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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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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지법


BY 명자나무 2008-02-24

겨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애지 중지 알뜰히 모은 살들을 어쩌지 못하고 끌어안고 다니는데

어찌나 실한지 숨이 다 찰 지경입니다.

 

하여 걸어서 출근 하리라 마음먹은지 수 삼일...

연습삼아 나선 날은 찬 바람이 잉잉 소리까지 울리는 매우 추운 날이었습니다.

단디 무장을 하고 나섰건만 얼굴이 쪼개지는듯 아리게 바람이 훓고 지나갑니다.

조만큼 가다보니 버스가 서 있습니다.

마치 나더러 빨리 뛰어 오라는 듯이 붕붕 거리고 있는데

먹는것 만큼 유혹이 진했습니다.

천신 만고끝에 가게에 와서 시간을 재어보니 딱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걸어다니기 며칠째입니다.

다행히 날씨가 푸근해져서 조금 걷다보면 외려 몸에서 더운 기운이 솟아납니다.

그래도 걷기 전에는 장갑도 찾아 끼고 웃도리도 단단한 것으로 챙겨 입습니다.

가볍게 입었다가 감기 걸리면 나만 손해잖아요.

 

한 삼십분 걸어오면 큰 오거리가 나오는데 파란 불을 놓치면 한 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동안 걸어온 기운을 놓칠새라 신호등 앞에서도 왔다 갔다 하는 중에

부시시한 아가씨가 신발을 꺽어 신고 껌까지 씹고 서 있습니다.

요즘 신발 꺽어 신고 다니는 사람을 잘 못본지라,

어디 가까운데 가나보다 하기에는 옷은 나들이 옷 입니다.

 

횡단보도의 흰 선을 맞추느라 평소 보폭보다 넓게 걸음을 걷느라 애 좀 쓰는데

이 아가씨는 어느새 술렁술렁 저 만큼 앞을 가고 있습니다.

 

내 걸음도 어지간히 빠르다곤 하는데 , 더 한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며

어느새 따라 잡아볼까 하는 경쟁심에  짧은 다리로 무리를 했건만.

젊은 처자는 신발을 찍찍 끌면서 심드렁 하게 걷는것 같은데도

어느 새 저~ 만큼 한 구간을 훌쩍 넘어 신호등을 또 건너가고 있는 것 입니다.

사라지는 등 짝을 바라보며 저것이 사람이여 구신이여~ 만 되네이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도 같은 시간 , 그 장소 에서  똑같이 껌을 씹으며 신발을 꺽어 신고 나타났습니다.

내 오늘은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하며 뒤를 종종 쫒아 갔지만

세상에 안 되는 일도 있는 법!

에휴~ 숨만 차고, 이게 뭔 짓인가 싶어서 그만 뒀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습니다.

저것이 삼국지에 나오는  축지법이로구나아~

내 눈 앞에서 바람처럼 앞서가는 축지하는 여인네를 보는 광영을 누리다니.

그나저나 책에서 본  남정네들은 짚신이라도 단정히 신었건만

이 불량한 처자의 행색을 보니 훨씬 더 고수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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