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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878

올케 미안해


BY 그대향기 2008-06-05

 

며칠 전 오전에 막내 올케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고모 잘 있나?

시집 간 딸은 잘 사는가?

그냥 궁금해서 전화해 봤어.\"

아니다.

무단히 아무 일 없이 궁금해서 전화 할 올케가 아니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그냥......

자꾸 그냥 해 봤다며 말 끝을 흐린다.

\"말 해 봐. 그냥 한게 아닌데 뭘....

이 아침에 무슨 일이 아니면 왜 전화했겠어?

무슨 말이든지 해 봐.

집에 일 생겼어?

엄마가 편찮으셔?\"

여든 다섯의 엄말 모시고 사는 올케라 전화가 오면

엄마한테 긴박한 사정이 있나~해서 늘 마음이 조마조마 하다.

\"고모야. 저 번에 고모가 갖다준 김 있잖아?

어무이가 자꾸 고모가 갖다준 김하고 내가 바꿨다 하셔서

속 상해 죽겠어. 맛있는 김을 어디 두고

맛 없는 김을 준다 하시니 내가 무슨 말을 해얄지....\"

.......................

더는 무슨 이야기를 듣기가 두려워

\"지금 오전 중에 손님이 온다고 해서 준비 중인데

나중에 시간내서 내가 전화할께.\"

그러고 며칠이 지났고 난 전화를 하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하지 않았다.

최근에 만난 엄마는 판단력도 많이 떨어지셨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해석이나 의심이 눈에 띄게 늘었다.

 

내가 할머니들을 모시고 15 년을 살면서 여러 할머니들을

거치면서 봐 온 돌아가실 무렵에 발생하는 치매끼를 엄마는 서서히

나타내고 계신다는 걸 진작에 눈치챘기에 그 얘기가

올케의 입을 통해서 내 고막에 울릴까봐 두려워서 전화를 못했다.

자꾸 본인이 놔 둔 물건을 누가 만졌다고 하고

심하면 도둑 맞았다고 하면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도둑 취급하고 피해망상증 같이 누가 자기를 괴롭히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어린애 보다도 더 판단력이 떨어지는

치매의 기본단계를 엄마는 지금 밟고 계시는 것을 .......

손님이 오면 자꾸 며느리 흉을 부풀려서 하고

할 얘기 안 할 얘기를 구별 못하시고

새 신발은 비닐로 꽁꽁 매서 장농 속에 감추고

앞이 다 떨어진 너덜너덜한 신발 신고 다니며

아무도 신발을 안 사 줘서 이러고 다닌다며 시위하시고.......

 

엄마는 그러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곱게 곱게 늙으시고 자는 잠에 가실 줄 알았는데

요 몇번의 만남에서 조금씩 의심이 가던 엄마가

이젠 올케의 속을 다 뒤집는 말도 예사로 하시니.........

정말로 부잣집 둘째 딸로 자라시고

시집 오실 때 솜 이불과 솜 바지에 지전을 누벼서

올 정도로 외갓댁이 부자였고 엄마도 호강하시며 사시다가

아버지의 군기피 때문에 만주까지 피난을 가시며

그 많던 비단이불이며 지전, 두 아들까지 잃고는

안 해 본 고생이 없을 정도로 갖은 고생하시면서도

다섯남매를 혼자서 키우다시피 하신 엄마.

잃은 재산도 잃은 남편도 현실이 급한 엄마한테는

그냥 스치는 바람이었고 다시 악을 품고 모은 재산이

수 천평의 밭이 토지사기꾼의 꾐에 빠진 오빠 때문에

다 날아가며 홧병이 생기시어 겨울에도 웃통을 훌~훌~

벗으시고 휴~~하고 긴 한숨을 내 쉬는 엄마.

그 날아간 땅이 시청부지가 되고 상가가 들어서면서

엄마는 먼 길을 돌더라도 우리의 땅이 있었던 거리는

빙빙 돌아서 지나 다니신다.

\"그 땅만이라도 있었다면 너거들 다~몇 억씩은 줄건데....\"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정말 그 땅만이라도 있었다면......

 

우리 재산이 안 되는 것을 어쩌랴.

어릴 때 밭일을 나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물주전자 하나 달랑들고 밭에 나갔던 그 땅이

어린 눈에는 밭고랑이 얼마나 길던지.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한번 왕복할래도

반나절이나 걸리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지런한 엄마 덕에 밭이 잘 가꿔져 소출도 많았고

교통도 좋아서 값이 좋은 편이었는데.........

단 한평도 건지지 못하고 어수룩한 사기꾼한테

다 날리고 말았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하셨겠냐만

엄마는 미련 때문에 가슴이 멍들고

홧병이 올라올 때는 옷을 벗으신다.

시집 오실 때 까지 험한 일 한번 안하시다가

재산 다 날리고는 닥치는 일은 돈이 되면 다 하셨다니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우리 다섯남매 어디 시설에 안 맡기고 다 기르시느라

안 해 본 고생이 없으시니 엄마는 건강해야 하는데

지금 서서히 노환이 엄마를 잠식한다.

 

그래도 본인한테는 극비사항이고

곁에서 잘 지켜봐야 하겠지.

아직 집을 마구 나가는 것 같은 막무가내는 아니시고

그래도 엄마의 최근 동향을 올케를 통해서는  듣고 싶지 않다.

더 심해지시고 사람을 괴롭힐 정도까지 진행이 되면

그 때는?

아~~~

고이고이 보내드려야 할텐데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엄마가 심해질까봐 두렵고

고생할 올케한테 미안하고 고마운데 전화는 안하고 있다.

한 때는 엄마를 내가 모시려고 동네 집도 알아놓고

엄마를 모실란다고 하니 지금 모시고 계시는 오빠가

한치도 양보를 안 하셨다.

오빠가 넷이나 있는데 막내 딸이 엄마를 모신다는 건 절대 안된단다.

부자는 아니어도 오빠가 끝까지 책임지신다니.....

고마운 오빠고 고마운 올케지만 정말 엄마가 심각하게

주변을 어렵게 하면 시설에 보내야 할 것 같다.

맞벌이 부부가 엄마를 어떻게 돌 봐 들릴까?

남편이 사회복지사다 보니 요양병원이나 치매병동을 잘 알고 있어서

한달 입원비며 기타 비용도 자주 묻는다.

\"걱정마~~ 장모님은 편안히 가실거니까.

당신 힘들어 할까봐서라도 곱게 계시다 가실거야.\"

 

엄마를 내가 모시고 싶다고 했을 때도 선뜻 마을에서 집을

알아봐 준 고마운 남편이다.

결국에는 무산됐지만 속 마음을 알았으니

그것으로도 위안을 받았다.

올케한테는 미안하고 고마워서 엄마집에 갈 때마다

내 방식의 성의는 늘 보이며 지낸다.

올케언니의 친정엄마 생신까지도 챙겨주며 공을 들이는데

엄마가 올케를 더는 힘들게 하지 않으셨으면.....

깜빡깜빡은 있어도 누가 보더라도 \"치매구나\" 하는

판단은 내리게 하지 말아 줬으면.....

그러나 이 곳에서 노환으로 돌아가시는 대 부분의 할머니들은

마지막에 치매끼는 다 있으신 것을 봐 왔기에

엄마가 걱정되고 올케한테 뭐라 하기도 그래서

아직도 전화는 보류 중.

올케언니야~~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 엄마 잘~모셔줘.

부모님 잘 모신 끝은 있대.

조카들한테 그 복이 갈거야.

지금까지도 잘 하고 있지만 남은 날도 부탁해.

고맙고 미안해.

아마 엄마가 잃은 재산으로 해서 신경이 많이 허전 하실거야.

잘 보살펴 드리고 엉뚱한 말씀하시더라도

웃으면서 흘려 듣는 지혜로운 며느리가 되어줬으면....

내가 늘 고마와하고 있는 거 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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