 보석상자 안에는 친구가 크리스탈로

만들어준 연꽃 모양의 반지와 팔찌, 그 외 모양의

다른 비즈들이 여럿 들어있다.

냉장고 안에는 또 다른 친구가 몇 번째로 보내준 단감이

남아있고 매실엑기스가 잘 되어 반을 나눴다며 보내주신

또 다른 사람의 사랑도 한 병 들어있다. 내 부름에 언제라도

달려와 줄 사람이 최소한 손가락 셋은 꼽을 자신도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문자라도 간간히

주고받는 몇 분과의 오랜만의 만남도 서먹한 적 없이 친근하다.

또 그들보다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버린

‘아컴’ 가족도 있다. 알면 알수록 더해가는 정들이 감사하고

그들의 삶을 빼꼼히 들여다보며 또 다른 깨달음도 얻게 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마음 놓고 떠들 수 있는 이곳이

참 고맙다.

이 속에서 미움도 저버릴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 듯도 하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고비 고비 포기하지 않고

내 삶을 영위할 것도 같다.

그런 것들이 오늘 이렇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