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엄마다... 16년이란 결혼 생활을 해 오면서 요즘같이 지나 온 내 발자취를 돌이켜 본 때가 없는 것 같다. 자신감 상실에 나태함으로 중무장을 해버린 나. 마음에 여유란 없다. 화목할 때보다 원수지간으로 살벌할 때가 더 많은 우리 부부... 가정형편과 공부할 의욕이 없는 아들을 이유로 학원을 1년 가까이 끊었다. 중학교 2학년생인 아들이 다시 학원을 다닌 지 3일째가 되는 날인 어제 저녁이었다. 학원을 보내기위해 저녁을 챙겨 먹이는데 유난히도 아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집은 한창 사춘기인 자식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하다는데 우리 집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음을 나는 인정한다. “아빠 무섭니?” “아니요.” “엄마 무섭니?” “네.” 밥숟가락이 의무적으로 밥공기와 입을 향해서 왕복하기를 반복할 뿐,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산다는데 아들 녀석의 얼굴 어디에도 먹는 기쁨을 누리는 표정이 없었다. 하긴 성의 없이 버무린 콩나물과 며칠째 올라오는 멸치볶음과 오뎅볶음, 김치가 전부인 밥상. 우린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먹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삶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닌데... 녀석은 내 질문에 짤막한 답변을 하면서도 건성이 아니라는 듯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화내면 아빠가 더 무섭잖아.” “아니요, 엄마가 더 무서워요.” “누가 들으면 엄마가 너를 학대하는 줄 알겠구나.” “때려서 맞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에요.” “그럼...” “그냥 엄마의 말은 꼭 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가 싫으니?” “아뇨... 좋지도 않지만 싫지도 않아요.” “그럼 아빠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니?” -난 남편을 증오한다. 증오하는 마음도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전에는 그 말에 전적으로 부정했지만 연륜이 늘수록 이해되는 부분들이 많기에 완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살아 온 환경이 다르다. 부지런한 것이 병이 아닐까, 도가 지나 친 부모님 아래 2남 1녀 중 장녀로 중산층이지만 공주처럼 떠받들어지며 살아 온 나. 홀어머니와 7남매 중 5째로 자라난 남편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타지를 떠돌며 홀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뒀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말이 ‘호로자식’이란 소리였단다. 아버지의 빈자리로 아팠던 유년 시절을 보낸 남편이 제 자식들에게 필요할 때마다 아빠의 자리를 늘 공백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과 화목한 가정을 꾸린 다는 것이 뭣인지조차 모르면서도 모든 불상사를 남의 탓만 해대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다. 내가 한만큼 남편이 따라주지 않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늘 벽에 부딪히고 만다. 남편은 작은 설비가게를 하면서 그동안 제대로 된 생활비를 대준 적이 없다. 조금 가져다주면 머지않아 다시 싹싹 쓸어 가져가고 만다. 자신을 무시하는 나를 이유로 술을 마신다고 했다. 일주일이면 6번은 술을 마시는데 때마다 내 신경을 건드릴 온갖 것들을 주제로, 두서없는 주정들이 몇 시간씩 이어지곤 했다. 전에는 남편의 버릇을 고쳐보겠다며 나도 같이 마셨고 못지않게 받아치며 떠들어 댔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걸리고 이웃이 걸려서 참을 때가 많지만 나 역시 좋지 않은 성질 머리로 간간히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들이댈 때가 있다.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이제는 경기가 어려워 일이 없다는 이유로 집에서 있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낮에는 먹고 자고 밤에는 새벽까지 TV 보기를 반복할 뿐, 아이들과 어울릴 줄을 모른다. 가장으로써의 권리만큼은 누리고 싶은지 아이들이 등교 준비를 하던지 숙제를 하던지 상관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름을 불러대는데 이제는 당연한 듯 대답도 않고 습관처럼 제 아빠의 허리를 밟거나 주무르곤 한다. 때론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궁시렁 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한다는 말이, “니들 먹여 살리겠다고 뼈 빠지게 고생하는데 이것들이...!!!” 라는 엄포들뿐이다. 남편을 미워하지만 자식들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고 남편 없을 때마다 간간히 잔소리하던 나의 눈 꼬리가 가늘게 아이들을 향하면 그때야 못이기는 척, 몸을 일으켜 아빠를 향해서 다가가는 아이들이 안됐고 그런 아빠를 만들어준 것이 점점 미안하다. 나는 그동안 남편과 살면서 가출을 2번이나 했다. 한번은 아이들과 함께 죽으러 또 한 번은 홀로 죽어 보겠다는 각오로. 삶이 막막하면 죽고만 싶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살면서 주변에 피해를 줄 것이 자신 없었고 아이들을 떼어 놓고 훗날을 기약하며 살아갈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버티며 살아보니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살아 숨 쉰다. 전에는 아이들이 짐스럽기만 했다. 니들 때문에 희생하며 사는 엄마를 비운에 주인공 삶는 비유법이 음식에 조미료처럼 등장했다. 보상심리... 나의 내면에는 늘 이것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아서 이리도 마음이 공허한지도 모른다. 요즘은 보상심리와 함께 죄의식까지 드는 관계로 어느 때보다 복잡한 심정이다. 나 역시 남편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자식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나’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들 녀석이 엄마가 더 무섭다고 하는 대답이 그 증거가 아닐지... 학원에서 귀가하지 않은 작은 딸 없이, 아들과 둘 만에 초라한 저녁상에서 나눈 잛은 대화에서 나는 또 많은 생각을 했다. - “엄마... 저는 아빠를 이해 할 수가 있어요. 친할머니 댁과 외할아버지 댁과의 환경이 너무 틀리잖아요. 아빠 자신도 반성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어쩌지를 못하는 거지요. 엄마는 저희를 많이 혼내지만 왜 혼나야 하는 지를 늘 설명해 주셨고 저희들 마음을 풀어주시려고 노력을 하시잖아요. 엄마는 틀린 말과 거짓말을 안 하시니까... 엄마가 하는 말씀은 흘려들을 수가 없어요.” “넌 늘 엄마에게 아부성 발언을 하려는 것 같은데...엄마가 무섭다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거든. 왜 엄마가 무서운 엄마가 될 상황을 만드니.” “그래서 저도 노력을 하고 있어요. 엄마 힘드신데 학원 보내 달라고 했고 그래서 노력을 하는데 안하려다 하니까 힘들어요.” “아빠가 뭐라든, 그리고 엄마와 싸워도 공부 하겠다는 네 각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마. 전쟁터 속에서도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한다더라.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만... 어쩌겠어. 받아들이고 해야지.” 웃기는 엄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동안을 살아 온 내 삶조차 받아들이지 못해서 불만 가득한데 이제 15년 인생이 전부인 아들에게는 환경을 받아들이라니... “네. 노력할게요. 엄마...” “응...?” 녀석이 숟가락을 입에 넣다말고 못다 한 말이 있는 듯 말을 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물과 기름이에요.” “?...” “물이 나쁘다고 할 수 없고 기름이 나쁘다고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냥 섞이지 못할 뿐이지. 그런데요 엄마, 물과 기름도 섞일 수가 있어요. 제가 과학시간에 실험을 했던 건데 어떤 화학약품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그것을 넣으니까 물과 기름이 서서히 섞이더라구요.” “... 그래서...” 엉뚱한 녀석의 갑작스런 말에 나는 간간히 머리가 멍해질 때가 있다. “저희가 그 화학약품이에요. 저희 때문에 두 분이 사실 수 있게 해드릴 테니까 엄마가 조금만 참으세요. 사실... 아빠가 저에게 ‘저 새끼...’ ‘똘아이 같은 놈’ 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 이해가 가는데요. 엄마한테 잘못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아서 화가 날 때가 있지만... 그래서 따지고 들고 싶을 때가 있지만 제가 그러면 안돼는 거잖아요. 자식된 도리가 아니잖아요. 그쵸? 아빠는 불쌍한 거예요. 저희는 아빠를 이해는 하지만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하는데요...” “너도 때론 아빠 못지않게 미울 때가 있어, 임마.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아들이라고 제대로 된 믿음을 주란 말이야.” “네!!!” 뭐가 뒤바뀐 상황이다. 사춘기를 앓는 엄마를 아들이 다독이는 꼴이라니. 큰 아들에게 기대가 컸었다. 남편에게 채우지 못하는 마음을 아들로 채우려는 듯, 아들의 출세를 꿈꾸며 녀석과 공부를 햇살아래 드리우는 그림자처럼 묶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잘 따라주던 녀석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성적이 서서히 바닥을 향했고 나를 더 큰 절망 속에 빠트렸다. 그럼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공부만을 강요했던 내가 한 순간 학원을 그만두라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이 뜻밖이지만 반가웠던 녀석에게 나는 EBS 교재를 사주며 스스로 해보라고 했다. 방송시간대 만큼은 억지로라도 앉아 있게 했다. 역시나 다가 온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중간고사 성적은 더욱 형편없었다. 녀석도 실망하는 듯 했지만 그뿐이었다. 기말고사 때도 그 성적을 유지했지만 녀석의 태도도 변함없었다. 2학년이 되고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더니 가망 없는 성적이 머지않은 성년과 무관하지 않음을 인식했는지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 역시 녀석에게 실망감에 분노가 솟구쳤지만 서서히 기대치를 낮출 수 있었다. 꼭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되야만 행복하란 법은 없는 거다. 경찰대학은... 진즉에 물 건너갔지만 반면 어설프게 대학물 먹었다고 어깨 힘주고 편한 일만 찾는 요즘 청년들의 문제점 속에 녀석을 한 일원으로 포함 시킬 수는 없었다. 까짓 고등학교만 나오면 어때, 고위직급은 아니더라도 공장이든 제 아빠처럼 노동판을 돌아다니면 어떠냔 말이지... 한 곳에서 제 할 일을 찾아서 우직 할 수 있다면 되는 거지... 나를 세뇌시켰고 이렇게 마음을 비웠다. 꼭 좋은 대학을 가서 엘리트가 대라던 나의 잔소리가 언제부턴가 몸만 건강해라. 어떤 일을 하던지 한가지만 열심히 할 수 있다면 그 삶도 괜찮은 거야, 라는 잔소리로 변한 것을 녀석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가기 싫던 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말을 제 입으로 꺼내면서 “엄마, 빡센 곳을 보내 주셔도 돼요. 혼자 하려니까 힘들어요.” 라는 말에 나는 선뜻 따라주지 못했다. 자식의 도리만 운운했지 부모된 도리도 이행하지 못했다. 늘 빠듯하다 못해 구멍이 송송 뚫린 주머니를 핑계로 들기에는 우리가 너무 비참했다. 늘 친정식구들과 가까운 친구, 사촌들까지 내 편에서 나를 도와주던 그동안의 내 삶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져서 점점 입을 닫고 살았었다. 내 마음을 꿰뚫은 듯, 녀석은 더 이상 학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아들의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도 엉망이 되어 버린 상태로 여름방학을 마쳤다. 녀석이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을 해보겠다고 해서 허락 했지만 나만큼 어려운 사람이 없는 것인지 지원한 학생들이 없는 관계로 ‘수학’ 한 과목 외에는 그마저도 프로그램이 삭제되고 말았다. 10일 동안 수학 수업을 받고 오는 내내 녀석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 수업이라도 받게 해달라며 각오를 다지던 녀석이 여름방학 개학한지 이틀 만에 학교에서 뭔가를 받아와서 건넸다. 수학과 영어의 성적이 낮은 관계로 유급이 될 수 있지만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이 학교에서 권해주는 과목(수학 영어와 관계없는 사회였다)수업을 남아서 받는다면 성적이 부진해도 유급은 되지 않는다는, 친절한 내용들이 나는 어느덧 성격까지 삐딱 선을 탔는지 형식적인 그 내용이 협박장처럼 느껴졌다. 학교에서 권해주는 과목만 이수한다면 학년은 올라갈 수 있다?... 녀석의 자존심은 저만치 바닥으로 떨어져서 뒹굴고 있는 듯 비참함이 베어 있었다. 나는 엄마다. 아들의 마음을 그렇게 무너지게 둘 수는 없었다. 내 몸이 약해서... 아이들 때문에... 핑계도 좋게 일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나에게도 문제점이 많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이런 거지... 결혼생활하면서 여렷 느껴본 그 기분 앞에서 어쨌든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처음이 어렵지 시작하면 어쩌든지 살아가지는 인생살이 다시 모험을 할 시간이 다가 온 듯 했다. ‘유급’소동은 나로 하여금 아들을 이끌고 학원으로 향하게 했다. 나는 너그러운 엄마는 못된다. 그렇기에 학원으로 향하기 전에 확실한 다짐을 아들에게 받았다. “엄마는 네가 비참하게 학년을 올라가느니보다 유급을 해서 한 학년을 더 다녀도 좋다만 네가 그렇게는 못하겠다니 학원은 보내 준다. 하지만 한 학기만 지켜 볼 거야. 내가 너에게 1등을 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네가 노력하는 것이 보이면 엄마도 죽을힘을 다해서 뒷받침이 되어 줄 것이고 그렇지 않고 대충한다면 그만두게 할 것이야. 그때는 너도 스스로 힘든 어떤 일이든지 할 마음을 가져야 될 거야.” 나는 비자금으로 38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학원비를 지불했고 내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녀석을 이끌고 30여분 남은 학원수업시간을 남긴 채 다시 밖으로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곤 김밥이 먹고 싶다는 말에도 분식점이 아닌 샤브샤브 집으로 데려갔다. 한상 가득한 음식들을 놓고 왜 엄마는 드시지 않냐는 녀석의 말에 첫날부터 수업 늦지 않으려면 빨리 먹으라는 말만 재촉했다. 혀를 데였다면서도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는 녀석은 2인분을 간단히도 해치웠다. 먹는 내내 나는 세뇌교육 시키듯 여러 번 강조한 말이 있다. 너무난 빤한 환경이기에 그 말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금의 네 각오를 꺾지 말고 작심 3일이 된다면 3일에 한 번씩 각오를 해야 한다. 지나간 시간을 엄마처럼 후회하지 마러...” 남편은 아들이 학원에 다닌다는 말에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와서 별 말들을 다 해댔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그 언행들을 나는 늘 불만으로 달고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고 어쩌면 오늘, 아니면 내일... 벗어날지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한 길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속이라기에 어떤 것에도 장담할 수 는 없지만... 내가 장담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지금까지 엄하게 대했던 내 아이들, 때론 짐스러운 그것들을 버려두지 않고 내 평생 함께 있어줄 거라는 것이다. 남편 역시 사람인데 자식 귀한 줄이야 모를까... 마음 깊이 남편을 거부하는 나로 인해 남편이 더 방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반대를 무릅쓰며 바보온달을 훌륭한 장군으로 만든 평강공주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맞섰던 겁 없던 지난날이 가소롭기도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나를 믿는 아이들은 꼭 지켜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