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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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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속일지라도6


BY 그림이 2008-10-10

지루한 글 읽어주시기가 좀 거북한 분도 계시겠지만 왠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어 자꾸 쓰고 싶습니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께는 도둑질 하다가 들킬까봐 조바심하는

 기분으로 씁니다. 언젠가 막내동서가 형님, 형님은 글 쓰시는 분이잖아요, 이만큼 세월이

 흘렀는데 응어리를 푸세요. 일기체 삼아, 한 말도 있고 또 어느 날 은 아침마당에 내

 저기에 나가고 싶다 살아온 이야기를 한번 하고 싶다고 하니 작은 아들이 펄쩍 뛰더랍니다.

 엄마 우리가 알면되지 방송국에 가서까지 엄마가 집안 망신 시킬까봐 말리더랍니다.

그래도 큰 아들은 엄마 건강상도 좋습니다. 엄마가 쓰고 싶은 거 마음대로 쓰 보세요.

그건 결코 흉이 아니니까요. 엄마세대 삶이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들께는 자식과 사는 희망도 부여해 줄 겸 엇박자인

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쓰고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끔씩 남편이 딸 타령을 한다. “요즈음 여자들이 목소리가 커서 아들보다 딸이 부모를

더 생각는다던데 처제 봐 사위가 처부모를 얼마나 생각하나 아들 아무 필요 없어, 삼십년

가르쳐 놓은 거 30일이면 바꿔 놓는다고 하던데 요즈음 세태를 말한다. 내 입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세월이 나의 게 가르쳐 준 교육이다. 처제 사위 말 하지 말고 당신은

 장모한테 얼마만큼 잘 했느냐? 그만 지난 세월에 울화통이 터진다. 그만큼 나는

 나한테보다도 영감이 장모한테 한 일들만 생각하면 화들짝 가슴이 무너진다.

남편의 행동 물론 본인이 더 문제 가 커겠지만 그 뒤에는 시어머님과 형제간들의

 조정도 많았다고 본다. 우리 시어머니 대단한 분이시다. 맏동서는 내가 억울해하면

 동서 시집살이를 들려준다. 결혼 후 친정조모가 돌아가셔도 친정을 보내주지 않던 일,

친정아버지가 작두에 발가락을 잘려 나갔다는 연락이 와도 친정을 보내주지 않던 일

구구절절이 살아온 일을 이야기 해 주셨다. 친정엄마가 딸네 집에 와서 당한 일, 눈물을

훔치면서 밤새도록 얘기하셨다. 물론 나를 참으라는 뜻도 내포 되었지만 살아오신 얘기를

 내가 억울해함에 동병상린 이랄까 내 아픔을 어루만져 주셨다.

바로 위 동서는 자네 복이야 부모님도 형제간도 아무도 아주버님 낭비벽은 못 고쳐

단 희망은 마누라가 들어와서 고쳐주길 바랐는데 자네가 착해 빠졌으니 그 말에는

 이혼을 하라는 낌새도 있었다. 내 푸념을 늘어놓겠다. 나는 자존심도 강했고 실수도

 별로 하지 않았다. 원래의 성격도 그렇지만 직원 30여명이 한동네의 사니까 나쁜 일은

소문이 더 잘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남편이 정말 발광을 해도 제풀에 죽도록 말대답을

안했다. 싸움이 되지 않도록 내가 자꾸 피한다. 그러나 한집에 사는 사람은 모를 턱이 없다.

 빚을 져오면 어쩔 수없이 갚아주고 외박을 해도 참아야 한다. 어느 날 세든 사람이 아주머니

 그러고 어떻게 살아요. 던지면 같이 던지고 죽기 살기로 달려드세요. 퇴근해 밥을해 배고프다고

 밥상이 마당에 던져질 때 달려와 하는 소리다. 어떤 사람은 기한을 채우지 않고 나가려고 했다.

아주머니 남자들은 나쁜 거는 금방 배우잖아요. 우리남편이 자꾸 큰방 아주머니 봐라 저러고도

 산다고 기막힐 일이다. 남의 집까지 피해주는 남편이다. 더 가관인 것은 모자가 어쩌면 남의 속

 뒤집히는데는 선수다. “엄마 00엄마 처녀 때부터 잇빨한거 엄마 선 볼 때 못 봤어요. 나는 그때

 못 봤는데. 나도 못 봤다. 그래 속을려고 하니까 그렇게 속겠더라. 우리가 속았지 뭐 또 어느날은

 엄마 누나들도 삼베 홋이불 안 해 줬는기요. 우리장모는 왜 삼베 홋이불도 시집올 때 안 해줬는지

 모르겠다. 딸도 둘 뿐인데 처제도 안 해줬는가 모르겠다. 시집올 때 해 온거 뭐 있더노 그것만 안

해 온 줄 아나 혀를 끌끌 차신다. 방 한 칸 얻어주지 않는 시어머니 학교 시키려니 잡비 하숙비 한 푼

 보텐 일 없는 시어머니, 결혼 첫해 쌀 한가마니가 유일하게 내준 시댁의 첫 살림, 어쩌면 양심이라고는

그것까지는 또 좋았다. 시어머니가 오셨다는 말을 듣고 친정엄마가 개고기를 사오셨다. 16 살 위인

시어머니를 당신 시어머니처럼 모셨다. 그렇게 해 온 사돈에게 삼베 홋 이불을 안 해준 타령을 나 없는데

 하셨는 모양이다. 딸이 당한 고통을 엄마는 알고 그 날 바로 시골 가서 나락을 팔아 이튼날 돈과

먹을거리를 가지고와서 퇴근 시간이 다되어 동네 어귀에 서 계셨다. 길에선 어머니를 발견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왜 그기에 서 계십니까? 너와 의논하려고 돈을

가지고 와서 시어머니 앞에 내 놓을까 너 가 얼마나 당했나 싶어 밤새 잠이 오지 않더라.

시어머니께 꾸중 한번 듣지 않았던 엄마는 딸이 불쌍하기만 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섰다.

엄마 내 돈 번거 삼베 홋이불 집채만큼 살 돈 벌었다. 돈은 무슨 돈 엄마 그 만큼 해주었어면 됐다

. 가지고 오신 잡곡 채소 이웃친구 집에 주고 엄마는 그길로 동생집으로 갔다. 이 부분은 근래와서

 두고두고 남편한테 울겨 먹는 대목이다. 양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너거 엄마라고 해 부친다.

 그때 길에 서계시던 엄마 모습은 내 가슴에 지워지질 않고 평생 안고 갈 불효를 저지런 딸이라고 자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