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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잔 놓인 풍경(3)


BY 개망초꽃 2008-02-21

그 여자는 일찍 출근을 했다. 집에서부터 똥을 누고 싶었지만 오늘만은 항문에 힘을 주고 참아내야만 했다. 계획적인 일을 성공적으로 펼쳐야하기 때문이다. 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출입문엔 아침 일찍이라 아무도 없었다. 태연하게 출입문을 통과해 비상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가슴은 두근거렸지만 오늘만큼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 참고 매장 입구로 들어섰다. 고객용 여성 화장실엔 아무도 없다. 개점시간이 되려면 한 시간 반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여자는 첫 번째 문 화장실로 들어가 신문을 깔고 항문을 열어 똥을 누웠다. 그리고 일회용 장갑을 끼고 똥을 물감삼아 화장실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 여자는 재수 없게 대면모니터는 70점을 받았고 전화모니터는 60점을 받았다. 85점 이상이 되어야 사유서를 쓰지 않고 통과가 되는데 점수가 너무 낮은 관계로 변명도 못하고 단박에 잘리게 되었다. 대면모니터는 한꺼번에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와서 한 손님에게 인사를 못했는데 그 한 손님이 모니터였고, 전화모니터는 팩스랑 혼동이 되다보니 인사를 못하고 여보세요? 집에서 전화를 받듯이 받아버려서 점수가 낮았다고 한다. 그 여자는 억울했다. 고객과 싸운 것도 아닌데 이런 일로 단칼에 잘린 것이 억울했다.

자신의 똥이지만 더럽고 냄새가 지독하다. 억울함을 풀기위해 화장실 벽에 똥 벽화를 그려놓고 신문과 일회용 장갑을 비닐봉지에 부리나케 싸서 버리고 비상계단을 올라와 직원 출입구로 나왔다. 두 번 다시는 이곳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참았던 똥을 눈 듯 시원했다. 맘에 맞는 직원들과 휴게실에서 마시던 커피를 못 마셔 그게 못내 섭섭하다. 냉랭한 겨울바람이 그 여자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 여자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총총총 걸어갔다.


개점시간과 함께 손님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엔 똥냄새가 연기처럼 꽉 차 있었다. 으헉! 손님은 놀래 자빠질 뻔했다. 손가락 자국을 내며 그려진 똥 벽화는 수분을 증발하면서 냄새는 화장실로 넘쳐났다. 쇼핑센터 관리팀 직원들은 아침부터 똥 범벅이 된 화장실과 땀나게 씨름을 했다.  씨벌~ 살다보니 별일이 다 많네,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 미친년, 씨벌!


쇼핑센터에 소문은 연기를 타고 쫙 퍼져 나갔다. 고객이 그랬을까? 그럴 리가 있어, 직원이 그랬겠지. 그렇겠지? 당연하지, 억울한 일이 있어서 화풀이를 한 걸 거야. 엿 먹으라고. 그러니까 직원들 넘 억울하게 하면 안 돼.


똥범벅이 된 화장실을 시작으로 하루가 바쁘다. 커피 잔 속과 받침 밑에 먼지가 뽀사시 하다. 바닥엔 먼지가 솜으로 뭉쳐 굴러다닌다. 청소를 하다보면 조회시간이 온다. 두 줄로 모여 매니저님의 전달사항을 듣는다. 최고의 서비스를 강조한다. 최고의 전화응대를 강조한다. 매출이 떨어졌으니 이유가 뭔지 퇴근 시간 전에 개별적으로 상담을 한다고 한다. 부족하면 집으로 들어가 살림이나 하라고 한다. 그만 둘 생각을 하라고 한다. 모두들 고개를 들고 전달사항을 그대로 듣는다. 입을 삐죽거리는 직원도 있고 웃는 직원도 있고 고개를 숙이는 직원도 있다. 나는 무표정으로 서 있는다. 다 그런 거지…….다…….


전달사항이 끝나면 체조를 한다. 서로 안마를 끝으로 조회도 끝난다. 청소를 마무리 짓는다. 노트를 꺼내 오늘 할 일을 체크한다. 오늘은 배송 한 건이 있고 발주도 해야 한다. 매출을 위해 계산기를 탁자위에 꺼내 놓는다. 볼펜을 오른쪽 주머니에 꽂아 놓는다. 고개를 들어 앞을 향한다. 표정은 밝게, 다리를 꼬지 말고 똑바르게 서 있다가 손을 앞으로 모으며 고객을 맞아야 하며, 니다까체를 쓴다. 그렇습니까? 알았습니다.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이 물건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살짝 살짝 웃으며 밝고 명랑하게 끝을 올리며 말해야만 단칼에 잘리지 않는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잘리고 싶지 않다. 내가 싫으면 내 발로 나가야지 절대 잘리지 말아야 한다.


난 가끔씩 그대에게 조용조용 고분고분 말로 전달을 한다.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보고 떠나라 할 수 없지, 마음이 변했으면 변했다고 말하기, 그러면 조용히 보내줄게,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하기, 그러면 미련 없이 보따리 싸가지고 절을 떠날게. 사랑은 말이야 헤어질 땐 이기적인거야, 싫은데 억지로 옆에 있어줄 필요 없어. 속이지 않기, 솔직하게 말해주기. 알았지? 그대?


배송내릴 시간이다. 홈세트라서 부피도 크고 무겁다. 핸드카에 실고 건풍과로 끽끽끽 내려간다. 전표를 찾아 배송해 주시는 분께 밀고 간다. 배송아저씨는 항상 모자를 쓰고 있다. 한번 본 직원을 얼굴부터 이름, 어느 코너에 있는 것까지 컴퓨터처럼 입력하시는 분이시다. 커다란 물건을 전표 한 장과 바꿔 들고 가붓해진 핸드카를 끌끌끌 끌며 매장으로 들어온다.


발주할 목록을 적어 사무실로 들어갔다. 팀장님이 전화기에 대고 목청이 갈라져라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댄다. 똥 벽화 사건 때문에 종일 기분이 나쁘신가보다. 그래도 그렇지 다들리게 욕을 해대다니, 성질 더럽네, 더러워. 난 아무상관 없으니까 떳떳하게 사무실로 들어가 팩스를 눌러 발주를 완료시킨다.


오늘 매출을 맞춰본다. 계산대 직원이 매출키를 뽑아주며 매출 점수를 본다. 오늘은 성적이 좋군, 성적이 안 좋아 부모님 모셔오셩~~ 농담을 한다.


커피 잔 꼬닥지가 삐딱해져 있다. 똑바로 자리를 잡아준다. 커피 잔은 여섯 가지 꽃이 피어 한 세트다. 분홍색 두 개, 흰색, 연 노란색, 보라색, 파란색. 요 며칠 사이 파란색 커피 잔만 골라 가지 않고 남아 있다. 내일부터는 파란색 커피 잔이 예쁘다고 하며 밀어붙여야겠다. 한 가지 색 커피 잔만 남으면 재고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골고루 팔아야한다. 시간 흐름 따라 장사하는 요령이 붙는다.


그대를 만나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그대를 웃게 만들고 화나게 만들고 투정과 애교를 부르며 다루는 요령이 붙는다. 밀고 당기는 조절을 잘 못하면 재고 처리를 해야 한다. 나는 가끔씩 재고처리를 한다. 사랑의 재고처리란? 며칠 동안 문자도 안하고 전화도 안 받는 것. 다만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 신중히 처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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