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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BY 그대향기 2008-10-07

아버지.

아버진 절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셨지만 전 아버지 말씀에 톡..톡..바늘같은 가시를 담고

대들고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했더랬지요.

다른 집 아버지들처럼 가족들 위하고 돈도 잘 벌어다 주지 않던 아버지는

진짜 미웠거든요.

엄마가 다 짊어져야 했던 그 무겁고 힘들었던 생활고가 전 너무도 싫었고

그 모든 것의 책임은

오로지 아버지의 술주정과 가족을 나몰라라 했던 너무나 이기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안일주의가

밉고도 야속하고 어버지의 그 어떤 말씀도 곧이 안 들리고 술의 힘을 빌린

망언처럼 들렸었거든요.

그냥 맨 정신으로 말씀하셨더라면 받아들였을 말씀들이 아버진

꼭 거나~하게 취하신 상태에서

\"공부 열심히 해라....

사람이 사람도리를  다 하면서 살아야 한다.....

누구를 원망해서도 안된다.....

아래를 내려다 보고 살아야지 치 보고는 못산다....\"

날이면 날마다 술에 취하신 음성으로 중얼중얼 혼잣말처럼 입 속에서 푸념처럼

들리던 그 지겨웠던 말씀을 결혼하고 애들 낳고 살아보니 다~진리였음을 깨닫네요.

 

그래도 아버진 너무 하셨답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엄마를 혹사시키셨고 아버지 본인도 힘든 삶을 짊어지시곤

그 모든 과정을 어린 5남매들에게 다 전가 시키신 야속한 부정이었습니다.

엄마가 바리바리 가지고 시집 오신 그 많은 재산 다 날리고도 모자라

아버진 노름에 술에 군기피까지......

우리 위로 오빠 셋이 어이 없게도 희생된 일은 엄마가 죽는 날까지 가슴에

시퍼런 멍이 되고 한이 된 일이지요.

엄마가 저도 나기 훨씬 전에 지금의 큰오빠, 엄마한테는 세번째 아들이지만요

그 오빠를 데리고 철길에 여러 번 가셨답디다.

왠지는 아버지께서 더 잘 아실거 같아요.

자식들 먼저 떠나보내고도 모자라 극심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되는

찢어질듯한 가난에다가 술주정 남편에 아내 폭행까지......

아버진 아버지의 슬픔에 젖어서 엄마를 학대했고 엄마를 삶의

한 모퉁이로 몰아 세우셨더군요.

 

달려오는 기차소리에 아들의 손을 꼬옥잡은 엄마는 철길로 두 발을

올리시기까진 하셨는데

어린 아들이 쳐다보던 그 맑고 또렷한 눈망울에 차마 끝까지 레일을 밟진 못하셨다고....

덜거덕 덜거덕..........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던  레일 위를 구르던 기차바퀴소리에 모든 시름을 다 버리고

뛰어들려 했던 그 엄만 어린 오빠의 손에 이끌리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더랍니다.

\"엄마..울지마..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엄마 다 드릴께. 응?\"

어린 아들이 하는 위로의 말에 오열하고 돌아선 그 기찻길이 엄마는

무섭더라고 하시더군요.

그 큰 아들은요?

글쎄요....

과연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고 있으며 많은 용돈을 드리고 계시는지요....

그 날 그  약속을 지키고는 계시는지요.....

그 뒤로도 아버진 엄마를 힘들게 하셨지만 엄만 꿋꿋하게 참으시고

오남매를  악착 같이 길러서 사람구실하게 만드셨지요.

아버지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술기운이 거나하신 건덜렁거리시던 모습이지요.

눈 뜨면 담배연기가 자욱했던 안방과 간밤에 내 뿜으신 악취......

전 싫고, 싫고, 또 싫었지만 학교에선 내색 않고 용감씩씩 명랑소녀 그 자체였지요.

 

내 삶은 내 것이다 ~!!!

아버지도 엄마도 날 어쩌진 못한다.

나의 길은 내가 열어 갈 것이다.

참자.

참고 또 참다가 내가 힘이 있을 때 내 길을 열리라.

 

아버지.

그런 독한 마음 먹고 살아가는 딸이 어느 날

중학교 학생회장이 되어 돌아 왔을 때

아버진 그냥 빙그레~~웃으시기만 하셨고 엄만 돈이 들어가면 어쩌냐고....

그 당시 이미 엄마의 땅은 날아가 버린 다음이었고

군데군데 엄마의 핏방울 같았던 요소요소 땅도 다 날린 뒤 였지요.

바탕이 허전했고 건져 올릴 아무것도 없었던 궁색한 살림에

오빠들은 아무도 뭐 뭐 한거 없는 집에서 큼지막한 직함 하나 들고 들어 온 딸이

반가움이 아니라 오히려 근심거리였으니....ㅎㅎㅎ

그냥 웃을랍니다.

환영 받은 학생회장이 아니라 엄마는 딸이 기 죽을까 봐

전 학년도 언니는 온 교사들 다 엄청난 식당에서 식사 대접 했단 소리에

못하는 내 딸, 못해주는 내 딸이 교사들한테 기 죽을까 봐 얼마나 상심해 하시던지....

아버지.

그러고 며칠 뒤 아버지께선 타지도 못하시는 자전거를 사서 끌고 오셨지요.

키는 껑충 크신 아버지셨지만 자전거는 못 타셨더랬지요.ㅎㅎㅎ

그런 아버지께서 3 킬로미터도 더 되는 자전거포에서 그 자전거를 안고오시다 싶이

끌고 오신 밤을 제 평생 못 잊습니다.

삼천리 자전거 였지요?

그 당시는 통학은 시골에 사는 애들만 했고 거의 다 걸어 다녔고

자전거는 정말 좀 산다 하는 집 애들만 타고 다녔던 사치품 정도 되었지요.

그런 자전거를 새 자전거를... 아직 비닐도 안 벗긴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자전거를.

 

\"이제 학생회장이면 공부도 더 잘해야 되고 남들보다 일찍 가야하지 싶어서....\"

말 끝을 다 잇지 못하셨던 아버지.

집에서 제가 다니던 중학교까진 제법 먼 거리였지요.

날마다 남들보다 일찍 학교를 가야했던 딸을 위해 술값을 가불하시어

그 자전거를 선물하셨지요.

아버지한텐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술값 가불.

학교에 처음 타고 갔던 날.

친구들의 부러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지요...ㅎㅎㅎ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기분이 우쭐합니다.

 

\"너거 아부지가 학생회장 됐다꼬 선물 해 주시더나?\"

\"그래~~삼천리라꼬 요새 새로 나온 새빨빨이 모델이다.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봐래이~\"

\"너거 아부지 참 자상하신 갑다~`자전거 모델도 차암 멋지다야~~\"

\"그래. 우리 아부지 참 좋으시지....암....(속으론 많이 슬펐지만).\"

 

그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 기분은 정말 \"짱\" 좋았답니다.

가방을 뒷자리에 이쁜 얼룩무늬 노끈으로 묶고  교복도 잘 다리고 깃도 하얗게 새로 달고

그야말로 학생회장의 복장단정으로 기분이 째지도록 좋아서 반월성 앞길로 씽~씽~

공부도 저절로 되는 가분이었고 걸어가는 학생들이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요.....

\'너거 아부지는 이런 새 자전거 안 사 주싰제?

 얼매나 잘 나가고 튼튼하다꼬....

 최신형인데~~이뿌제?

 울 아부지가...술 안 드시고 사 주신거데이~~\'

아...

그 날 이후의 등교는 꿈결 같이 좋았지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미움도 그 땐 잠시 잊었지요.ㅎㅎㅎ

날마다 술 냄새는 풀풀 났었지만 그래도 용서가 되었었고 아침마다 찌든 담배냄새도

여전했지만 안 나는걸로, 안 맡은 걸로 혼자서 익숙한 일상인 듯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아버지.

일주일만에 깨어진 꿈결.

일주일만에 산산조각이 나고 피 튀기는 전쟁이 있을줄이야.....

세째오빠는 그 아버지의 처음 선물을, 자식들에게 한 유일하고 처음인

선물을 달랑 타고 나가서

어디가서 팔아 먹고 그 돈으로 혼자 놀고 왔지 뭡니까!!!

전 울고 아버진 세째오빠를 피 나도록 패 주고......

원망과 미움은 또 오빠를 괴롭혔고 그 뒤로도 세째오빤 참 집안의 걱정거리고

우환덩어리였지요.

그 자전거가 어떤 자전건데.......

하지만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자전거.

아버지께선 그 자전거를 끝으로 선물은 없으셨고

돌아가실 때 까지 여전히 술과 담배로 일관된 삶을 사셨지요.

자신을 갉아 먹는 암을 키우시면서도 줄이시지 못했고

더더욱 끊지 못하신 엄청난 집념의 연속이셨지요.

제가 고등학교를 타향에서 다니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나 오빠들의 반대는 심했지만

전 그 상태의 집에선 더는 못살 것 같았기에 과감히 떨치고 일어섰습니다.

지긋지긋한 술냄새와 담배냄새는 저의 폐를 갉아먹는 것 같았고

제 뇌까지도 녹아 내리는 기분이었답니다.

아버지.

전 혼자서 고등하교를 마치고 직장도 좋은 곳으로 다닐 수 있어서 제 나름의 삶은

성공적이라 얘기하고 싶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월급으로 사 드린 (그 땐 고가의 벨로아지 트레이닝복..츄리닝)

을 아버진 늘 애용하셨고  돌아가실 때도 그 옷으로 입고 가셨지요.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 선물이 가장 마음에 들으셨었고 값진 것으로 생각하심입니까?

돌아가실 무렵 엄마를 시키시어

\"숙이가 해 준 그 옷 갈아 입히도라..\"

그렇게 하셨다면서 아버지의 마지막 옷은 연한 베이지색 벨로아지 트레이닝복이셨지요.

아버지.

그 딸이 시집 가는 것도 안 보시고 그리도 빨리 가실걸 왜 독하게도 엄마를

힘들게 하시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몸을 혹사시키셨어요?

담배로 폐를.. 술로 위장과 간장을.....깡소주로 모든 내장을 다 망치시고

그렇게 허허롭게 가실껄......

 

아버지.

하나 사위가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 너무 많이 울다가 큰엄마한테

저지를 당한건 아시는지요?

사위가 딸을 사랑해 주고 호강시켜주는 것도 못 보시고 돌아가셨다고

울고 울고 또  통곡하다가 큰엄마한테서

\'사우가 장인어른 죽은데서 이리 우는 법이 어딘노? 고마 우시게...\'

떼 말리고 말리면서 진정시켰지만 또 울고 했지요.

아버지께서 속 정으로 그렇게 사랑하셨던 그 딸은 서럽게 울던 그 사위의

끔찍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요.ㅎㅎㅎㅎ

암 부러워들 하지요 많이들요......

두 외손녀도 잘 자라줬고 외손주도 씩씩하게 멋지게 잘 자라주고 있네요.

얼마전에는 큰 외손녀가 좋은 가정에 시집을 가서 먼 나라에 공부하러 갔답니다.

결혼식 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었답니다.

얼마나 기뻐 하실 아버지가요.....

아버지.

아버진 세상을 많이 원망하시며 사셨지만 전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살 맛 납니다.

믿음직한 남편, 끝 간데 없이 사랑해 주는 남편,

사랑스런 삼 남매랑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고마워요 아버지.

아버지의 그런 삶이 절 강하게 했고 독립심을 키워줬고 세상을 바라보는

올곧은 눈을 키워줬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지요?

그런 의미에선 아버지께 감사드려야겠지요.

서글프지만요...ㅎㅎㅎㅎ

그러나 아버지.

이젠 저 행복하고 싶어요.

행복만을 모으며 애들에게도 강하지만 힘차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키워주고 싶답니다.

힘들게 산 만큼 우리 애들한테는 힘겹게 안 하고 싶네요.

아버지.

힘드셨던 아버지의 삶이 뭍히던 날

전 큰 딸을 뱃속에 넣고 있었고

참 많이도 울었었지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미움도 애증 그 모든게 같이 뭍히면서 오히려 허탈하더군요.

이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요.

며칠 있으면 아버지의 기일 이네요.

올해도 못 갈 것 같습니다.

제 직장 아시지요?

이 맘 때 가장 큰 행사가 있어요.

그래서 요즘 매일매일이 너무 바쁘답니다.

아버지 기일하고 맞 물려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그냥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걸로 대신할께요.

용서하시고 절 낳던 날 하루 종일 직장에서 막걸리파티를 하고 오신 아버지를

동네에선 가시나 낳고 술 내는 사람 처음 봤다고 하셨다지요?ㅎㅎㅎㅎ

아버지식의 사랑이 가슴이 아프도록 시린 이 가을 밤에 그만 아버지를

자유롭게 해 드릴겁니다.

제가 결혼하고 거의 매일 밤을 절 위해 문을 잠그지 못하셨다던 아버지.

그 딸은 아버지를 잊자고 , 잊고 살자고 얼마나 마음 독하게 먹었던지요....

죄송했고요  미안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시고 그렇게 사신것을......

이제는 아버지의 묘지도 바람에 날리우고 없지만 아버지의 모습만은 언제까지나

제 숨결이 멈추는 그 날까지 제 가슴에 남아 있을겁니다.

 

아버지.

사랑했습니다.

아버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