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다니던 시동생이 책가방을 들고 시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니 시어머니는 없다고 하였다.
그래도 돈이 필요하니 주어야한다고 서있는 시동생을 보면서 없다는데 왜저러나 하였다.
몇번의 실갱이가 오고가더니 시어머니는 장롱 문을 열고 돈을 꺼내 시동생에게 주었다.
시동생이 가고 나서 물었다.
\"어머니, 돈이 장롱 속에 있는데 왜 없다고 하셨어요?\"
\"그 돈은 나 옷 사입으려고 아껴 둔 돈인데...\"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밥을 먹다 밥 숟가락을 놓고 돈을 꾸러 나갔던 부모와 살았던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이 어렸을 때 마을 골목길을 이렇게 소리치고 다닌 적이 있다고 시어머니가 흉을 본다.
\"울엄마는 장롱 속에 돈 넣어 놓고 안준다네~~\"
웃어야 하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남편은 날더러 가계부를 적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았다.
남편이 그러니 나도 한번 적어볼까하고 적어보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콩나물 20원, 두부 30원, 양파10원, 꽁치 50원...하고 몇 달 적어보았지만 머리만 아플 뿐 빤한 살림살이 아낄 구석도 보이지 않았다.
수학선생을 하고 있었지만 끝자리가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차 파 한단 값을 잊었구나, 어머 깻잎 산 것을 빠뜨렸네, 하면서 시간 낭비를 하다보면 화가 났다.
더구나 단칸 삯월세 방에 살면서 한달 월급보다 많은 돈을 술값으로 자기가 냈노라고 호기를 부리는 남편을 보면 내 하는 짓이 더욱 화가 났다.
가계부 적는 일을 그만 두었다.
부부싸움 할 때마다 가계부도 안 적는 여자라고 남편은 내게 화를 내었다.
전차안에서 파는 은도금 악세사리를 천원 주고 산 일이 빌미가 되어 남편이 밥상을 엎었다.
화가 난 나는 설겆이 하던 그릇을 바닥에 던졌고 남편은 내 머리채를 잡고 발길질을 하였다.
원래도 그리 외모를 가꾸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후로 화장도 악세사리도 여분의 옷도 두고 살지 않았다.
남편과의 이혼을 꿈꾸기도 하였지만 어쩌면 세상과의 이별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살림살이도 사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했던 남편의 동료 가족 이삿짐은 우리 이삿짐의 세배가 되더라고 세관 통과를 위해 갔던 남편이 말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월급을 가져다 줄 때마다 아껴쓰라고 잔소리를 하였다.
월급을 통째로 주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만 주면서 그랬다.
시장은 일주일에 한번만 가라고 잔소리 하였다.
내가 타고 다닌 쏘나타는 삼년을 탔는데도 만 마일도 안된다고 하면서, 그것도 가끔씩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고 자기가 먼길 갈 때 한번씩 운전을 해서 그렇다고 하면서, 기름값을 아껴야한다고 잔소리를 하였다.
울언니가 대학교 4학년짜리 아들을 사고로 잃고 우리집에 와 있을 때도 생활비를 아끼라고 잔소리를 하였다.
남편이 주는 돈을 방바닥에 패대기치고 말했다.
\"야, 나 니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안 살란다.\"
아들이 자라는 동안 우리 집은 돈에 얽인 많은 사연이 있었다.
아들이 자랐다.
돈을 벌어서 매달 천불씩 우리 통장에 보낸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우리가 아들의 생활비를 주고 있다.
남편의 버릇이 달라진게 아니라서 생활비를 받을 때마다 아들이 굴욕감을 느낀단다.
더 이상 돈을 받지 않겠단다.
우리랑 같이 일하지 않고 따로 취직해서 살겠단다.
그렇지만 취직할 때까지 먹고 살 돈이 없으니 화가 난다 한다.
우리랑 말도 하기 싫고 아는 척도 하기 싫단다.
그 말을 남편에게 전하니 불같이 화를 낸다.
남편은 아들이 돈의 가치를 모른다고 한다.
한편 일리 있는 말 같기도 하지만 내 생각엔 남편이야 말로 돈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밉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한편 불쌍하기도 하다.
돈이 무엇이기에 아들의 사랑하고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돈이 무엇이기에 가족의 평화하고 바꿀 수 있단 말인가.
하긴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제니퍼도 자기가 일한 댓가를 받는 날 기분이 나쁘단다.
돈을 주면서 항상 우리가 손해보고 있다는 말을 빼지 않고 덧붙이는 바람에.
돈관리하는 일을 남편에게서 빼앗아버릴까. 그마저도 할 일이 없으면 남편이 그만 세상 끈을 놓아버리지나 않을까. 혼란스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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