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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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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BY 수련 2008-05-15

복도식인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아파트 담벼락과 붙은 초등학교에서

조례(맞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안한다고해서)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운동장에 다 모여 있는 광경은 딸애 집에 오고부터(5개월째) 처음 본다.

교장선생님이 마이크로 계속 무슨말을 하는지 웅웅거리고

뒤에 선 아이들은 발장난을 치고 옆 아이들과 팔을 휘두르며

교장선생님의 말에는 아랑곳도 않는 모습이

우리 어릴때 운동장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교장선생님의 훈화에

지겨워 주리를 틀던때를 상기시킨다.

 

이불을 털다 말고 난간에 붙어서 나도 초등학생마냥 잘 들리지 않는

교장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니,눈은 아이들의 행동을 구경하고,

일렬로 쭉 선 담임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우리 딸도 지금쯤 저러고 있겠지 싶어

괜히 딸이 서 있는것 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각 반 담임선생님을 안아주라는 말이었는지 아이들이

 와르르 선생님께 몰려가서 아수라장이 된 운동장에 먼지가 풀풀거리면서

스승의 날 아침 조례는 싱겁게 끝났다. 혹 각 담임선생님들이 질식했을까봐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지켜봤는데 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않았다. ㅎㅎㅎ

 

 

딸애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일학년 담임을 맡았을때는 너무 힘들어 목이 쉬어 이비인후과를 줄창 다녔는데

이번에는 6학년을 맡아 그나마 조금 수월하단다. 대신 능글거리면서

말을 안들어 엄하게 하지않으면 선생님을 깔본다기에 내가 킥킥거리며 물었다.

 

정말 네 말을 듣기는 하냐?(너무 가냘퍼서)

그럼요. 안들으면 혼내는데..

어떻게?

나 만의 노하우.

절때 때리지는 마라. 요즘은 학부모들이 자기 애들 때렸다간 학교에 와서 선생님을 패준다더라.

그럼 집에서 말 안들으면 어쩌는데요? 혼내지도 않아요?

하모,요즘은 한, 둘만 낳아키우니 오냐오냐하며 키운다는데 ..손바닥도 때리지말래이.

엄마가 학교에 와서 샘 해봐요. 얼마나 목이 아픈지..

히히 옴마는 아그들이 그저 이뿌서 사랑스럽게만 보이겠는데?

에게게.  엄마 손녀만 예쁘게 보이지.제게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

말 안듣는 애를 나오라해서 책을 쥐어주고 대신 수업진행을 시켜요.

그러면 잘하냐?

당연히 못하죠. 쩔쩔매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요.

어쭈, 우리 딸 제법인데..ㅋㅋㅋ

 

아침 일찍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온 모양이다.

왜 그러니?

으응, 오늘 누구라도 선물 가져오거나, 엄마가 학교에 오는 애는 혼날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았는데 반장이 무슨 이벤트를 준비했나봐요.

그래서?

선생님께 혼날까봐 엄마에게 전화해달라고 부탁했나봐.

명색이 스승의 날인데 봐주라모.

에이 쯧.. 그래야죠.

혹시라도 선물 가져오면 야단쳐서 돌려보내지말고 옴마 갖다주면 안되나?

어~~~~ㅁ ㅁㅁㅁㅁㅁㅁ마..

아, 알았다.

기집애 ....

 

딸애가 일학년 담임을 맡았을때 선물을 가져오지마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방과후에 한 아이가 머뭇거리며 뭘 내밀더란다.

선,선생님. 제 용돈으로 샀어요.

받지 않으면 울것 같아서

할수없이  집에 가져왔는데 <자일리톨 껌>두 통이었다.

그때 마침 딸애에게 와있었는데 내가 대신 그 껌을 얼마나 잘, 요긴하게 먹었는지 모른다.

운전하다가 졸림예방으로, 입이 심심할때 질겅질겅 씹으며 ...

얘, 그애 누군지는 모르지만 잘 봐주라.

뭘요?

아, 껌 줬잖아.

옴마가 받아 묵었은께 옴마가 잘 봐주이소.

기집애...

 

 

처음 딸아이가 교사임용을 받고 담임을 맡았을때 참견을 했다.

스승의 날이 학부모들이 가장 곤욕스러우니 절대 선물을

가져오지말라고 아이들에게 엄포을 놓으라 했다.

엄마들도 특별히 할말이 없으면 학교에 오지마라고.

엘레베이터안에서 주고받는 젊은 엄마들의 걱정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아

딸아이에게 이야기했더니 의외로 \'요즘 학교마다 선물 안받기로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러냐고..\'

봄바람에  치마를 하늘거리며 걸어가는 딸애의 뒷모습이 예뻤다.

 

나도 두 아이를 키웠지만 학부모회의가 싫었고, 학교에 청소하러가는것도 꺼려했었고,

스승의 날에 선물사는것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었다.

 

선배 한 분이 초등학교선생님이었는데 스승의 날이 지나고  집에 놀러가면

자기가 필요한것은 빼 놓고, 남은 여러가지 선물들중에서 마음에 드는게 있으면

가져가라했다. 40명 아이들이 사오는 선물이 다양하지만 정작 선생님본인에게는

꼭 필요한것보다 잡다한 물건이 될뿐이다.

그 선배를 보면서 스승의 날에 선물은 안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냥 보내기도 뭣하고 해서

뭔가를 사서 보내기는 했었다.

어쨋거나 5월 스승의 날이 학부모들에게 부담되는 날이 될바에 차라리 학년이 마치는

마지막 달, 2월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일년을 되돌아보며 진정한 마음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 되는게 낫지않을까 싶다.

 

동창회를 안 나가니 딱히 스승을 찾을 일도 없고

할머니가 된 마당에 스승의 날을 기릴일도 없다.

그런데 이제는 며느리가 손녀가 다니는 문화센터 선생님께 선물을 한단다.

아니 2살짜리 아이의 선생님도 스승의 날을?

참내. 어, 그렇다면 나도 할 데가 많네.

남편이 다니는 병원의 언어치료 샘,

작업치료 샘,

음악치료 샘,

족부혈락 샘,

마그네틱치료샘,...

 

에고, 갑자기 왜 이리 선생님이 많지?  그런데 내가 뭐 남편 보호자인가?

벌써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데 선물 사러 갈 시간이 없네.ㅎㅎㅎ

 

선생님이 많거나 말거나

5월은 중순을 넘기고

봄날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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