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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한가해요~


BY 명자나무 2008-02-05

시댁에 처음 인사 가던 날.

낮으막한 양철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사랑채가 맞다아 있습니다.

사랑채 처마 끝에 작은 물체가 실에 매달려 대롱 거립니다.

저것이 무엇인가? 궁금했지요.

 

저녁을 얻어 먹고 일어섰는지 아닌지 기억도 없이

처음 간 시댁 인사를 마치고 대문을 나서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시 동생이 스윽 인사도 없이 사랑채로 들어갑니다.

왠지 분위기도 으슥한것이 섯불리 다가갈수 없는 카리스마가 확 느껴집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그 댈롱이에 대해서 물어봤다가 기절 초풍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두운 카리스마를 풍기는 시동생이 화투를 안 하겠다면서

스스로 자른 새끼 손가락을 매달아 놨다고 하는데 어쩐지 섬뜩 하더라구요.

그때는 지금 같지 않아서 솜털이 보시시하던 때였습니다.

 

여름이 되자  시동생도 여자 한 분을 모셔 왔습니다.

역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땀이 퐁퐁 솟아나게 더운 날에도 손 목까지 오는 긴 팔을 입길래

보기보다 조신하구나 했더니.

그것이 알고보니 팔뚝에 진한 문신을 했더라구요.

 

그 당시 껌씹고 침 좀 뱉었다 하는 애들이 하는 절집 문양의 문신 정도는

새발의 피요 귀여운 애교로 봐줄 정도로

동서의 문신은 크고도 넓고 길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앞으로 내가 살길은 죽어도 동서한테 시비 안 붙는 것이다.

내 죽는 날까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 후로~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나 제사날에도  빈손으로 와서 참석만 할때도 있고,

때로는 아들들만 보내도 황공 무지로소이다 입니다.

사실 나도 사람인지라 장사하느라 바쁜데 먹고 노는 동서가 와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마음이 갈코리 처럼 꼬부라질때도 있기는 했어요.

그러기를 벌써 강산이 세 번 변할라고 하네요.

 

지난 달 시동생 결혼식에서 만난 동서가

이번에는 설날 음식  준비를 다  할테니 형님은 딱, 한 가지 산적이나 준비하셔~ 이러는 겁니다.

 

정말 별꼴이 반쪽입니다.

동서가 너무 오래 시 아버지 제사 상을 안 차려서 이번에는 정성을 다해서 손수 차려드리고 싶답니다.

흙으로 돌아간지 이미 오래 된 시아버지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며칠 전 어른 머리 통만한 배가 한 상자 들어왔습니다.

하도 크다 보니 채 열개도 안 들은 것이 한 상자라고 합니다.

그 중에 서너개 물 좋은 것은 제사상에 올릴려고 따로 두었습니다.

 

 

동서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 차 정말 아무것도 준비 안 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형님은 산적 만 하면 된다고 하길래

그럼 고기 사다 국물이라도 만들어 놓을까 하니 벌써 사골을 사다 곤다고 하네요.

떡국도 한 말 뽑았고,뼈 국물도 우려 놨고, 과일서부터 포까지 밤 대추에 곶감까지

빠진것 없이 다 사놨다고 합니다.

오늘은 부치미거리 사다가 저녁내 전 부칠거라고 하니..

말만 들어도 엄청 바빠보입니다.

 

그나저나 땡 잡았습니다.

다른 해 명절 같으면 일 하면서도 시장가야 할텐데..를 마음 속으로 수십번을 했을테고

늦게 들어가 양 손 무겁게 장 보따리 끌러서

밤 늦은 시간 까지 앉아서 생선 다듬고 갈비 손질하고 꼬지 꽃느라

허리 한번 피지 못하고 동동 걸음 칠텐데.

 

오늘 저녁은 느즈감치 들어가서 산적 양념이나 해 놓으면 그것로 끝이니

신세 한번 무지하게 편합니다.

 

요렇게 편해보니 그동안 삼십년 세월을 동서가 룰루랄라 했을것을 생각하니

살짝 배가 아픕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들이 이 아들네 저 아들네 늙어서 보따리 싸들고 돌아다니면

그나마나 있던 자리도 빼앗긴다 소리가 바로 이건가봅니다.

 

늘 하던 일을 안 하고 , 편한 맛을 봤으니 올 가을 추석에는 이 번거로움을 어찌할지 지레 걱정입니다.

혹시라도 동서가 지금처럼 착한 마음이 그때까지 쭈~욱 이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그나저나 오늘 밤 거칠것 없이 무척 한가하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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