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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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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비상령이 떨어졌어요~~


BY 그대향기 2008-06-30

 

이크크크......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이 안 선다.

구석구석 짱박아 둔 물건들을 어디로 치운다?

주말에 서울에서 경주에서 손님들이 오신다는데 수련회 손님이 아니고

내 개인적인 손님들인데 평소에 정리정돈이 잘 안 되는 느~슨한 내 성격에

일주일만에 다 치울 수 있을까?

주로 장소 이동이 정리의 전부인 나는 뭘 버리는게 잘 안된다.

애들이 쓰다만 노트는 메모지 한다고 모아두고

작아진 옷은 이웃에 줄 건 주고 그래도 또 남으면 단추는 따로 떼서 모으고

천은 혹시나 ...해서 가위로 이쁜 부분만 잘라서 반짓고리에 담아둔다.

그래봐야 별로 소용되는데도 없었지만 몇개월 아니면 몇년에 한번을

요긴하게 써도 혼자서 기특하게 생각하면서 또 모은다.ㅎㅎㅎ

 

거실 서랍장에는 단추며 크고 작은 알록달록한 천 조각이며

고무줄에 모피조각까지............

완전히 잡화상을 차려도 될만큼 생활소품들이 널려있다.

이 서랍 열면 근육통에 붙히는 파스며 약품들이

저 아래 서랍 열면 땡땡이 빨간 천 조각이며 까만 망사 레이스

은박금박의 선물 쌌던 포장지.........

 

드디어 때는 왔다.

뭘 좀 버릴 때가 온 것이다.

손님 핑계대고 오늘은 짐 정리를 좀 하는데

어디서 부터 해야 하나?

방에는 방 데로 벗어둔 옷이며 읽다만 책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고

거실에는 보다만 신문이며 애견이 물고 다니며 노는 인형에

마시고 그 자리에 둔 물컵이며 청소기

택배용지에 새로운 교회주소록 배달 온 것

남편의 구역예배 설교원고집

비가 와서 거실 선풍기 앞에 널어둔 아들의 교복...........

 

이리저리 휙~~한바퀴 돌아보다가

남편한테 애교 섞인 목소리로

\"집 정리 말끔하게 칼 같이 해 놓는 사람.....성격이 좀 마르지 않나?\"

내 말이 하도 우스운지 남편이 그저 허허....웃는다.

자기가 거의 다 어질러 놓고 다니다 보니 내가 잔소리에 잔소리를 하는 것 보다

칭찬도 아니고 나무람도 빈정거림도 아니게 말을 하니까 웃을 수 밖에.

집이 사무실이고 사무실이 집인 사람이라 교회 갔다가 급한 일이 있으면

양복 입은 그 차림으로 아무일이나 하는 통에 늘 양복을 드라이 갖다 맡길려니

잔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일복과 외출복의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일을 할 때는 허름한 옷을 입고 설교 때나 주일 예배시간에 사회를 볼 때는

깨끗한 양복 정장 차림을 해야 하는데 양복 입은 그 차림으로

급한 일도 하는 사람이라 아이구..........

 

재택근무라는게 우리에겐 도시적인 표현이고

그냥 집이 근무지고 근무지가 집인 관계로

여러 손님도 만나야 하고 대내외적으로 업무가 바쁘다 보니

관공서 출입도 잦고 공사관계자들도 자주 집엘 오는 편이다.

업무용 서류를 들고 다니다가도 집 거실에 툭...던져 두고 나가서 일보고

입었던 옷도 옷걸이에 곱게 걸어서 두는게 아니고 벗어 두는 곳이 옷걸이다.

런닝머신이며 쇼파며 식탁 의자까지.........

옷걸이도 참 다양하게 사용한다고 핀잔을 줘도 그 때 뿐.

그 부분에서는 나는 참 철저한 편이다.

절대로 외출복을 일복으로 안 입고 외출복은 돌아와서 깨끗하게

손 봐서 옷걸이에 얌전~하게 걸어서 옷장에 둔다.

가방도 신발도 .

남편은 따라다니면서 치우지 않으면 금방 집이 폭탄 맞은 집 같다.

잔소리에 애교에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면 나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닥 유능한 정리꾼은 못된다.

워낙에 버리는 걸 못하는 사람이라 이 곳에 있던걸 저 공간으로

거실 바닥에 있는건 장식장 위로 , 식탁 위에 있는 걸 서랍장으로......

뭐 이런 식으로 옮겨 놓는게 치우는거다 보니 늘 뭐가 많다.ㅎㅎㅎㅎㅎㅎ

아까와서 못 버리고 애들 학교에서 준비물 챙길 때 필요할까~~싶어서

선뜻 쓰레기통으로 직행을 못 시킨다.

소포라도 이쁘게 받은 날에는 그 소포포장지며 소포상자도 다 모아두자니

베란다 붙박이장이며 서랍장 위며 전자렌지 위에 까지 가지각색 없는게 없을 지경.

그래.

이 기회에 좀 버리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아들이 뭔 준비물이 필요할까?

포장지 필요하면 한장 사서 쓰지 뭐.

포장 박스도 문구점 가서 하나 사자.

노끈도 비닐 봉투도.........

 

온 거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두 시간이나 걸쳐서 치운다는게

고작 물방울 따라 물고기 올라오는 가습기 장식장에서 내려 닦고 낮은데 두고

장식장 유리장 안에 애들 게임기 남 주려고 내 놓고(엄청 비싸게 샀지만 구형이 되고 말았다. 아까워도 어쪄?)

화장대 앞에 모아둔 샘플들 서랍 안으로 넣고

저번에 찾다가 실패한 치실을 찾아 잘 보이는 곳에 둔게 다 이니.....

버릴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또 뒤가 당긴다.

과감하게 버리자 버리자.

그래도 안되니 다 갖고 살 수는 없고

이미 우리집 짐은 포화상태에 가깝다.

집이 좁은 것도 아니고 넓다면 엄청 넓은 집인데 요리조리 참 짐들도 많다.

없으면 안되는 것만 남기고 다 버리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해도

자식인양 정이 가고 세월을 같이 보낸 물건들이라 사연도 있어서

하나하나 둘러보는데 꼭 날 보며 말을 걸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줌마....나 이 자리에 가만히 있을께요.

아줌마와 함께 여러 해 살면서 정도 들었고

이 집에서 나가면 재활용도 안되고 그냥 분리수거나 되니까

그냥 있게 해 주세요, 네?

말썽 안 피울께요.

제발 아줌마..........\"

이러니 내가 어찌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겠는가?

저 화병은 그 때 중국 이사 가시면서 주신 거고

저 사슴뿔은 필리핀인가 아프리칸가 다녀오신 분이 기념으로 주신거고

저  오래된 마호가니  밍크 코트는?

아.......

그래그래.

94 세에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살아생전에 줘야 기분이 덜 나쁘다시며

93 세 때에 작은 서브 다이아가 스물 몇알 잔잔하게 박힌 반지랑 같이 주신 거네!.

10 년을 넘게 모셔온 할머님이셨는데 본인은 주고나면 끝인데 혹시라도

친척들이 와서 늦게 뭐 값잔게 없나~해서 자기 짐을 뒤지는게 싫으시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서 반질 뽑아주시고 밍크코트를 벗겨주신 분이다.

유행은 지났지만 고급 색상에 모피가 얼마나 부드럽고 윤이 나던지.....

아직 입고 나가 본 적은 없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ㅎㅎㅎㅎ

반지와 밍크코트의 가격은 모른다.

내 형편에 무슨 다이아반지며 밍크코트를 해 입을 처지가 아니어서

못하고 안한 일들을 할머님께서 한꺼번에 둘을 다 해 주신 셈이다.

 

그 흔한 할부도 할줄 모르고 카드도 밀줄 모른다.

사업이라고 조금 하면서 빚에 힘들어 해 본 기억이 너무 강해

웬만해선 현금으로 결제하고 할부는 아예 둘다 안하면서 산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옛말.

무서운 현실이 되어 집안을 망가뜨리는 걸......

주위에서 여럿 보아왔고 자살까지 가는 참극이 있기에

밍크코트도 할부로, 다이아반지도 할부로 다 하고 살지 않았는데

뜻하지 않게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내게 기념으로 주시고 가셨다.

생전에 어느 잘 사는 조카가 해 주신거라시며.

돌아가시고 정말 많이 울었었다.

막내도 많이 거둬주시고 오줌을 싸도 이불이며 옷 빨래를 깨끗하게 하셔서

말려서 다림질까지 해서 넘겨주시던 할머니.

안동 권씨가문에서 귀하고  곱게 사시던 할머니.

엄하게 생기신 모습과는 다르게 수줍음 많으시고 웃음이 해 맑으셨다.

마지막을 폐결핵으로 고생하시면서 남은 힘을 다 쏟아 막내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축하 해 주시고 앞으로의 날들에 축복을 있는데로 다~해 주시고는

영 영 말문을 닫으셨다.

그 뒤에 며칠을 더 버티시다가 돌아가셨지만 영안실에서 고운 한복을 입으신

모습이 얼마나 위엄있고 단아해 보이시던지.....

우리애들에게 유난스레 정을 주셨고 깔끔하게 사시다 가신 분.

남아 계시는 모든 분들이 닮기를 희망하시는 정말 양반같으셨던 분이셨다.

요즘 무슨 양반 쌍놈이 있으랴마는 행동 하나하나가  위엄있으셨고

허튼 말씀 안하시고 음식 타박 없으셨고 짜면 물 마시면 되고 싱거우면 하나 더

먹으면 된다시던 정말 성품이 곧고 단정하신 분이셨다.

그런 분을 곁에서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10 년을 넘게 모시게 된 것도

내겐 큰 행운이었다.

남이 어려울 때는 본인의 저녁거리가 없으셔도 도와주셨더니 그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장성해서 박사도 되고 목사님도 되셔서 미국에서 서울에서 편지로

선물로 할머님를 잊지 못해 하셨다.

댓가를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니었는데 할머니의 사랑이 여기저기서 꽃을 피우고

있었고 장례식에 얼마나 많은 조문객이 오셨던지....

혈육 한점 남기지 않으셨지만 혈육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할머니를 보내 드렸다.

 

 

 

 

오늘 짐을 챙기면서 참 여러가지 추억도 생각난다.

그래도 내 짐은 밖으로 탈출을 못 시키겠다.

어쩌냐?

손님은 대 여섯분이나 오신다는데 어질러져 있고

여기저기 꾹 꾹 밀어 넣고 보자 뭐.

잘 버리지 못하는 이 마음도 고질병인가?

남편은 내가 하도 못 버리고 콕 콕 박아두니까 가끔 날 밖으로 내 몰고

혼자서 시커먼 비닐 봉투에다가 이것저것 이유불문 사용도 불문하고

마구 버리고만다.

내가 있으면 또 뺏아서 못 버리게 하니까........

잘 정리된 남의 집을 방문하고 온 날이면 나도 버리고 살자를 얼마나 다짐하는데

고것이 쉽지가 않다.

누가 나 좀 말려줘요......

좀 버리고 가볍게 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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