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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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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산골


BY 영롱 2008-03-15

단단하게 얼어 붙었던 호수가 출렁출렁 잔 물결을 반짝인다.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아져서 저 물결도 더 아름답게 반짝인다.

뒤에 따라 오는 젊은 주부 셋의 수다를 몰래 훔쳐 듣다가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려 숨이 차 오르자 뒤를 돌아 보았다.

그녀들과는 이미 사이가 저 만큼 벌어져 있었다. 황사가 없는 이른 봄의 늦은 아침 그리고 주말의 이 평온이 달콤하다. 화이트 데이의 사탕처럼...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자니, 돌 틈으로 새싹이 손톱처럼 조금 자랐다.

예전엔 겨울을 좋아했다.

유난히 춥고 긴 고향의 겨울은 눈 속에 깊이깊이 침잠하여 삼월이 와도 깨어날 줄 몰랐다.

눈밭을 뒹굴며, 얼음을 제치며, 끝도없이 피어난 눈꽃 속에서 하얀 것만 보고, 하얀 것만 생각했던 내 유년의 겨울은 황홀했다.

먹을 것을 찾아 산에서 짐승이 내려 온다고 교대로 엄마들이 학교까지 우리를 바래다 주었었지.

나일론 양말을 나무 난로에 말리던 가장 평온한 그 순간은 내 기억 속에 붙박혀 불안할 때 마다  청심환처럼 달래준다.

매운 겨울을 좋아했던 개구쟁이 아이들도 이제 불혹을 넘겼구나..

 

봄이 오면 우린 나물을 뜯고 캐러 다니는 것이 노동이 아닌 놀이였다.

먹을 것이 부족한 봄 가난한 산골 아이들에게 주어진  바구니...

냉이를 캐고, 원추리를 뜯고, 해님 나물을 따고, 좀 더 따뜻해 지면 달래와 고들빼기를 캐고, 드룹과 고사리와 취나물과 참나물을 뜯으며, 나는 경쟁이라는 것을 배웠다.

아이들과 나물 바구니를 대조하며, 내 바구니가 덜 차면 열등감을 느끼고 크게 상심했지.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하며 느낄 경쟁과 좌절을...

봄이오면 봄 노래를 흥얼거리며, 온 산과 들을 누비고 다녔다.

찔레순을 꺾어 먹고, 진달래를 따 먹고, 머루, 다래 먹을게 천지였던 그 봄

자연을 먹고 자연에 취하여 자라났던 산골아이들.

철쭉을 진달래로 알고 먹다가 토해대던 꼬맹이의 입에서 나오던 붉은 꽃물 속에서 드디어 봄은 절정에 이르렀지.

 

봄이 오면, 키기 작고 얼굴이 동그란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다.

싸리꽃을 좋아했던 선생님, 아이들은 들에서 꺾은 싸리꽃을 한 아름 들고 스쿨버스를 타곤 했었다.

커다란 옹기 꽃병에 아이들이 꺾어온 싸리꽃을 꽂으며, 꽃보다  활짝 피어나던 처녀 선생님.

가끔 싸리꽃을 볼 때면 싸리꽃처럼 수수하던 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여, 그리웁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선생님의 한 마디는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도 싸리꽃을 좋아하는 수수하고 따뜻한 봄같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해빙의 물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오후내내 앉아있던 그 물가의 버들 강아지도 그립다.

 

봄이 오면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는 지난 시절, 세월이 지나면 잊혀져 갈 것은 모두 잊혀지고

그래도 기억나는 것은 더 선명하게 그리고 더 아름답게 클로즈업 된다.

\"언니! 지나간 건 원래 다 아름다운거야. 생각해봐 얼마나 힘들게 학교를 다녔는지...\"

동생의 말이 맞다. 정말 현실적인 정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홉 살이나 어린 막내 동생의 말이 전부는 아니라고, 나는 혼자 생각한다.

말하면 그 똑부러지는 것이 또 한 소리 할 테니...

 

봄이 오면 제멋대로 핀 꽃을 보러 가고 싶다.

그러려면 여전히 지금도 거기 있는 고향으로 가야지.

비록 많이 변하긴 했지만, 고향이 있어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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