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도 맺힌 것이 많았을 거다.
그것도 사람인데, 피 끓는 청년이 됐는데...
보고 느낀 것이 왜 없겠어... 참은 것이 얼마겠어...
틀린 말 하나 없는 동생의 말이었건만 그런 말한
동생과 말리는 엄마를 때린 아버지였다.
일어서려고 발버둥 치는 나를 엄마와 동생이 말렸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의 잡은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짝!!!...’
아버지가 나의 뺨을 때렸다.
소란스럽던 곳에 일순간 정적이 맴돌았다.
쓰고 있던 내 안경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힘이 실린 아버지의 매서운 손.
아픔에 이골이 났던 내게는 그런 충격쯤은 대수도 아니었다.
매 따위, 폭력 따위는 두렵지도 않았다.
내가 제일 두려운 것은 나 자신뿐이다.
언제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뿐.
나를 그렇게 만든 것도 아버지였다.
내 장애를 있게 한 아버지의 이부동생인 ‘삼촌’보다도
내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의 제사를 지내주면서도
당당하게 찾아와서 온갖 것을 싸 짊어지고 가는 할머니보다도
나는 아버지를 증오했다.
아버지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용서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순순히 당하고
살 수는 없었다.
때리는 아버지를 보며 분노했다.
맞고 사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나를 미치게 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렇게 활화산 같은 분노로 과격했던 아버지가 나무토막이라도
된 듯이 꼼짝 않고 서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언젠가도
본 적이 있었다.
“더 때려봐!!! 아니, 차라리, 죽여! 아빠 자식으로 사느니 죽는게 낳아.
나를 왜 낳았어!!! 나를 왜 살렸어! 죽었으면 할 땐 언제고
내가 수술 안한다고 가슴 아파 했다구? 아빠가 그럴
자격이나 있어?! 왜 자꾸만 엄마를 때려!! 왜 동생을 때려!!!
죽여!!! 난 아빠가 싫어. 저주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때 차라리 아빠가 죽었어야 했다구!!!“
나조차도 주체할 수 없는 온갖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했던... 자식으로써는 감히 해서는 아니 됐던 일을
아버지에게 저질렀던 내가 무릎 꿇고 백번 사죄해도 모자랄
철륜을 저버린 그 행동을 입에 담고 있었다.
-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저녁이었다. 주말에 내려갔는데
그날도 아버지는 술을 마시며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보고 아버지 때문에 잠 못 들기 전에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했다. 엄마와 동생들은 벌써부터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일주일 만에 만났어도 반가움은 잠시, 대부분 초조하게
아버지를 기다리는 긴장된 시간들이 너무 싫었다.
세상에 아버지만 없다면 평화로울 것만 같았다.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에 잠든 것은 막내뿐이었다.
마루에 함께 앉아서 우리는 모두 말을 잃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마루에 걸터 앉아있던 엄마가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큰 동생도 따라 나갔다.
귀도 밝은 내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뱃소리에
귀가 멍멍하다던 엄마는 아버지의 발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알아챘다....나는 그 마저도 화가 났다.
곧 문 밖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엄마를 무시하는 그 못된 말소리들이 들렸다.
곧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의 양쪽 어깨를 받치고
엄마와 동생이 함께 나란히 문 안으로 들어왔다.
성난 임금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내시처럼
엄마와 동생의 모습이 내게는 비굴해보였다.
그 모습이 가슴 아팠다.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영원히
계속될 불행이 가슴 아팠다. 그런 아픔이 반복되다보면
결국엔 또 화가 났다.
들어서자마자 마루 끝에 서있던 나를 보고 술 취한
아버지가 말했다.
“니 팔잔데 어쩔 거야... 받아 들여야지... 아버지가
네 뒷바라는 계속한다....“
아버지는 누구도 사랑할 줄 몰랐다.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나만을 때리지 않는 것도 사랑이 아니라
동정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동정을...
세상 제일 증오스러운 아버지가 내게 하고 있었다.
불쌍한 거지에게 돈 몇 푼 던져주고 뿌듯해 하는 것처럼
내게 접선을 하겠다는 그 말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늘 돈과 나를 연관시키는 아버지...
집안에 모든 불행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아버지...
술 취했던 온갖 언행들을 다음 날이면 까맣게 잊어
버리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상처받은 가족에게
사과 한번 한적 없는 아버지...
나는 그를 용서 할 수가 없었다.
나로 인해 비롯됐다는 불행을 내가 바로 잡고
싶었다. 아버지와 나만 세상에서 없어지면
그만인 것이다.
내게 팔자를 받아들이라던 아버지 역시
딸에게 죽임 당한 것을 저승에서 팔자였다고
받아 들여야만 할 것이다.
나는 맨발로 내려가서 수돗가에
놓여있는 부엌칼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주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와 동생의 비명소리가 내 귀로 들렸다.
있는 힘껏 팔을 내미는 내 손을 엄마가 결사적으로
잡고 매달렸다. 그리고 내 손의 칼을 뺏으려고 했다.
나는 뺏기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동생도 엄마를
돕고 있었다. 우리들의 실갱이에 가만있던 것은
아버지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아빠와 나만 없어지면 모두가
행복해 질 거야!!! 오늘 우린 함께 죽어야 돼!!!“
나는 어느새 엄마에게 칼을 뺏겼고 밖으로 끌려 나가고
있었다. 몸을 못 가누던 아버지가 꼿꼿이 서서 끌려 나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처음 보았다. 아버지에게도 그런 표정이
있다는 것을...
공허했다. 그리고 넋이 빠진 얼굴로 입을 연 것도 닫은
것도 아닌 상태로 동상처럼 굳어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슬픈 얼굴을 할 수 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온갖
것이 들어있었다.
집과 되도록 멀리 떨어지려는 듯 나를 끌고 나온 엄마의
발걸음은 급했다. 눈물이 마를 날 없던 내 엄마는 흐느끼며
연실 “왜 그랬어...왜 그랬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엄마의 꽁무니를 따라오던 중학생이 된 동생도 울고 있었다.
“나를 왜 말렸어! 엄마는 매일 그렇게 살 거야?!...”
나도 울면서 대꾸했다.
나 역시도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왜 그랬냐는 엄마의 말에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지만
기껏 꺼낸 말이 그 뿐이었다.
엄마는 얼른 내게 외할머니 댁으로 가라고 했다.
벌써 12시도 넘은 시간이었다. 비포장도로에는 가로등도 하나
없었다. 산길을 몇 개나 넘어가야 하는 그 길을 엄마는 나 혼자
걸어가라고 했다.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보다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기에... 늘 엄마 탓으로 돌린
아버지에게 좋은 원인 제공만 해준 꼴이 되어 버렸으니
정말 이제는 아버지가 엄마와 동생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후회로 밀려오는 공포... 그것이 더 두려웠다.
이런 후회를 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시도도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따라 나올까봐 겁이 난 사람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내 등을 밀었다.
“엄마!!! 나랑 할머니네 같이 가! 또 맞을 거잖아.”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우리 셋은 계속해서 울었다.
우리들의 밤은 왜 매일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 건지...
불 꺼진 다른 집이 부러웠다.
우리도 그들처럼 편히 잘 수 있는 날이 올까...
내 삶은...내 엄마의 삶은... 내 동생들의 삶은
왜 이렇게 두렵고 슬퍼야만 하는 건지... 나는 정말
살아가는 것이 힘겨웠다.
나는 그 밤을 혼자서 동생의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맨발로 나온 내게 동생이 벗어준 운동화를 신고서
꺼이꺼이 울면서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엄마가 당분간 절대로 내려오면 안된다고
했지만 무슨 오기인지 기어코 다음 주에 집으로
내려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늦은
점심을 들고 있던 부모님 곁으로 다가가서 앉으며
밥을 달라고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런 아버지의 등에대고 내가 말했다.
“난, 아빠랑 똑 닮았어. 누가 뭐래도 난 아버지 딸이야.
못 됐다구.“ -
아버지가 때린 뺨에 불이 붓은 것 마냥 뜨거웠지만
나는 무릎까지 세워가며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분노 섞인 말로 발악했다.
누가 와서 뜯어 말려도 나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아버지가 안고서 유리바닥으로 천천히
주저 않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다.
“니가... 니가... 어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째서
니 애미도 나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는데...니가 나를
어떻게...“
울음에 말이 묻힐 정도로 통곡하셨다.
유리 투성이 바닥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울었다.
엄마도 울었다. 맞을 때도 울지 않던 동생도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참았다.
“아빠가 왜 울어!!! 아빠는 울 자격도 없어!!!”
분노로 발악하는 나를 아버지가 유리바닥에 상처가 날까봐
조심스럽게 끌어안으며 울었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배려도 싫었다. 그마저도 뿌리치고 유리 바닥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