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떻게 김치냉장고를 부셔버리냐?
아주 작살내버렸어..전자제품이라면 몽땅 다 부순거여..
오죽 시끄러웠으면 딸내미가 신고를 해서 순경이 끌고 나왔데..
내가 잠깐 서울에 간 사이에 그렇게 집안을 쑥대밭이 된걸 보니
내가 집에 있으면 냉장고처럼 작살나게 맞어 죽었을거다.어휴..
나보다 더 오래 살어서 늙은 언니라고 하면 딱 좋은 이웃에 사는 언니가
한 삼개월 휙 어디를 간다만다 소식이 없이 두문불출하더니 느닷없이
나에게 전화가 왔다. 가을에 보고 못 본 얼굴이 그새 팍 더 늙었다.
나를 보자마자 난 이젠 형부하고 보고 말것 없이 백프로 이혼이란다.
올 해 다가기 전에 꼭 이혼을 해야 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면서 하는 말이
세상에 살림을 죄다 부셔 놓으면 누가 무서워서 벌벌 떨까 그거 궁금해서 이 모양으로 해 놓았냐고..어떻게 해야 실컷 복수도 하고 보란듯이 잘 살수 있냐고
밤에 잠도 안오고, 수면제 먹으니까 더 정신이 멀쩡해져서 미치고 팔짝 뛰어 다녀도 성이 안찬다고 한 애길 또 하고. 또 반복하고.
애덜한테 창피하고 기막히고 나이 오십넘어서 뭘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고.
연말결산이나 마나 당장 고소해서 저 살림 다 증거로 제출하면 자동이혼이 되냐, 안되냐..
만일 이혼 안한다고 버티면 난 어떡함 좋냐고..
혼자 고민을 하는 하소연을 나를 불러다 앉혀서 꼭 혼나는 사람마냥 나는 뚱해가지고..
속으로 이걸 다 들어서 언제 끝나나..이랬다.
\" 아 무신 말 좀 해 봐? 넌 듣기만 하더라?\"
여태껏 언니 혼자 말을 하더니 나보곤 듣기만 한다고 또 소리친다.
뭔 말을 고르고 잘한다고 해도 무슨위로가 될까.
부서진 살림이 재생을 할까.
집나간 형부가 돌아올까.
놀라고 다친 언니마음에 바르는 연고제처럼 위로가 되는 방법이 나에겐 없었다.
이럴 땐 나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면 얼른 알려줄 텐데.
그렇다고 그려 까짓거 얼른 이혼혀! 권유 했다가 괜히 그런 걸로 또 가정하나 깨지게 하는 공로하나 더 늘테고.
\"언니! 근디 왜 나를 불렀어?\"
그제야 정신이 나나..
냉장고가 없어서 김장김치를 넣어들 데가 없는거여..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시면 어떡혀?
니가 생각나더라..니 김장 못하쟎어? 하도 칠칠맞어서..
헤헤..참 언니코도 석자인데..내코는 언제 챙기라고 했남? 오지랖은 디게 넓다.
마음이 그냥 따땃한 아랫목에 있는 것처럼 그냥 저절로 훈훈해진다. 언니도 그걸 알았나 그제야 웃는다. 손으로 얼굴 반가리고 웃는 그 수더분한 웃음때문에 방안이 훈훈해졌다.
\" 언니..그러지말고 형부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남자는 말없는 아내가 젤 무섭데... 어렵구. 그니께 먼저 형부가 연락 할 때까지 아뭇소리말고 기다려 봐..누가 알어? 때린 놈은 발저려서 밤에 잠 못잔다고 했쟎어?\"
그럴까..나도 시원찮은 말을 했지만. 그렇다고 무우 두동강내듯 끝내버려 할 수는 없다.도로 붙어도 붙지 않을 관계들은 너무 하찮게되니. 이왕지사
어차피 시간은 똑같이 지나가니까..그저 말없이 기다리는 게 제일이다하고 내 생각을 말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 지났나..
전화가 왔다.
\" 야! 정자야..세상에 니 형부가 김치냉장고를 사서 택배를 붙인거여..글고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다..미안하다고..나 니말듣고 암말 안했거던? 근디 이거 받으면 뭐라고 답장 해야되냐? 나도 카드보내야 되냐?
말없는 아내가 젤 무섭다면서 니가 그래서 말하면 또 그 때처럼 부수러 오는 거 아녀?\"
\"에휴.언니? 왜그려? 내가 언제 항상 말을 하지 말라고 했남?\"
그래도 언니 목소리가 환하다. 나보고 얼른 오란다. 김치냉장고 보러..
근디 답장을 뭐라고 보내야 근사한 아내로 생각할까..에휴..이것도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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