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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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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그대와


BY 선물 2008-04-01

아침이 밝아온다.

곤한 잠 떨쳐내고 일어나야한다.

시계를 보니 잠시 침대 위에서 뭉그적거릴 여유는 있는 것 같다.

잔뜩 긴장해있는 다리를 살짝 들고 발치를 살펴보았다.

역시 이놈, 새근거리며 자고 있다.

잘못 다리를 놀리다간 침대 아래로 추락시키기 십상이다.

그래서 무의식중에도 늘 내 다리는 긴장한다.

몸을 일으켜 이놈의 몸뚱이에 손을 대고 부드럽게 주물러주었다.

부드러운 털과 말랑거리는 살이 어쩜 이렇게 나를 평온하게 해주는지 여간 기특한 것이 아니다. 때론 발라당 위를 향해 드러누운 모습을 보다가 기습 뽀뽀를 하게 되고 만다.

정말 이 아이로 인해 포근한 행복을 맛본다.

처음 무슨 솜뭉치 한 덩어리 모양으로 내게 온 우리 막둥이.

이놈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울었다.

싸늘한 눈빛으로 이건 악연이다 생각하며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강아지 키우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었다.

보는 것만으론 처음부터 예쁘고 귀여웠다.

그러나 기른다고 생각할라치면 그놈은 그저 고단한 내 삶에 끼어든 불청객 일거리일 뿐이었다. 어떤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처럼 강아지 기르는 것에 대한 남편의 입장은 단호하고도 비장했다.

이십 년이나 양보했어! 이젠 나도 강아지 좀 키워보자. 그것도 못하고 살아야 하냐고!

더 이상은 웃으며 의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입 꾹 다물고 있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집에서 이놈을 쫓아내고 싶었다.

며칠 궁리 끝에 어머님과 야비한 계략까지 꾸몄다.

그런데 막상 보낼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보니 이별이 아프게 느껴졌다.

그래서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막둥이다.

어떤 글을 쓰려고 해도 어두워지기만 하고 가라앉게 되어 결국 글 한줄 못쓰게 되고 만 날들이었는데 막둥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동안은 내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내 옆에 있어주면 참 행복할 것 같은 그대가 바로 막둥이다.

하는 짓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고 가슴 속에서 폭신한 행복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남편은 어떤 일에 마음을 다치면 그 아픔에서 벗어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사람이다.

그것을 곁에서 견디어내는 것도 참으로 고단하다.

그런데 정말 이 사람이 막둥이가 온 후로는 잘 극복해낸다.

아무리 울적한 일이 있어도 막둥이만 보면 미소를 머금는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막둥이를 안고 길을 걸을 때가 있다.

다른 때보다 훨씬 조심하게 된다.

혹여 넘어지기라도 해서 막둥일 놓칠까봐 걱정이 되는 까닭이다.

이놈은 밖에 나가면 제멋대로 돌아다니려한다.

거기에 대한 훈련은 아직 못했다.

사실 막둥이에 대한 내 사랑은 짝사랑이다.

처음 정을 듬뿍 준 사람이 남편인지라 막둥이는 남편만을 추앙하고 사랑한다.

언제 어디서나 남편만 졸졸 따라다닌다.

때론 남편 옆에서 자는 놈을 살짝 안아다 내 옆에 두기도 한다.

근데 이놈은 잠결에 실눈으로 나를 확인하고는 낑낑거리며 부들부들 떨리는 걸음으로 남편을 향하고 만다.

자식들보다 귀여운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아들 녀석은 가끔 투정을 한다.

막둥이가 부러워요.

그러면서도 저 또한 막둥이를 보며 환장한다.

지금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 저 눈빛. 팔랑거리는 저 꼬리.

우리 곁에서 함께 한 2년 남짓한 세월.

그래봤자 애완동물일 뿐인데 이렇게 감동하고 감사해도 될는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녀석으로부터 얻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이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녀석을 보면 사랑의 감정이 절로 솟아나고 그로인해 아주 구체적으로 힘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가끔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많이 건조하고 냉소적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원래의 난 정말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정도 많고 눈물도 많고 그래서 주위에 사람도 많은 참 따뜻한 존재였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꾸 맘을 닫으려 하고 있다.

그것이 다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자꾸 움츠리려 한다.

그러나 막둥이는 내게서 밝은 면을 끄집어내주고 있다.

내게도 내가 사랑할 만한 예쁜 맘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고맙다.

아직 꺼지지 않은 온기가 있음을 알게 해 줘서 참으로 고맙다.

내 소중한 막둥이는 그래서 가족이다.

* 여전히 막둥이와 잘 살고 있습니다. 궁금해 하시는 고마운 분들도 있고 해서 이렇게 근황을 전합니다. 아이들과의 이야기도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편이지만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담담하게 적어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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