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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와 까미


BY 그대향기 2008-06-19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단다.

억수같은 비가 오다가 잠깐 햇살이 비췄다가 가랑비가 오더니

또 우두둑.....마구 떨어지는 빗줄기들.

도랑에 넘쳐나는 빗물을 건너다 보며 마당에 물이 역류할까봐 걱정이다.

마을로 내려가는 큰 도랑이 빗물이 많아지고 실개천의 물들이 모이면

우리 마당보다 수면이 높아지면서 마당의 물이 빠지지 않고 역류해서

보트를 타고 다녀도 될 만큼 운동장에 한강이 만들어진다.ㅎㅎㅎ

도랑에서 떠 내려가던 스치로폼 조각들이 무슨 쪽배인양 이리저리

물이 흐르는데로 일엽편주....

비닐도 모이고 바람에 생잎이 떨어지면서 아파하며 물 위를 떠돈다.

그러다가 빗줄기가 약해지고 도랑물이 낮아지면 운동장의 물도 썰물처럼

쭈 ㅡ 욱 빠져나가면 흙탕물이 오색계단에도 더렵혀 놓았고

애들 농구장이며 철봉 , 평행봉까지 얼룩이를 만든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큰딸이 태어나던 23 년 전이 생각난다.

큰애가 태어나던 때도 장마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 땐 남편이 군인이어서 포항 보다 더 먼 시골에서 부대생활을 했었다.

하사관으로 근무하던 남편은 큰애가 태어나고 친정엄마가 산후바라지를

해 주시다가 보름만에 친정으로 돌아가시면서

\"산모 혼자 두지 말고 일찍일찍 퇴근해서 좀 도와주고 그러시게.

첫애기는 어려운 법이니 목욕도 같이 시켜주고 .\"

엄마의 당부가 있어서 인지도 모르지만 남편은 일찍 일찍 퇴근했고

같이 애기 목욕도 시켜주고 기저귀도 빨아주던 자상한 남편이었다.

그 시절에는 종이 기저귀보다 천 기저귀가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저녁이 되면 낮에 쓴 애기 기저귀가 수북하게 쌓이고

퇴근 한 남편은 산모가 하면 안된다고 기저귀도 잘도 빨아줬었다.

 

첫애가 딸이었던게 못내 섭섭했던 남편은 곧 마음을 정리하고

우리들의 첫애기를 많이 이뻐했다.

시골이라 집 뒤에 제법 큰 시내도 있어서 집에서 나오는 수돗물에서

기저귀를 빠는 것 보다 시냇물에서 빠는게 훨씬 깨끗하고 수월하고....

낮 동안 애기 빨래를 모아서 남편이 퇴근하면 애기를 맡기고 얼른

시냇가로 가서 흐르는 물에 기저귀를 흔들어서 빨면 얼마나 수월한지.

비누를 쓰지 않고 기저귀를 빨아서 맑은 물에서 삶아도 기저귀가

새 하얗고 얼마나 구수한 냄새가 나던지....

엄마는 애기들 살이 연약하니 강한 세탁비누도 세탁기용 세제도

많이 못 쓰게 하셨다.

그냥 물에 담궈 뒀다가  맹물에 자주 헹궈서 맑은 물에 삶아서 쓰라고 하셨다.

정말 흐르는 물에 씻어서 맹물에 삶았는데도 거짓말처럼 기저귀가 새 하얗게

삶아지고 간 혹 조금 덜 삶아져도 햇볕에 널어두면 다 날아가고 없어지는

마법같은 세탁법.

맹물 삶기는 깨끗하고 안전한 세탁법이었다.

여러번 그렇게 하다가 정~잘 안지는 똥기저귀는 따로 모아서 한번쯤 세제를

넣고 삶으면 된다.

세탁기도 있고 수돗물도 있었지만 시냇물에서 빠는 빨래가 얼마나

하얀지 자꾸만 시냇가로 가게 되었는데

안방 할머님은 산모가 바깥출입을 한다고 야단이셨지만

집에서 홀짝거리면서 하는 빨래보다 더 재밌고 좋아서 어른말씀도

안 듣고 저녁만 되면 시냇가로 가던 어느 날.

막 빨랫감을 시냇물에 담그고 시작하려는데 저 윗쪽 물에서

검은 물체가 떠 올랐다가 \"낑 낑\" 작은 신음 소리도 들렸다가

또 안 보이고 조금 있으면 또 작은 신음소리가 들리고......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하던 빨래는 시냇가에 둔 체로

검은 물체를 찾아 나서는데 .........에그머니나......

아주 작은 까만 강아지 한마리가 거의 실신해서 물에 떠 내려오고 있었다.

온 몸은 물에 흠뻑 젖었고 고개도 가누지 못하고 눈은 꼬옥 감았고......

무섭증이 있었어도 강아지를 물에서 건져내고 손바닥을 가슴에 대 보니

아직 아주 희미하게 팔딱팔딱 심장은 뛰고 있었다.

빨래는 뒷전이고 살아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00아빠~~이 강아지 좀 봐요. 아직 살아있어요.\"

큰소리로  남편을 부르니 빨래 나간 엄마 대신 애기를 보고 있던 남편이

큰 눈이 휘둥그레 커져서 내다 본다.

\"어디서 다 죽은 강아지를 안고 왔어?

이것 봐 다 젖어서 죽게 생겼는데?\"

\"아니 아니....아직 살아는 있어요.

심장고동이 느껴져요. 봐 봐.\"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작은 강아지를 안고  숨소리까지 씩씩거리며

남편의 손을 잡아끄니 할 수 없이 만져 보더니

\"진짜....아주 작은 느낌이지만 있네. 그런데 너무 희미해.\"

\"누가 버렸나?  아니면 물에 떠 내려 왔을까요?

너무 불쌍해...........살려줬다가 주인이 나타나면 주면 되잖아요.

그냥 버리면 오늘 밤에 죽을거 같아....\"

눈물까지 거렁거렁 맺힌 아내를 보더니

\"그럼 안으로 들여와서 물기 닦아주고 따뜻하게 해서 오늘 밤 재워보자구.

내일 아침까지 살아있으면 희망은 있고 밤에 숨 끊어지면 할 수 없고...\"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깨끗한 타월로 강아지를 싸고 애기보다

좀 떨어진 곳에 강아지를 편하게 눕혔다.

\"끼잉..끼잉...\"

아주 약한 신음소리로 자기가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움직임도 거의 없고 오로지 약하게 일어났다가 낮아지는 가슴을 보고

아직은 숨을 쉬는 구나~하는 느낌을 줄 뿐.

강아지를 눕혀 놓고나니 시냇물에 그냥 두고 온 애기 빨래가 생각났다.

\"아참참~~나 빨래 그냥 물에 두고 왔는데....\"

허둥대는 아내 대신 남편이 시냇가로 가서 빨래를 해 오겠단다.ㅎㅎㅎㅎ

가는 길에 구멍가게에 들러서 과자를 한아름 사고 동네 꼬맹이들을

한부대~이끌고 빨래를 가는 남편.

부대근처 동네라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이 많았다.

가끔씩 퇴근 후에 편한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꼬맹이들을 모아

태권도도 가르쳐 주고 쿵후도 가르쳐 주던 남편.

운동에는 남다른  관심도 많고 첫애가 아들이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ㅎㅎ

남편은 골목에 노는 애들을 다 이끌고 시냇가에 가서 물장난도 치고

애들이랑 놀이도 하면서 빨래를 해서 늦게 돌아왔다.

왜 늦었냐고 묻는 내게

\"동네 애들이랑 물놀이도 좀 하고 장차 아빠가 되면 아저씨처럼 애기

빨래도 해 주는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교육 좀 시키고 왔지.

과자 나눠주면서 하니까 대답도 잘 하던데?ㅎㅎㅎㅎㅎ\"

재밌고 엉뚱한 면도 많은  남편이다.

퇴근 길에 동네 꼬맹이들을 만나면

\"아저씨~사범아저씨~빨리 저녁 먹고 나오세요~

저 앞 공터에서 우리 시합해요~\"

꼬맹이들은 아주 사범으로 추대를 해 놓고 남편을 기다린다.

쮸쮸바나 아맛나 몇개만 있으면 아저씨의 인기는\" 짱\" 이다.

저들과 놀아주는 젊은 아저씨가 반갑고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던 시골에서

운동도 같이 해 주고 놀아주는 아저씨가 반가웠던 것이리라.

 

저녁을 먹고 애기는 모유 먹여서 재우고 남편은 대청마루를 개조해서

서재를 만들어준 곳에서 공부를 하는데 내 시선은 강아지의 작은 몸짓을

눈여겨 본다.

끄..응 끄...응.... 웅 웅 웅

약하지만 신음소리는 계속들리고 가끔씩 몸도 뒤척였다.

밖으로 나가서 물을 떠 오는데 설탕을 조금 타서 약간 달달하게 간을 맞추고

강아지를 안고 입을 벌려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흘려 넣어주었다.

반 이상은 옆으로 흐르고 조금씩만 입 속으로 흘러 들어 갔는데

굶어서 배는 홀쭉하고 눈도 안 뜨는 강아지에게 설탕물이 어떤 효과가

있을런지는 몰랐지만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포도당 링거액을 넣는 걸

기억하고 설탕물은 영양도 있을거란  생각에 탈수도 막고 열량도 내도...

 

그 밤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아침은 왔다.

밤 사이 모유를 찾는 딸에게 젖을 물리면서 건너다 본 강아지는 여전히

기진맥진 그 자리에서 작은 신음소리만 흘릴 뿐.

창 밖이 희뿌염하게 밝아오고 출근준비하는 남편의 아침을 봐 주려는데

\"아니 강아지가 움직이네~~이거 봐. 눈도 떴어.\"

부엌을 향해 남편이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아침 상을 보다가 다 내 버려두고 방으로 들어와 보니 정말 강아지가

눈도 반빡반짝 떴고 비실비실 흔들흔들 안간 힘을 다 쓰며 일어서려 한다.

아침 밥도 잊고 강아지를 안아 주는데 어제의 싸늘했던 강아지가 아니고

온 몸이 따스한 진짜 강아지다.

세상에........

그 조그만 몸에서 살아있는 증거를 보이려 바들바들 떨면서

일어서려는데 보는 내가 안스러워 얼른 안아 올리고야 말았다.

손바닥에 올려서 쓰다듬어 주고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니 힘겹게도

비틀거리며 혼자 힘으로 서 있다.

\"아고 이뻐라. 이젠 살만 한가 보네~~밥도 먹어야지?\"

죽다 살아 난 어린 강아지라 밥은 힘들 것 같아서 우리 애 낳을 때 

산부인과에서 우유 먹이라고 사은품 준 걸로 미지근하게 타서

작은 접시에 담아주니 아, 제법 홀짝거리면서 핥아 먹는다.

남편의 출근 준비는 까맣게 잊은지 오래고 우리 애기는 콜~콜 ~잘 자고 .

그런 나를 보던 남편이 부대 들어가서 아침 해결 하겠다며 출근인사를 쪽~

\"응? 응?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나 이 강아지 살면 그냥

키우고 싶어요. 안 돼?\"

\"두고 보자고. 살아나면 키우고 만약에 어찌 되어도 울기 없기요?\"

\" 퇴근 길에 강아지 먹이나 사 와 봐요. 살거 같아요.\"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애기 깨기 전에 집안 정리해 놓고

순하디 순한 우리 큰애는 오줌을 싸도 조용~~배가 고프면 약간 찡얼찡얼.

참 우리애 셋은 다 순하게 컸다.

특히 큰딸은 진짜 순둥이라서 시댁에 갔어도 애 때문에 방에 들어가서

젖을 물리면서 핑계삼아 쉬지를 못해 봤으니....ㅎㅎㅎㅎ

시댁가서는 자주 울어줘야 엄마가 그 참에 좀 쉬는데 말이야.

 

하루 종일 우리 애기 우유를 먹으며 기운을 차린 강아지는 저녁 때 쯤엔

건들렁 거리기는 해도 제법 온 집안을 궁금증 난 땅강아지처럼 돌아 다닌다.

자리에만 누워있는 간난쟁이 때문에 강아지를 곱게 싸서 햇살 고운

마루로 내 놓았다.

간난쟁이가 있어서 대청마루로 내 놓긴 했어도 영 바깥은 아니라

물에 젖었던 강아지가 저체온증을 느끼진 않았던지 살아줬다.

며칠을 굶었는지 홀쭉하던 뱃가죽이 다시 봉긋하게 올라오고

뭘 좀 먹었다고 오줌도 싸고 똥도 쪼금 싸는게 아닌가?

정말 기사회생.

저녁에 퇴근하면서 강아지 사료를 안고 온 남편도 대견해 했다.

어른 손바닥 보다 더 쪼끄만한 새까만 강아지는 정말 생기 발랄하게

살아났고 제법 사람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 다니기 까지.....

저녁을 분유를 타서 주는데 다 핥아 먹는  기특한 식사량.

대견하고 강한 놈.

그 찬물에 빠져서 숨만 겨우 붙어있더니 저렇게 잘 살아주다니....

생명이란 참...

그 시간에 내가 빨래터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들은 저녁에 시냇가에 잘 안 나가던데.....

 

까미가 살아나고 혹시 동네에서 강아지 잃어버렸다는 소문이라도

들리나 했더니 아무도 소식이 없었다.

솔직히 주인이 나타나서 \'그 강아지 내 강아지요\'  하고 달라하면

어쩔까? 조마조마 했었던건 사실이다.

당연히 주인의 손으로 넘겨줘야겠지만 많이 섭섭할 것 같았다.

\'아무도 오지말아요 .누구도 까미를 모른다 하세요\'

속으로 나 혼자서 그렇게 주문을 외고나 있었다고 해야 할런지..ㅎㅎㅎ

그렇게 살아난 까미(새까맣고 이뻐서)는 우리집 마당에서 한참을 살다가

애기와 둘을 다 책임지기 어려워서 친정오빠를 불러서 보냈다.

작고 새까만 까미는 이쁨을 받으며 오빠네서 오래 살다가

막내올케 친정엄가가 시골에서 적적하시다고 그리로 분양을 했단다.

그러고도 한참 오랫동안 까미는 잘 지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장마비로 도랑이 범람해서 떠 내려 왔던지

어쩌다가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졌는지 몰라도 까미는 우리 곁에

그렇게 왔다가 친정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어떻게 됐는지

그 뒤의 소식은 모른다.

몇년은 올케의 친정집에 있었는데.....

해마다 장마 때가 되면 , 큰애의 기저귀와 까미가 생각난다.

 

아주 작고 새까맣고 이쁜 까미.

지금 같으면 내가 잘 키울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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