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는 나그네입니다. 오월님께서 지어주신 닉네임으로 바꾸었습니다.)
삶에도 계획표를 세울 수 있다면 다들
그런대로 짜임새 있게, 조금은 느슨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똑같은 일상이라면 재미는 없을지도...
내가 재미없을까봐 신은 늘 흥미로운 일들을
제공하시는 듯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고 계시는 3째
형님은 어쩌다 전화한번 주실 때마다 내게
숙제꺼리를 제공해주신다.
“동서, 어머님이 또 화장실에서 넘어지셨다네...”
“동서, 큰 형님이 수술을 하셨데...”
“동서, 둘째 시숙님이 교통사고가 나셨다네...”
많은 소식을 전해주시는 분... 그때마다 나또한
드리는 말이 있다.
“형님은 연락해보셨어요?” 하고...
어떤 상황인지 직접 들었나해서 여쭈는 말인데
때마다 형님의 대사도 변함이 없으시다.
“아니... 아직 해보지 않았어...”
나보고 먼저 해보라는 뜻이다.
내게 도를 닦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분 중에
한분이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3일 전인가 감사한 분께서 또 전화를 주셨다.
“동서, 어머님이 내일 서울로 올라오신다네.
막내 이모님 딸이 결혼식이 있으시다고,
결혼식 들렸다가 하루 정도 묶었다가 가신다는데?“
어머님의 상경에 늘 불만 섞였을 때와 달리
소풍이라도 가는 어린아이처럼 맑은 목소리다.
궁핍한 살림을 불만으로 시숙님과 부딪히던 분이
어느 날, 취직을 했다며 힘들다고 툴툴되던 분을
나는 아이들도 다 컸으니 이제는 뭔가 해도 될 때가
아니겠느냐고, 남편을 의지하기 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하는 것도 괜찮은 거라고 달래기도
여러 번이었는데 어느 때와 달리 직장에 감사한 듯,
어머님의 서울 상경에 부담이 없으신 듯 했다.
두 달째 남편이 백 만원을 생활비라고 내놓았다.
아이들 교육비만도 백만원이 넘는데...
공과금을 비롯한 꼭 써야할 지출금을 남편 몰래
비자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찬거리는 정말 보릿고개를 떠올릴 만큼 처절한 우리...
그런 밥상을 불만으로 툴툴대는 사람이
우습게도 남편이다.
몇 해만에 올라오시는 어머님께 보릿고개형 밥상을
올려야 하나, 아니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누구네서 돈을 꿨다는 핑계를 대고 제대로 된
찬거리를 장만해야 하나,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7남매를 낳고도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받지 못하신
어머님께 나는 정말 잘해드리고 싶다.
남편의 무책임한 가장노릇이 밉고
그 형제들의 그릇됨이 미운 것과 상관없이.
내가 두 아이의 엄마로써 감당해야하는
버거움은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 못한 7남매를
가슴으로 품고 사셨을 어머님의 버거움과는
감히 비교도 안 될 것임을 나는 안다.
어머님의 아픔이 연로하여 쑤신다는 삭신의 아픔보다
한스러운 지난 세월, 보상받지 못할 그 마음의 상처가
더 큰 아픔으로 존재함을 안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생각보다는
같은 여자로써 엄마로써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기에
기회가 주워 질 때마다 내 나름대로 어머님의
희생을 조금이나마 보상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살갑게 잘 해드리고 싶다.
이런 내게 누군가 ‘참,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절대 ‘아니올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내 나름대로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가다 보니
나보다 앞서서 가시밭길을 지나간 사람들의 고통과
내 뒤를 이어서 오는 사람들의 고통에서 동지감을
느끼고 방관하지 못하는 오지랖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모님 딸 결혼식에 남편은 또 일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늘 그런 식으로 회피하는 남편을
내조하지 못한 꼴이 되어버린 나는 죄인처럼
당당할 수가 없었다.
꾸부정한 어머님은 두리번거리며 남편을 찾았고
나는 당신의 아들이 열심히 가족 위해 희생하는
성실한 가장이라고 너스레를 떨어드렸다.
형님과 시숙님도 살갑게 어머님을 대했다.
예쁘게 커가는 손주들을 세월 속에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로 바라보던 어머님께서
서울서 하룻밤을 보낸다던 말씀을 번복하셨다.
막내 이모님 댁에서 주무신단다.
나는 여러 번 어머님께 우리 집에 오실 것을 말씀드렸지만
한사코 사양하셨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어머님이 이모님 댁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정말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왜 그렇게 물어? 엄마가 거짓말 하는 것처럼
보였어?“
뜬금없는 질문이었고 뜨끔한 질문이기도 했던
딸의 질문에 나는 잠깐 생각이 많아졌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표정과 행동이 가식으로
보여졌나, 그런 제 엄마를 지켜보고 쓴 소리
잘하는 딸래미가 탓하고픈 것일까...
“아니, 엄마도 힘들잖아요. 할머니 오시면...
그리고 반찬도 없는데?“
가식이기보다는 제 엄마가 힘들까봐
걱정했다는 딸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지만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나는 여전히 편치 못한 마음이었다.
“진수성찬이 많아야 잘 해드리는 것은 아니야.
반찬이 없더라도 따뜻한 밥에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되는 거지. 할머니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아쉬운 마음을 딸에게 털어 놓으니 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단다...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저녁에 들어온 남편에게 들어오자마자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님 곧 돌아가시게 생겼더라. 그때 가서
울고불고 하면 다들 효자아들이라고 칭찬하겠지!
떼돈을 버느냐고 오랜만에 올라오신 어머님 얼굴도
못 뵙는 잘난 아드님!!!“
내 말에 남편이 입을 닫았다.
다음날인 오늘 아침,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난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3째 시숙님이셨다.
“제수씨, 어머님이 거기 간다네요.”
이모님 댁에서 주무시고 다음날 바로 해남으로 가신다기에
가셨겠구나, 생각했던 어머님이셨는데...
우리 집으로 모신다니 “안 내려가셨어요?” 라고
묻기보다는 “네, 그렇게 하세요.”하고 대꾸했다.
웬일이지? 며칠 계실 건가? 반찬은?...
전화를 끊고 내 머리가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쉬웠던 마음이 간사를 부리기에 나를 쥐어박듯
달래고 집안을 서둘러 정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숙님은 자신은 바로 가야한다며
나보고 내려오라고 했다.
내려가서 맞고 보니 어머님만 계실 줄 알았던 자리에
2째 이모님도 함께 계셨다.
살짝 당황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님의 체면이 있지...
따뜻한 밥만 차려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 고난은 그 사람이 받아 넘길 수 있는 만큼만
주워진다고 했는데... 내 고난 주머니는 참으로 큰 듯했다.
두 분을 모시고 올라와서 커피를 내놓고
냉장고에 달랑 하나 남아 있던 배와 이틀 전에
친구가 싸들고 왔던 단감을 내놓고 무거운 마음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해맑게 웃어보였다.
나는 탤런트를 해도 굶어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 누가 좀 써줬으면 좋겠다.
“어머님, 이모님 어제 저희 집에서 주무시지 않아서
얼마나 섭섭했는데...우리 어머님 저의 그 마음을
알고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내 말에 두 분이 껄껄껄 웃으셨다.
“뭐 드리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제가
모두 만들어 드릴게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우리들 먹는 대로 드시겠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보니 며칠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님께서 금방 내려가신다는 거다.
웬수같은 내 남편, 5남이가 오전 일만 마치고
해남까지 모시고 내려간다고 하셨다.
아침에 나갈 때도 아무 말 없던 남편이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다니, 곁에 있으면 궁둥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으니 남편이 전화를 했다.
몇 분 안에 도착한단다.
모셔 드리고 바로 올라오려면 시간이 없으시단다.
뭐 하러 바로 올라오느냐고 며칠 있다 오라니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행하는 일이라며 바쁜 척을 했다.
하지만 아들 노릇하겠다는 모처럼 먹은 기특한 그 마음에
나는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남편이 도착하고도 한동안 수다가 이어졌다.
세상에 제일가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머님 앞에서 나는 평생 웃어야 할
웃음을 터트렸고 그만한 미소를 떠올렸다.
어머님이 행복해 하셨다.
공부 잘하고 예의바른 손주들이 커가는 것이
똑 부러진 며느리 때문이라고...입이 거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에 내 마음이 어찌나 죄송함으로 묵직하던지...
어머님이 남편 차에 오르기 전에 내 손에 2만원을
쥐어주셨다. 한사코 마다해도 끝내주신 그 거금을
나는 황공한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잠시 들린 어머님께 뭐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지만...마음이 편안하다.
세상 언제 떠날지 모르는 연로한 어머님께서
내 마음을 가다듬을 기회를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
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딸래미가 하나씩 꺼내 먹는 사탕을 한 봉지 담아서
입 심심하지 않게 내려가시면서 드시라고 건넨 내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신 어머님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