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곰국 배달해 드려야 하는 할머니께서 가사도우미를 구해 달라신다.
그 할머니 까탈스러운 성격을 아는지라 마음 같아서는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드나들며
도와드리면 좋으련만 김밥장사를 시작한 후로는 곰국 배달조차 여의치 않으니.
그리하여 몇년 째 알고 지내는 수더분한 지인을 소개해 드렸다.
심성이 착하긴 하지만 요즘 분양받은 아파트에 전세를 놓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아낙네다.
가사도우미 일도 한 적이 없지만 할머니와 죽이 잘 맞으면
일주일에 한번씩 드나들며 이모보듯 하면 되겠다 싶어 연결을 한 것이다.
첫 대면 후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본 즉.
\"날 보자마자 반색을 하더니 자장면도 시켜먹자시면서 말씀을 줄창 하시는데
은행 볼일만 아니었으면 하루종일 잡혀 있을 뻔 했다.\"
\"보수는 받았고?\"
\"열시에 가서 오후 세시가 넘도록 있다 왔는데 일은 하지 말고 얘기만 하자고 하시더니
나오는데 돈 안주시더라구.\"
그 다음번에는 약심부름을 시키시더란다.
약 사러 나왔다가 누가 아파트를 보여 달라길래 두어시간 볼일을 보고
오후 세시경까지 할머니댁에 있다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삼만원을 주시더란다.
할머니께서 가게로 전화를 하셨다.
\"그 사람 못 쓰겠어. 나한테 와서 일은 안하고 돈만 받아 갔어. 지볼일 다 보고 왔길래
돈 줬더니 방이라도 닦아주고 가야지 그냥 가더라구...\"
그이가 그렇게 염치 없는 사람이 아닌데 그럴 리가 없어 전화를 해 봤다.
\"아유~ 말도 마라. 얼마나 어이없는 일을 당했는지 지금도 기가 딱 막힌다.\"
그 다음다음날 가게로 그이가 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할머니는 일은 못하게 붙들어 앉혀 놓고 얘기만 하신다는 거다.
두시간 비웠던 날도 그 시간만큼 더 있다 나왔고
그 다음번에는 달걀과 무를 사다달라시기에 6000원을 주고 사다드리고
국도 끓여드리고 시금치도 무쳐드리고 한시쯤 나오려니까 할머니께서
\"돈 줄까?\" 하시더란다.
그 전날 볼일 본 것도 있고 해서 그냥 두시라 했더니 달걀과 무 산값까지 안 주시더란다.
삼일 말벗 해드리고 30000원 받고 6000원은 식재료 사드리고 그냥 왔으니 헛짓 한 게다.
그이 왈~
\"그 할머니는 시간도둑녀야. 남의 시간을 뺏았으면 댓가를 주시던지...
하여간 며느리도 어른이면 어른노릇을 하라고 했다네.
돈 없는 할머니라면 내가 적선했다 치면 되지만 소행머리를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네.
부처님이 나더러 그리 살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신 거라 여기고 참아야지 뭐.\"
난 그이가 할머니 마음에 안 들어 그런가보다 싶어
다른 친구를 소개해 드렸다.
한살림당번이나 하면서 살던 이인데 이제 돈도 좀 벌어야겠다기에 할머니와 연결을 시킨 거다.
다른 친구가 할머니댁에 갔던 날 궁금해서 전화를 해 봤다.
\"그 할머니 좀 이상해. 말벗이 필요하면 말벗을 구하면 되지 왜 가사도우미 하러간 사람을 앉혀 놓고
네시간 동안 할머니말씀만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 하여간 네시간동안 꼿꼿하게 앉아 말씀을 하시는데
기가 막히더군. 아들이 모 제철회사 사장이라는데 거짓말 같아.
병원에 진료예약이 되어 있어서 한시에 가봐야겠다니까 한시에 나오기는 했는데
그 볼일 없었으면 하루종일 못 놓여나겠더라구.\"
\"보수는 받았어?\"
\"아니, 안 주시더라구.\"
난 두 여인에게 못할 짓 했다.
할머니댁 가사도우미들이 자주 그만 두는 이유를 안 것이다.
난 7평 아파트니까 크게 할일도 없고 할머니 말벗이나 해드리고
심부름이나 해드리면 되는 줄 알고 가볍게 소개를 한 것이었는데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목조르는 노인네를 소개시킨 거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나를 욕했다.
\"그런 사람에게 두번씩이나 소개를 시키면 어떡해? 도저히 이해못하겠네.\"
난 친정부모님이나 시어머님 생각해서 그리고 나도 나이들어 적적하면 사람이 그리울 거니까
좋은 일 한다고 한 거였는데 나도 이제는 그 할머니와 인연을 끊고 싶다.
별로 마진도 없는 심부름하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붙들고 수다를 푸시는 할머니가 딱해서였다.
할머니의 사악함을 보고 나니 아무리 천치같이 순한 내마음도 화가 치민다.
돈도 안 주고 사설만 늘어놓으니 어떤 이가 주변에 모여들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외롭지 않다는 명언이 실감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