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동네의 부식을 파는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먹을때면
엄마는 돈을 주지않고 다음에 준다고 말하라고 했다.
오빠들도, 나도 수시로 과자를 갖다먹고,(과자라 해봐야 입에 넣으면 미어터지는 눈깔 사탕 한개정도)
엄마는 채소를 가져오고
한달쯤 지나면 돈을 갚곤 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을 하고 나서 얼마쯤 지나고 나서 가계수표라는게 있을때다.
월말이 되어 이것저것내고나면 월급이 바닥이난다.
20일이 월급날인데 그때까지는 가계수표 석장(30만원)을
끊어쓰고 다음 달, 월급타면 바로 입금하고.......
끊임없이 발행, 입금..
어느 날, 과감하게 가계수표를 찢어버렸다.
남편에게도 사무실에서 용지를 받아오지마라고 했다.
이를 악물고 한달을 버텼다.
아랫집에서 조금 꾸어 쓰다가 두서너달 뒤에는
월급의 한도내에서 쪼개고 또 쪼개어 생활을 했더니
드디어 가계수표가 없이 남에게 돈을 꾸지 않아도 되었다.
당시의 내 소망은 남에게 돈도 빌리지않고 내 통장에 백만원의
여유돈만 있으면 부자가 된 기분으로 살수있을것 같았다.
아마 주위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던것 같다.
\'욕심부리지말고 살자.\'고.
도사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통장에는 여유돈 백만원을 오랫동안 채우지못했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아이들교육도 다 끝내고 나니
백만원이 통장에 들어있을만큼 여유가 생겼다.
부자가 된것이다.
몇년전부터 모든 상거래의 투명성을 위하여 정부에서 카드사용을 강력하게 권하여
성인이라면 누구나 거의 다 카드사용을 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신용물량자도 많이 생겼지만...
처음에는 카드사용을 꺼렸다. 일종의 외상거래라고 여겼기때문이다.
년말정산 소득공제때 세금혜택을 많이 받을 수있다하여
카드를 하나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오로지 직불카드 하나만 사용한다. 지금도.
마트의 계산대에서 카드를 꺼내는 젊은이들의 지갑속에는
빼꼼하게 양쪽으로 카드가 꽂혀있다.
무슨 카드가 저렇게 많지??
집에와서 딸아이의 지갑을 열어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카드니? 쓸데없이 이 카드, 저 카드 긁어대다가 큰 낭패 볼거다.
ㅎㅎㅎ 엄마, 그런 카드가 아니거든요.
그런 무슨카드니?
각종 할인카드, 적립카드,
옷을 사도, 커피를 마셔도, 기름을 넣어도, 영화를 봐도........
외우지도 못할, 구분도 못할만큼 많은 카드의 종류에 혀를 내둘렀다.
마트에서 계산할때 마다 줄기차게 포인트카드를 권하여 마지못해
만들었다.
내 지갑속에도 여러장의 카드가 생겼다.
주유포인트카드, 마트 적립카드, 정육점 포인트카드,... 그래도 신용카드를 하나다.
포인트 카드를 자주 사용하는것외에는 만들지 않았지만 언제쯤이나
그 적립금을 써먹을 수 있을지는 감감이다.
같은 아파트의 젊은 새댁이 카드의 편리함을 말해주었다.
일일이 가계부를 적지 않아도 월말에 내역서를 보면 다 알수있어서
기천원도 일일이 카드로 결제한다고 했다.
그렇네.
그래도 나는 낯이 간지러워 만원 이하는 아직 카드결제를 해보지 않았다.
5천원이상이면 현금영수증도 끊어준다는데
전화번호대기 싫어서 그냥 두라고 할때도 부지기수다.
남편이 지난달에 퇴직을 했다.
일년전에 퇴직한 선배가 조언을 해주었다.
이제 카드를 많이 끊지마세요.
어차피 한달후에 결제할건데 십만단위 이하는 현금으로 내고
현금영수증은 아들앞으로 하란다.
왜요?
퇴직하면 년말소득공제할 일이 없으니 아들에게로
영수증을 해주면 아들이 덕을 보잖아요.
아, 맞네요.
지난 한달동안 카드사용을 억제하고 현금으로 물건값을 지불해 보았다.
그러나 얼마나 카드사용에 익숙해졌는지 몇만원을 현금으로 지불하려니
생돈이 나가는것 같아 손이 오그러들었다.
여전히 만원이상이면 약간의 망설임에 그냥 카드를 불쑥 내민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처럼
고액의 물건값이나 밥값을 겁없이 선뜻선뜻 카드를 내밀고는 월말 카드 결제때
내역서를 보고 큰 금액에 깜짝 놀라면서 후회를 하곤 했었다.
남편이 퇴직을 하고나니 당장 통장이 가벼워졌다.
마음을 다져먹고 카드사용을 웬만해서는 하지말아야 겠다.
현찰을 주면서 뭉퉁 비어져가는 지갑을 아까워하면서 지출을 줄일 궁리를 해야지.
이번 달부터 돈독한 마음으로 실천을 해보기로 했다.
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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