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내가 본걸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상상일까.
한 할머니가 허공에 흩트려진 허연 담배 연기 같은 모습으로 벤치에 앉아있고 작은 보퉁이
하나가 들려져 있다.
그 앞에 자식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묻는 사람에게 한사코 모른다며 고개를 젓는다.
자식에 의해 버려진 할머니의 모습.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말.
자식 자랑에는 입에 날개가 달리지만 입에 달린 쇠뭉치 보다 가슴에 달린 쇠뭉치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져 입이 열리지 않아 내 자식의 허물을 말 못해 하는 부모.
남매를 낳아 유난히 가족사랑이 깊어 자신을 모두 바쳐 가족을 돌보는 남편덕에 힘들고
많이 울고 살았던 세월이였지만 그 세월을 이겨낼 힘과 단순하고 밝은 성격탓에 작은 것에
늘 감사하고 행복해 하며 살았든 세월.
양가 부모님들이 붙여주신 \'착한 씨종자\' 우리가족은 늘 가족의 평화를 유지하는 중심점에
세워 주시곤 하셨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도 아니고 대단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도 아니였지만
욕심없는 부모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은 제 몫의 공부도 하고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니
언제나 고맙고 감사한 아이들이였다.
가끔씩 착하기만 하고 제 욕심 차리지 못하는 딸아이로 행복을 느끼는 반면 안쓰러움에
눈물 흘린적도 있었다.
첫딸을 낳고 노심초사하든 중에 고추를 달고 나와 기쁨을 줬던 아들은 잠시도 엄마 등을
벗어나질 않아 참 많이도 날 힘들게 했지만 모유를 떼고 우유를 먹기 시작한 8개월 때 부터
엄마의 품을 모질게도 거부하며 날 서운하게 했었다.
이기적이고 차거웠던 아들아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 졸업을 할때까지 언제나
혹여 학교에 적응 못하면 어쩌나 아이들을 때리면 어쩌나 불안했던 엄마의 마음을 알기나
하듯 아무런 말썽없이 12년의 긴 세월을 잘 참아준 아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초등학교때 부터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아이에게 오는 편지나 러브장을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발렌타인때는 문앞에 배달되어온 엄청난 쵸콜릿의 양에 놀라 신기했던 적도
아들아이의 학교로 배달되어온 3단 케익에 놀라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복으로 덮어
낑낑 거리며 집에 가져와 어이없어 하고 놀랬던 적도 있었지만 아들아이는 고등학교를
마치는 12년 동안 한번도 그런곳에 한눈 팔지 않고 제 나름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 했었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은 단 하루 수능시험의 결과로 최하위 등급을 겨우 면하는 실력으로
평가 받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학교에 원서를 쓰면서 또 한 번 좌절 그나마도 하나도 합격
통지서를 받지 못하고 예비라는 딱지가 달린 아이의 이름앞에 그나마 하찮은 대학이라
우습게 생각했든 시건방마져 다시 짓뭉개지고 말았다.
그래도 2차 합격자 발표날이 남아 있어 그나마 걸었든 희망마저 부셔지고 아빠와 아들의
불신만이 팽배해져 갈 무렵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아빠,엄마의
승낙과 건전한 사귐을 이유로 수시로 집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다.
학교 문제가 결정도 되지 않아 착잡하기만 한데 아들아이의 철없는 행동에 불만은
싸여만 가고 설상가상 운전면허를 따고 주민등록증을 받아든 아들은 어른 흉내 내기에
들어갔다. 엄청난 보험료를 들여 가족보험을 들고 한번씩 건네는 차 키는 피를 말리는
불안감이고 그럴때마다 아들의 불만은 싸여만 갔다.
해질녘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반창회가 열리는데 엄마차를 빌려달라고...
언제나 내가 대적하기는 벅차기만 한 아이
아빠가 승낙하면 차키를 주겠다고 슬쩍 아빠에게 떠 넘긴 이 일이 이토록 큰 상처를
만들줄이야 나보다도 더 완고하고 고지식한 남편은 다짜고짜 안돼!라고 말했고 아들
아이의 어째서 안 되는지 조목조목 따지며 높아진 언성에 화가난 남편이 식탁 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걸로 아들을 때리려는 거 보다는 위협적으로 아들의 기를 꺾어보려 했음인데 아들이
파르르 떨며 나와 앞을 막아선 누나를 밀치며 아빠에게 들어섰다.
순간적으로 남편손에 들려있던 의자는 아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들의 억센 팔꿈치에 얼굴을 맞아가며 필사적으로
달려드니 아들은 마루 바닥에 깊은 상처를 내고 의자를 내려놓는 걸로 그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 남편의 자존심과 상처 속울음을 씹으며 남편이 집을 나섰고 잠시후 뭔가를 주섬주섬
챙긴 아들도 집을 나섰다.
펑펑 울기만 하는 딸아이 너무나 미안하고 안쓰러워 내 감정을 다 드러내지도 못하고
나 또한 속울음을 삼킨다.
아들 아이의 방문을 열어본다.
고3 그 힘든 3년 동안도 엄마 손을 빌리지 않고 정갈하게 방 청소를 하든아이
내가 미워 아들에게 무심했든 만큼 아들방에 먼지가 가득했고 아들아이의 마음이
어지러웠든 만큼 방안이 엉망이다.
먼지를 닦으며 눈물도 닦고 정리를 하면서 내 마음도 정리를 한다.
어느새 딸아이가 들어와 울면서 날 거든다.
아들 아이에게 입은 상처를 아이러니 하게도 또 다른 자식인 딸아이 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미안하다 딸아 못난 부모의 모습을 보여서...
하지만 이 아픔은 분명 다른 깨달음과 얻어짐이 주어 질꺼야.
아들방이 환해졌다.
띡띡띡 전자 문 개폐 소리가 들려 거실로 나와보니 놀랍게도 아들과 아빠가 함께
들어온다 깜짝놀라 아들을 따라 방에들어가서 아들 손을 잡았다.
아들아 고맙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고 아빠와 함께 들어와 줘서 더 고맙다.
아들이 전 괜찮다며 아빠에게 가 보라고한다.
다시 거실로 나오니 남편은 아들에게 밥 차려 주란다.
딸이울며 날 도우고 나도 울면서 밥을 차린다.
남편의 충격 때문에 정상적이지 못한 행동이 끝없이 눈물이 솟게 한다.
남편은 따끈한 누룽지 한 그릇을 먹고 우유 한잔을 데워 먹고 슬픈잠이 들었다.
아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얗게 불을 밝혀놓고 뒤척인다.
딸아이가 \"엄마,내 방문 닫지마 혹시 밤에 아빠 집나갈까 봐 내가 지키면서 잘거야\"
아들방에 들어가 하얗고 연약하게만 보이는 아들 가슴에 손을 얹어 본다.
이 작은 가슴 어디에 그토록 큰 분노와 강철보다 더 센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남편은 속상한 일이 있을때 사무실에 나와 잠을 잔다.
아들은 아빠가 사무실로 갔을거라 생각해 택시를 타고 사무실에 갔고 무릎꿇고
자신의 행동을 자신도 모르겠다며 용서를 빌었다지만 서로서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가슴들이 언제나 아물어 치유가 될지 ....
아직도 잠자는 잿빛숲에 일렁이며 부는 바람이 유난히 춥고 가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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