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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보다 아들보다 소중한 것.


BY 낸시 2008-01-24

우리 식당은 레스토랑 겸 찻집이다.

찻집과 레스토랑을 겸하는 것이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때 내 생각은 아니었다.

아들녀석이 자기 고집대로 이름을 레스토랑 겸 찻집으로 정해 버렸다.

나는 차를 즐기는 우아함을 갖춘 여자가 아니고 그런 엄마를  둔 아들 녀석도 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졸지에 우리는 찻집 주인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커피 맛도 모르는 사람이다.

아들 녀석도 마찬가지로 멋도 맛도 모르는 녀석이고...

아무튼 이름 값을 하기 위해 우리는 차를 판다.

녹차, 홍차,  우롱차, 작설차가 여러 종류에, 아프리카산 홍차, 인도산 차이티, 커피, 냉커피, 타이완에서 유행했다는 보바티...등등

우리가 파는 차에는  우유를 타서 파는 것이 많다.

채식주의자나 우유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유대신 두유를 넣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두유가 가끔 말썽을 일으킨다.

우유 값에 비해 1.5배 쯤 하는 두유값 때문에 남편이 가끔 짜증을 넘어 심통을 내는 까닭이다.

 

아들녀석은 우리가 사용하는 컵 크기를 큰 것으로 하자고 한다.

나도 남편도 제니퍼도 이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녀석 고집은 아무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녀석이 오면 우리 찻집의 컵 크기가 들쑥날쑥이다.

그다지 사업상 좋은 일이 아니라서 난 그 녀석이 주장하는 대로 컵 크기를 키울까 생각한다.

어제는 아들녀석이 도와주러 왔다.

제멋대로인 녀석은 컵 크기를 큰 것으로 사용한다.

이것을 보고 그렇지 않아도 원가에 민감한 남편이 화가 단단히 났다.

아무리 두유가 우유보다 비싸다고 해도 원가에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건만 우리가 파는 가격이 터무니 없이 싸서 손해를 본다는 것이 남편 생각이다.

우리가 파는 값이 원가에 비해 손해보는 것이 결코 아니고, 다른 곳에서 파는  값에 비해 싼 것도 아니고를 가르쳐 주어도 그 때뿐 시간이 지나면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의 생각에 우리가 하는 짓은 손해보는 미친 짓이다.

손님이 있거나 말거나 화가 난 표정으로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가 정도를 넘어 빈정거림으로 가면 내 참을성도 한계를 넘는다.

그러면 안되는데, 손님이 있는데, 얼굴이 화끈 거리기 시작한다.

손님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는 내가 화가 나기도 하다.

실수가 생기기 시작한다.

주문 받은 것을 부엌으로 보내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남편과 아들에게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가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게 허둥지둥이다.

손님이 찾아와 자기가 주문 한 것이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어도 상황 판단이 잘 안된다.

이런 나를 보고 아들 녀석이 훈계를 시작한다.

제 아비를 닮아 빈정거리기도  한다.

어쩌면 어미인 날 닮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난 제 아비인 남편을 닮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더 화가 난다.

 

한참을 혼자서 씩씩거리다 간신히 진정을 하지만 나는 슬프다.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아들도 남편도 없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

꿈이 무엇이랴,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 무엇이랴, 모든 것이 다 허무한 생각이 든다.

그 다음날이라고 해서 그런 기분에서 금방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보려 하지만 헛된 망상일 뿐이다.

우리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고 그의 가치와 내 가치가 다르니 그의 계산과 내 계산이 다르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확산시키고 둘 사이의 거리만 확인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되면 식당에 나와 꽃밭에 둘러보고 손님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공간에서 차츰 나는 삶의 의욕을 찾기 시작한다.

그래 내겐 꽃과 나무가 있지, 나를 보면 눈이 반짝이고 입가에 웃음이 도는 손님들도 있지, 우리 식당을 일터를 삼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고,  날 남편보다 아들보다 더 사랑해주는 그 분도 있잖아...

난 포기 할 수 없어. 남편이 뭐래도 아들이 뭐래도 말이지.

아들이 남편이 내 삶에 중요한 부분임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난 포기할 수 없어.

다른 부분도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거든.

어쩌면 더 소중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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