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여 년 만에 학생이 되어 여름방학동안 전공과목 특강을 듣는다. 3층 강의실은 찜통이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는 분필가루만 날리고 있고 기온은 체온을 육박하는 팔월이다. 온몸이 땀에 젖는 것에 익숙해 갔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강의는 언제나 그 강의실에서였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은 에어컨이 설치된 세미나실에서 강의를 듣게 되었다. 필기를 하는 동안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만큼 쾌적함 속에서 나는 혼자 더위를 느꼈다. 스멀스멀 열이 오르는가싶더니 얼굴이 뜨거워지고 이내 땀이 흐른다. 넓은 강의실에 십여 명뿐이라 우리는 모두 앞자리에 모여 앉았다. 침 삼키는 소리는 물론 숨소리까지 공유하는 공간에서 흐르는 땀을 닦느라 수선을 떨어야 하는 참으로 민망한 순간이었다. 퍼뜩, 그동안 삼복(三伏)을 핑계로 흘렸던 땀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졌다.
몇 해 전 가을이었다. 등줄기에 불이 붙은 것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한 바탕 땀이 흐르고 나면 오싹하면서 한기를 느꼈다. 감기기운이 있나보다 하며 그냥 지나쳤다. 웬만해선 병원엘 가지 않는데다 약 또한 먹지 않고 지낸다. 다른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감기쯤은 퇴출시키곤 했다. 단풍이 짙어가는 중이었다. 무심하게 스치는 소슬바람에 가슴이 알알하였으니 언제나 그랬듯이 가을을 앓는 것이려니 하며 남의 일처럼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추위가 시작되었는데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등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나면 땀으로 세수를 해야 했다. 혼자 있을 때는 그래도 수습하는데 무리가 없었지만 누군가 옆에 있을 때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잦아지기만 했다. 그 무렵 근무하던 사무실에는 모두 남자들이었고 춥다, 추워하며 난로가로 모여드는데 나만 땀을 흘리고 있으니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도대체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먼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갱년기 증상이라는 낯선 단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국어사전에서 갱년기를 찾아보았다. “사람의 몸이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라는 삭막한 설명에 온 몸의 수분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신체의 모든 기관이 갑자기 정지되어 미라가 된 것 같은 듯 찰나가 지났다. 당황스러웠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커다란 밥사발에 고봉밥 푸는 게 너무 좋다며 스무 살에 영농후계자에게 시집간 친구는 한의원에 가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나에게는 갱년기라는 것이 없을 줄 알았다. 여자들은 몇 번의 탈바꿈을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숙해간다. 아이에서 초경을 치르고 소녀가 되어 국어선생님을 짝사랑하는 가슴앓이를 하면서 비로소 이성에 눈을 뜬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 아이의 우주가 되었다가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엄마는 작아진다. 어느 날 엄마는 가족의 주변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정신적 공황을 겪기도 할 것이다.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쳤더라면 담담했을까, 하지만 나는 생략된 부분이 있다. 엄마가 되지도 못했고 지인들에게 살갑게 대하지도 못하는 자타가 인정하는 피터 팬일 뿐인데 그 갱년기라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더란 말인가. 한의원에 가서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저 사춘기처럼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약을 먹으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계획했던 문구점을 시작하였고 어떤 이상을 느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지났다. 등줄기에 불씨가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늦게 시작한 공부는 재미있었다.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이 폭염 속에서 특강까지 자청해 듣는 중인데 흐르는 땀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는 언니의 도움을 받았다. 언니가 소개한 한의사는 여자였고 내 신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여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증상과, 등에서 어깨와 복부 쪽으로 불이 번지고 있는 것과, 가슴이 벌떡벌떡 뛰어다녀 잠들지 못하는 밤도 금방 이해하며 다독여 주었다. 약 상자에는 친필의 장문편지가 있었다. 여성으로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새로운 날로 이어질 것이라는 격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 나의 해님이 지고 있다. 찬란한 아침은 유년이었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은 거침없던 청춘이었다. 이제 기우는 태양이 나에게 노을을 드리웠다. 노을이 질 때 슬프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인지…. 노을 속에 든 내가 안쓰러워 내 껍데기는 우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