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그고, 아침마다 행복과 감사에 젖어든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세수하고 손씻을 따뜻한 물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추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시절 내가 살던 마을은 가난한 사람 천지였다.
어린시절 친구 중엔 초등도 못 마치고 온 가족이 보따리 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떠난 집이 아마 반은 되었지 싶다.
내 또래 여자아이 중 초등을 졸업하는 행운을 누린 아이가 아홉이었다.
그 중에 부잣집 막내딸로 불리던 나는 아홉 중 단 하나 중학교에 진학하는 특권을 누린 아이였는데, 바보였을까, 그 대단한 특권을 헌신짝처럼 여겨 버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마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별난 부지런함으로 가난한 마을에서 그나마 끼니 걱정 안하고 부자소리를 들었는데 아버지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무좀인지 동상인지 습진인지 세가지가 다 겹쳤다고도 하고 암튼 아버지는 발 때문에 항상 고생을 했는데 그 때는 유난히 심해져서 병원에서 두 발을 다 잘라내야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하였다.
고등에 다니던 언니 중학교에 다니던 나를 앞에 두고 동생이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니까 고루고루 중학교라도 졸업을 하게 언니더러 학업을 중단하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나와 달리 철이 들었던 언니가 무척 속상했던 것은 물론이다.
나 같으면 룰루랄라했을텐데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라는 말에 울면서 장학생으로 갈테니까 보내달라고 사정했던 언니를 철은 없어도 기억력은 좋았던 난 기억하고 있었다.
셋을 모두 학교에 보낼 능력이 도저히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버지 계산이었다.
앗싸, 기회다.
난 신이 났다.
아버지에게 제법 철 든 아이처럼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 난 장학생에서 떨어져 학비를 내야하고, 언니는 장학생이니까 학비도 안들고, 사실 난 공부하는 것 싫어하는 아이고 언니는 공부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그만두게 해 주세요. 그 대신 나는 이번에 서울로 가기로 한 작은 집을 따라가게 해 주세요. 가서 양장점에 취직해서 옷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어요. 이렇게 사정할께요.\'
나는 두손 모아 싹싹 빌었다.
그렇게 사정 사정해서 서울로 서울로 가는 행렬에 동참한 작은집 식구들과 같이 서울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마 봄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친구들은 지금쯤 학교에 가 있겠구나 하고 설픗 감상적인 생각이 철없던 머리를 스쳐갔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나는 영등포 시장에서 한복천을 파는 포목점 심부름꾼으로 보내졌다.
먼저 와서 심부름꾼 노릇을 이 년인가 삼 년인가 했다는 언니가 내게 청소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양장점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주인내외도 심부름꾼 언니도 모두 친절해서 낯 선 하루가 힘들진 않았다.
심부름꾼 언니는 남아서 가게 문을 닫기로 하고 주인내외를 따라 나는 그들의 집으로 갔다.
다른 가족은 기억에 없고 딸 둘이 있었다.
하나는 내 또래로 보였고 다른 하나는 대학생쯤으로 보였다.
그들은 시골에서 갓 올라 온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심부름꾼 언니가 처음 왔을 때 이야길 낄낄거리며 하더니 날더러 목욕탕에 같이 가잔다.
수치심, 어쩌면 세상에 나와서 처음으로 그리 강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전에도 물론 부끄러운 기억들이 있지만 내 기억엔 살아온 날을 다 더듬어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이다.
아무리 철이 없던 나지만 그들과 같이 목욕탕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는 내게 강요하지 않는 그들이 고마웠다.
다음날 포목점 주인내외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먹고 자고가 싫으면 고모집이나 작은집에서 자고 다니라고 하였지만 그마저 싫다고 도리질을 했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기억은 나 자신도 잘 모르게 꼭꼭 묻어두었다.
욕조에 가득한 따뜻한 물을 즐기는데 샤워커튼 너머 인기척이 난다.
당신이야?
안방 화장실에 들어올 사람이 있을리 없지만 괜히 확인한다.
그러엄.
삼십년 가까이 살을 부비고 산 남편인을 확인하고 비로소 나 자신에게도 묻어두었던 부끄러운 이야길 꺼내본다.
얼굴 마주하고 차마 못하고 샤워커튼 사이에 두고 한다.
여보, 난 따뜻한 물에 목욕할 때마다 너무너무 감사하고 행복해. 왜 그런 줄 알아?
몰라, 왜 그러는데..
우리 어렸을 적에는 겨울에 따뜻한 물이 귀해서 겨우내 목욕은 꿈도 못 꾸고 날이 풀리면 묵은 때를 벗겨내곤 했잖아.
그랬지.
나, 중학교 그만 두고 서울에 가서 처음 취직한 데가 포목점이었는데 그 집에서 먹고 자기로 했거든. 하루만에 그만두겠다고 했어. 그 이유가 뭐였느냐면 그 집 딸들이 날더러 목욕탕에 같이 가자고 그러더라고. 그 때가 삼월초였으니까 난 겨우내 묵은 때를 벗겨내지 못하고 그 집에 갔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음, 알지.
감사한 것 투성이다.
그리 부끄러운 기억을 말할 수 있는 남편도 감사하고 듣고 이해하는 남편은 더 감사하다.
어둡고 부끄러운 기억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삶이 행복하고 감사하니 어둡고 부끄러운 기억도 감사하다.
아침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요즘 무슨 불평거리가 있을 수 있나...
모든 것이 그저 행복에 겨운 투정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