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오는 듯도 했다.
발전이 되는가도 싶었다.
돈이 있으면 우리도 뭔가 다를 거야...
그렇게도 생각했었다.
어느 날 돈이 생겼다.
그것도 5천만원씩이나...
친정아버지께서 남편과 산지 15년 만에야 믿음이
생기셨는지 좀 넓은 평수로 옮겨 보라며 주신 돈이었다.
결혼 생활 10년을 넘기고 나서야 늦은 철이 들어 버린 나.
나의 넋두리가 부모님에겐 근심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버렸다. 그래서 함구하고 살았다.
없어도 있는 척.
슬퍼도 기쁜 척.
힘들어도 씩씩한 척...
그것이 잘한 짓인지 지금도 나는 자신할 수 없다.
1년치 식량을 해마다 대놓고 친정에서 가져다 먹고 있다.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지금 경기가 어려워서 힘들지 않은 사람 없는 판에
아버지께서 주신 목돈에 2~3일은 얼씨구나, 싶었다.
하지만 불경기가 아니어도 남편은 돈과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사람이었다.
지금은 대놓고 “나만이래? 나보고 어쩌라구?!!! 돈? 돈?
넌 내가 돈으로 밖에 안보이지?“라며 오히려 큰 소리다.
그나마 작은 평수의 전세 보증금도 손대고 싶어서 한번씩
입에 올리는 남편과 몇 번을 싸우기도 했었다.
그런 남편에게 아버지께서 주신 돈을 얘기 할 수 없었다.
“요즘 힘들지? 그래도 너희가 열심히 사니까 아빠가
보기 좋구나. 아빠,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먹을 것
계속 되 줄 거다. 지금처럼 열심히 살어. 부모 죽은 다음에야
땅덩어리 어쩌든지, 재산을 어쩌든지...이것으로 애비는
살아서는 돈을 더 보태주지 않는다. 동생들에게는 비밀이구...
요즘 차도 새로 뽑아서 힘들 텐데 더 못 보태줘서 미안하구나...“
친정아버지께서는 오히려 내게 미안해 하셨다.
이런 분에게 나는 어떻게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5년을 넘게 몰던 트럭을 폐차시켜야 했다.
50만원만 내고 모두 카드사 빛으로 돌려서 차를 사버린 남편은
늘 그랬던 것처럼 호언장담을 했었다.
차가 속 썩이지 않으면 일이 잘 돌아 갈 것이라고...
업무상 필요한 차였기에 나는 남편의 큰 소리에도 불안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벌어지는 상황은 내가 걱정하던 대로였다.
어쨌든 아버지께서 절대 절명의 순간에 내게 구원을 주셨다.
천만원만 남편에게 내놓았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 중의 일부도 전했다.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라...라는 식의...
사전에 아버지께 나는 어렵게 입을 뗐다.
“아빠... 아범에게는 돈 1천만원만 내 놓았어요.
지금 집을 넓혀가는 것보다는 그 돈을 내가 관리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
사람의 변덕을 아빠도 알잖아요. 여유 돈이 있으면
사람이 좀 느슨해진다는 걸... 날 도와주고 싶어서 주신 돈이면
그냥 나를 믿고 주세요. 내가 관리 잘 할게. 꼭 불릴게요...“
아버지께서는 쉽게 내 말에 수긍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사위가 알게 떳떳하게 주시고 싶으셨을 마음 나도 잘 안다.
그런 상황 만들어 드리지 못한 내 죄가 크다는 것도...
나는 어쩌면 부모님에게 있어서는 사기꾼인지도 모른다.
이 죄를 다 어찌해야 할지... 겁난다.
어쨌든 친정 엄마의 도움으로 내 뜻대로 되었다.
하지만 절대 쓰지 않아야 겠다던 그 돈을 나는 벌써 1천만원
가까이 쓰고 말았다.
묶어 놓은 것을 벌써 헐어버리다니...
누군가 그랬다.
남편이 주지 않으면 쓰지 말고 해결하지 말라고...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어떻게 두 아이를 가르치고 먹이는데 쓰지 않을 수 있나...
아이들 일을 해결하지 않고 손 놓고 볼 수 있나...
나 혼자라면 고민할 것도 없다.
굶으면 되니까...
나앉아도 겁날 것도 없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도 될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아이들이 내게는 전부였다.
남편을 벗어나면 뭐든 명분이 설 것 같았는데...
뭐든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 현명한 선택일까.
한참 지나 온 것 같은 삶이
그 자리라니... 제자리라니...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반복되고 있다.
얼키고설킨 복잡한 마음이 언젠가 정리될 날은 오려나.
나의 인생이 이제는 비포장 길이 아닌 아스팔트처럼
원만한 길로 접어들었으면 좋겠다.
남편에게 있어서도 분명 내가 만만하고 쉬운 여자는
아닐 거다.
성질머리 더러운, 아니 두려운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못 놓고 있다.
그렇게 밖에 못사는 그 인생이 불쌍다.
이렇게 밖에 못사는 내 인생이 불쌍다.
이런 줄 모르고 도와주는 내 주변도 불쌍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고 있는 줄도 모를 테니...
도대체 나란 인간은 뭐에 쓰이려고 태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