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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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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BY 둘리나라 2008-01-09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 중에서 가장 우스운 질문은 바로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당신이 가진 희망이 뭡니까?’하는 바보 같은 물음이 아닐까. 얼마 전까지 내게 누군가가 물어 보았다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희망이 없는 여자.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쌍하고, 딱하고, 안쓰러운 여자. 여러 가지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삶과 죽음을 앞에 두고 저울질하며 하늘만을 원망했던 여자가 이제 희망을 이야기하려 한다. 목청을 높여…….

 2002년의 여름을 다시 떠올리니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리고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잊어버리자고 하면서도 몸속 어딘가에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남아 있었나 보다. 한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만들고, 아이를 낳아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10년의 결혼 생활이 흩어지는 구름처럼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이 막막해 오며 벼랑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밀려오던 상실감과 허탈감은, 죽음 쪽의 저울에 무게를 많이 실어 주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같은 직장의 동료로 만나 짧은 시간에 사랑을 하게 되었다. 가난했지만 정직하고 웃음이 맑은 사람이었기에, 무조건 믿고 불을 찾아 뛰어드는 나방처럼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6남매의 막내딸로, 그것도 늦둥이로 얻은 귀한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데려온 남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대의 회초리를 맞고 말았다.

 “결혼은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보다 더 갈라지고 쉬어 있었다. 고생을 짊어지고 살아갈 길을 스스로 택한 딸의 철없음을 탓할 사이도 없이 나는 부모님의 품에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성공해서 찾아오면 용서해 주시겠지 하는 어리석은 믿음을 가슴에 새기며 그렇게 훌쩍 밤의 어둠 속으로 뛰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 어둠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암흑천지의 시작이었고, 나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가 버린 무서운 존재였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부들도 많은데…….난 가난도 했고 불행도 했다.

 남편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드러난 실체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놀랍고, 기가 막히고, 어이없고, 무서웠다. 술과 노름과 여자문제는 기본적으로 달고 다니는 필수품이었고, 무능력한 가장과 폭력과 폭언은 액세서리였다. 견디기 힘든 아픔의 세월을 그래도 이겨내게 해 준 것은 아이들이었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 위로 떨어지던 눈물과 한숨들을 모았다면 집 한 채는 사지 않았을까. 부모와 형제를 버린 벌을 받는가보다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순간순간 폭풍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을 혼자 삭이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를 썼다. 그러나 남편은 다른 여자와의 도피로 마지막 화살을 가슴속깊이 박아 주고는 떠나버렸다. 컴퓨터 채팅으로 만난여자. 기계문명의 말도 안 되는 이기를 내가당하게 될 줄이야.

 “아이는 어떻게 해?”

 “내 새끼 아니니 죽이든 살리든 너 알아 해라!”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다. 10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보다 몇 번 만난 여자를 사랑한다는 남자. 당당히 나에게 이혼해 달라고 요구하는 여자. 세상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꿈만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두통을 동반한 악몽처럼 사라지겠지 믿었다. 이건 아닌데……, 내가 생각한 미래는 성공해서 부모님과 형제들 앞에 떳떳하게 나타나는 것인데……. 현실은 절망보다 더 큰 죽음의 늪이었다. 여름이 끝나 가는 8월의 마지막에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방향을 틀었다. 살아온 시간들이 깨져 버리고 가정이 없어지는 데는 도장과 주민등록증이 전부였다. 참 간단했다.

 남편과 그녀는 빗속으로 사라져 갔고, 나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많은 것을 남겨주고 떠났다. 몇 달이나 밀려 있는 사글세, 빚더미에 올라앉은 신용 불량상태인 나. 덩그러니 남은 두 아이와 제대로 일하기도 힘든 병든 몸. 사랑을 택한 대가로 받은 위자료 치고는 너무나 화려해서 억장이 무너지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답이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 보아야 할까. 아무도 없었다. 철저하게 세상에는 나 혼자였다.

 먼지가 내려앉은 방에서 소주병과 친구를 하며 지냈다. 미친년처럼 풀어헤친 머리로 방 안을 뒹굴며 소리 지르고, 울부짖고, 닥치는 대로 던졌다. 이미 자신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려고 부모님을 버렸니?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니? 술과 노름과 폭력의 오랜 세월 견딘 거니? 이렇게 되려고?’ 지겨웠다. 사랑을 믿은 내가 어리석고 바보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차라리 죽어버리자. 세상 속에서 잊혀 지면 되겠지.

 무작정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바다를 향하는 버스는 내가 타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운전사와 나 뿐이었다. 스쳐 가는 거리의 풍경들도 음산하고 괴기스럽고 공포 그 자체였다. 죽음을 앞에 둔 여자의 마지막 여행은 바다에 이르는 목표를 가지고 정처 없이 달리고 있었다. 바다의 비린내가 콧속으로 들어와 폐 속에 가득 찼다. 어릴 적 고향의 바다에서 질리도록 맡았던 추억의 냄새였다. 그때는 아무 걱정 없이 뛰어다니기만 해도 행복하고 좋았는데.

 소주 한 병을 샀다. 백사장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새까만 천에 진주를 달아놓은 듯 반짝거리는 별들이 자꾸만 흐려졌다. 알코올기운이 온몸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후끈거리며 정신이 몽롱해왔다. 갑자기 왜 아이들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 전화를 했다.

 “엄마, 어디세요? 빨리 오세요.”

 “응, 엄마…….”

 “엄마, 아빠가 안 계셔도 우리가 있잖아요. 걱정 마세요. 엄마는 나와 원빈이의 희망인걸요. 사랑해요.”

 아! 정말 잊고 있었다, 아이들을. 내 슬픔에만 설움이 복 받쳐 올라 아이들을 잊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희망으로 믿고 있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해 주었던가. 좌절하고 실패한 모습만을 보여 주며 원망하고, 욕하고, 울기만 했었지. 아이들의 아픔과 눈물을 한 번이라도 닦아주려 했던가. 이러고도 엄마라 할 수 있을까. 너무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빠른 걸음을 옮기며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자꾸만 훔쳐 내었다.

 창문을 열었다. 컴컴했던 방 안으로 햇살들이 앞 다투어 들어오려 싸워 댔다. 청소를 하며 남편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칫솔과 면도기, 슬리퍼와 베개를 버리며 마음속에 남아있던 연민의 찌꺼기들을 함께 버렸다. 서류를 정리하고 주변을 조용히 정리하면서 감정을 추스르고, 나는 아이들을 보았다. 엄마를 희망으로 알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살아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사람은 끝에 가봐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고 했던가.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이치를 왜 모르고 살았던 걸까.

 새로운 시작은 처음보다 풍성했다. 아이들과 함께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희망을 안고 흘렀고, 지금은 모든 것이 안정되고 평화롭고 편안해졌다. 아이들의 얼굴에 피는 웃음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진한 커피 향에 책 한 권 읽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내가 죽음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2004년의 가을이 성큼 다가와 눈을 시리게 한다. 가을은 성숙한 여인의 요염하고, 섹시하고, 풍만한 육체이다. 그러니 모두 가슴이 설레는 게 아닌가. 바람을 유혹했는지 선선한 바람이 낙엽을 따라 술래잡기를 한다. 발 앞을 구르는 낙엽들도 내년 가을을 기다리는 희망을 안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자의 가슴에 세 들어 사는데, 고맙게도 방세를 안 받는 주인에게는 무한정으로 나누어 주는 기쁨의 선물이다. 나는 방세를 안 주고, 지금도 선물을 나누어 받고 있으니 얼마나 부자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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