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곱게 진 감잎이 스치는 바람에도 스르륵..스르륵...땅 위에 낙화처럼 쌓인다.
탈곡기 돌아가는 황금들판도 며칠 사이에 벌거숭이가 되어가고 곧 양파 모종을
심기 위한 비닐멀칭이 한창이다.
농촌들판도 바쁘고 나도 바쁘다.
둔한 머릿속으로 일의 앞 뒤를 재고 우선 순위를 정하느라 혼자서 복잡~하다.
요즘은 가을을 느낄 여유도 없이 바쁘다.
일년 중에서 가장 큰 행사가 다음 주 화요일 부터 2 박 3 일의 일정으로 짜여져 있어서
온 집을 발칵 뒤집 듯이 청소며 준비물 챙기기, 비품구비, 결산보고서 작성,회계보고서
작성에 감사 준비,조경작업까지.............
수십가지의 일을 동시 다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너무도 바쁜 나날들이라
아침 해가 어디서 솟았다가 어디로 저물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밝으면 아침이고 어두우면 밤이러니..하면서 사는 요즘.
다행한 것은 아들도 기숙학교에 있으니 엄마가 이렇게 바빠서 저 챙겨주지 않더라도
하루 세끼 더운 밥 때 맞춰주고 세탁도 기숙사에서 다 ~해결 해 준다니 얼마나 좋은지.
늦은 밤에 학원 갔다가 기숙사에 들어 갔을 때 야참을 못 챙겨주는게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어쩌랴......
저 나중에 키우면서 대학 공부 시키고 부족함이 덜 하도록 이렇게 불철주야(?)로
엄마 아빠가 녹초가 되도록 일을 하는 것을.....
이해하겠지.
이해 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일인걸.....
낮에는 바깥 일을 보고 밤에는 서류 정리를 하던 남편이
\"당신 알바할래?\"
\"무슨 알바?\"
\"내가 다 정리한 서류들을 목록 별로 다시 옮겨 적고
또 다 했으면 날짜 별로 구분지어 옮기는 일인데 알바비 톡톡하게 줄께.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아.
자잘한 일까지 다 할려니 헷갈리네~~
당신이 하고 난 다른 일 좀 하게 도와주면 좋겠는데....\"
낮에도 일을 한 후라 그냥 자고 싶었는데 남편이 바쁘다니까
또 짭짤한 알바비 준다니까(아내한테 이런 식으로 용돈을 준다.ㅎㅎ)
하지 뭐. 하고 말고......
한다고 말을 하니 일감을 두두둑.......
거실 소나무 차탁 위에 수북~하게 갖다 준다.
\"이걸 다~~하라고?\"
\"그럼...일년친데 다 해야지.
왜? 돈 싫어?
안 할거야?\"
\"아니 아니....할건데..너무 많잖아.
더 올려 줘.
안 그러면 안할래.
그냥 자는게 낫겠어.
나 같은 고급 인력을 어디.....\"
그래 놓곤 안방으로 들어 오는 시늉을 하니까 ㅋㅋㅋㅋㅋㅋ
남편 정말 인 줄 알고 따라 들어오며 올려 주겠단다.
항상 이 맘 때 쯤엔 일에 상관없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은근히 아내를 기쁘게
해 주던 남편이었다.
일은 많고 바쁘면 서로가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쉬운데 순간 순간 잘 웃겨 주고
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한 작은 이벤트들도 만들어 준다.
그렇다고 큰 돈을 순풍 순풍 주는게 아니라 일을 하다가 너무 자잘한 일들 때문에
큰 일이 차질이 생길라치면 그 일을 대신하게 하고 웃으면서 할래? 말래?
그러면 난 덤으로 좀만 더 주면 하지......
그런 식으로 단돈 몇 천원부터 몇 만원까지 다양한 알바를 뛴다.ㅎㅎㅎㅎ
월급을 따로 안 받고 남편 통장으로 한꺼번에 들어 오고 모든 세금이나 적금도
남편이 다 알아서 하니까 난 솔직히 너무 편하다.
쪼들려도 신경 안 쓰고 마이너스를 쳐도 난 모르쇠로 일관.
어느 해 던가?
남편이 힘들다고 나보고 가계부 적고 돈 관리 하라기에 펄~쩍 뛰곤 도망을 했다.
숫자개념도 없고 요지조리 메꾸는 실력도 모자라고 난 그런거 못한다.
보너스가 들어와도 따로 돈 달라고 안하고 월급이 들어와도 돈 달라 안 하는
아내를 위해 가끔씩 용돈을 주면서 재밌는 일도 꾸미는 남편.
결혼하고 잠깐은 남편 월급으로 살림을 살았지만 거의 대 부분을 남편이 했다.
필요할 때 타 쓰는게 훨씬 편하더만.
적은 돈으로 골머리 앓지 않아도 되고 애들한테도
\"아빠한테 가서 얘기하고 돈 타서 가라~~\"
이제는 애들도 응당 아빠한테 돈 타서 쓰는 줄 안다.
그런 남편이 요즘은 아내를 챙긴다.
분명히 아내인 나도 월급을 받건만 따로 달라고 안하니 돈 필요하면 달래라고...
이제껏 필요할 때 마다 그랬는데 남편은 아내가 큰 것들이 필요 할 때가 있지 않냐고..
특히나 요즘 같이 총회기간 중에는 지인들을 위한 선물 준비로 제법 많은 돈이
들어 가는 걸 남편도 알기에 핑계 삼아 일도 시키고 용돈도 챙겨주는 일로
알바를 시키는데........
아고고..허리야...다리에 쥐 내려.......
도무지 서류들처럼 숫자가 빼곡히 적히고 이 항목이 조 항목 같고
저 항목이 여기 있는 이 항목이랑 비슷하고.........
칸칸마다 동그라미를 잘 맞춰 적어야 하니 까딱하다가는 십만단위가 백만단위가 되니
도로 통행료 몇천 몇 백원부터 크고 작은 행하나 공사 영수증까지
줄줄이 서류철에 있는 것들을 꼼꼼하게 정리 해 준 것을 다시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인데
나 못하겠네...진짜로... 눈도 아프고 목 고개도 아프고 숫자가 이리저리 춤을 춘다~~`
눈에 힘줄 세워해야 하고 가뜩이나 악필이 날필까지....
친정엄마 말씀이 내가 글씨를 적으면 미친년이 널 뛰는 것 같고
글씨를 다 적어 놓으면 꼭 미친년 바짓가랭이 같다 하셨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얼마나 날려 적고 휘적 휘적 갈겨 적었으면.........
그 글씨체로 적자니 안되겠고 바로 적자니 손가락에도 쥐가 내리려 한다.
아무리 작대기를 똑 바로 내려 그어도 삐뚤빼뚤............
숫자는 왜 그리도 모양이 안 나는지........
그렇게 두어 시간을 실갱이를 하다가 잠깐 거실 바닥으로 누워 버렸다.
에라이~~`
될데로 되라지 잠깐만 눈 좀 붙히고 하지 뭐.
그렇게 해서 큰 대 자로 거실에서 나동그라져 자는가 싶었는데
얼마나.....시간이 갔을라나.
\"아..잠이 오면 방에 들어가서 자지 이게 뭐야?
그리고 시간이 벌써 새벽 두시가 넘었어.
들어가서 자~~~\"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엄마야~~~~
언제 시간이 저렇게나 지났어?
\"나 잠깐 잤지 싶은데 시간이 저렇게나 많이 흘렀어?
빨리 씻고 자야겠다.
새벽기도 갈래면......\"
놀래서 얼른 일어나 부시시 감긴 눈을 부비며 일어나 안방을 향해 걷는데
남편이 뒤에서 키득키득 웃는게 아닌가 !!
뒤를 돌아봐도 그냥 웃고만 있다.
들어가던 발걸음을 돌려서
\"왜 그러는데요?
들어가서 자면 되잖아~~
남은 일은 내일 해 줄께요.
나 들어가 잔다이~~\"
\" 들어가서 시계 좀 봐~~킥킥킥....낄낄낄.....우하하하하...\"
응????뭘 보라고 ????
시계를 보라고?????
방에 들어 와 침대 발치에 있는 시계를 보니 아.......아직 10시 30 분.밖에 안 됐잖아.
뭐야 그럼????
\"어느 시계가 맞아?\"
남편은 그래도 배를 잡고 웃기만 한다.
한참을 웃고 난 남편이 내가 하도 곤히 자니까 일을 더 시키면 안되겠다 싶어서
들어가서 자라면 또 일어나 일을 할 것 같고 해서 시계를 나 몰래 휘리릭~~~
그것도 모르고 새벽기도 나갈 시간 까지 두시간 밖에 안 남았다며 세수를 급히 한다,
침대를 정리한다 부산을 떨었으니.......
눈을 흘기는 아내를 향해 남편의 개구진 얼굴이 아직도 웃고 섰다.
\"당신 몰래 시계를 돌렸는데 깰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졸리면 그냥 자요.
내일해도 되니까.
그리고 당신 용돈 더 줄텐데 그 돈으로 뭘 할건데?\"
\"음....알면서 그래. 이 맘 때는 일년 동안 나 이쁘다고 챙겨주시던 지인들께
선물하는 비용이 들잖우 왜?
그거 할려고.\"
\"그래? 안 모자라겠어?
더 줄까?\"
\"아~~니. 내 살림에 맞춰 하지 뭐.
받은 만큼 다 하고 살려면 우리 살림 거덜나......\"
늦은 밤.
아내를 골려주고도 즐거운 남편과 놀림을 당해도 즐거운 아내인 내가 한바탕 같이 웃고
난 말 그데로 잠을 잤지만 남편은 잔무가 많아 서재로 들어 갔다.
얼른 행사가 마쳐야 우리의 가을여행도 있지.
여름에 떠나지 못한 휴가를 짙어가는 가을을 향해 두 마음 함께 빠지러 간다~~~
장난꾸러기 남편과 어리벙벙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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