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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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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엄마 맞어?


BY 일상 속에서 2007-12-04

 

나, 엄마 맞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는 표현을 바꾸어 쓰고 싶다.

마음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혹은 생각이 열개라도 모자란다...라고...

이것도 직업이라고 하여튼 왠지 바쁘다.


지난 한달은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없는 파란만장한 나날들을 보냈다.

올 한해 운수가 어째서 그러는지 아들 녀석, 사건 사고가 자자하다.

입학해서 TV 학교 브라운관을 깨트린 것을 시작으로 이틀 만에 교복바지

찢어 오고 며칠 지나서 친구와 싸워서 불려가게 하지를 않나

천식이라는 오진을 받을 만큼 기침을 해대서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만들더니 머지않아서 장염으로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액땜했다면 좋으련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업무에 열중 좀 해보려면

‘지이이익~ 지이이익~~~’

책상 위, 핸드폰이 트위스트를 칠 때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됐건만 여전히 가슴이 철렁인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끊일 줄 모르고 진동하는 핸드폰을 받아 들 것이

낮 1시쯤이었다.

“여보세요...”

속삭이듯 조용한 내 목소리와 상관없이 상대는

급박함을 암시하듯 말이 빠랐다.


“아빈이 어머니 되세요?!”

“네...”

“여기 **중학교 보건실인데요. 아빈이가 좀 일이 생겼어요.”

“!!! 무슨 일이요?!”

“너무 놀라지는 마시구요. 손가락에 고리가 껴서 빠지지를 않거든요.

아무리 빼려고 해도 안 되네요. 손가락이 퉁퉁 부었는데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손가락을 절단하게 될 것 같아서(이 말씀을

전하면서 놀라지 말라시니... )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거든요. 어머니 오실 수 있으세요? 119를 부를까 하는데...“

“네?! 손가락을요? 우선 **병원 응급실로 119에 태워서 보내 주시겠어요?

제가 곧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서무주임에게 상황을 통보했다.

보고를 드리고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었다. 부리나케 가방과

도시락을 챙겨서 자전거를 타고 밟았다.

제발... 제발 손가락이 무사하길... 간절한 바람으로 자전거의 속력을 냈다.

10분 쯤 흘렀나, 꽁지에 불붙은 것 마냥 달리고 있는데 다시금 핸드폰이 울렸다.

보건선생님이 좀 전과 사뭇 달라진 안도의 목소리로,

“어머니, 어디쯤 오시고 계시는지 몰라도... 안 오셔도 될 것 같아요.

119 소방관께서 고리를 절단 시켜 주셨거든요...“란다.


안도+허무+불끈하는 화가 겹쳐진,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아들과도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돌려서 좀 전에 나섰던 사무실로 도착했다.

일이 생겨서 먼저 퇴근하겠다고 통보하고 나온 사람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서며 “저 오늘 출근 2번 했으니까 월급 하루치 더 주세요.”라는 철판 깐 대사를 던졌다.

가볍게 던진 말과 달리 마음은 산만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을까...

아침, 등교하기 전에 아들 놈 한다는 말이 커디션이

좋지 않으시단다.

몸살 같이 뼈마디가 쑤신다나...

감기다 싶어 가볍게 생각하며 학교를 보냈다.

못 견디겠으면 조퇴를 하라고 선생님께 건넬 쪽지도 써준 상태였다.

그렇게 출근했는데 이번에는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부정맥’ 소견이 보인다며 대학병원에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냔다.

소견서를 써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은 아침 일찍부터 병원을 아래 위층으로

휩쓸고(?) 다녀야만 했다. 그날 역시 별일이 없기를...오진이기를...하는

간절한 소망을 빌고 또 빌었다.

감사하게도 다행히 정상이란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일반사람도 보통 느끼는 정도라고

병으로 여길 만큼 심각한 수준이 아니란다. 아~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또 며칠을 보냈다.


또 다시 트위스트 치는 핸드폰을 던져 버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폰을 받아 들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목소리...아들 학교의 보건 선생님이셨다.


“어머니, 아빈이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를 다쳤어요. 뼈를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부은 것을 보니까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지만...

심각해 보이지는 않으니까 수업을 모두 끝마쳐도 될 것 같은데...“


보건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 아빈이와 통화를 했다.

저도 엄마 볼 면목이 없는지...그래서 변명에 변명을 늘어놓는 건지

수화기를 건네받기가 무섭게 한다는 말이,


“엄마, 선생님 말씀이 뼈는 멀쩡하대요. 그냥 좀 부은 것 같으니까 병원에

가보라고 하시던에요.“ 란다.

“정말 괜찮냐?”

“네.”

“그럼 수업 모두 마칠 수 있겠어?”

“네...”


어쨌든 시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아들놈에게

약도 바짝 올라있는 상태였다.

옛말에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더니...라는 말을 지대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T머니로 택시를 타고 가도 되냐나...

철딱서니가 없는 것인지 뻔뻔한 것인지 집과 학교의 거리가 근 1km가 되지만

인대가 좀 늘어났기로 서니 택시를 언급해?

제 엄마는 늘어난 인대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직장을 다녔고 치료도 받다가

말았는데 그것을 지켜 본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택시는 무슨 택시!!! 그냥 천천히 걸어가. 엄마가 4시쯤 여기서 나갈 테니까

병원에서 엑스레이랑 찍고 네 증상을 말하고 있어. 시간 끌며 기다리지 말고!“

“...네...”


윽박지르듯 내뱉어낸 말에 녀석이 더는 말을 잊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직장에 벌써 여러 번 집안일을 이유로 조기퇴근 부탁했건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미안함을 무릅쓰며 사무주임에게 사정을 고했다.

‘어째 그렇게 바람 잘 날이 없어...’

서무주임님이 걱정스레 해준 말이지만 흉처럼, 가시처럼 그 말이 뇌리 속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퇴근하는 길에 아들놈에게 전화가 왔다.

발목이 부러졌단다.

.

.

.

부러진 발목으로 녀석이 1km를 걸어오며 얼마나 많이 힘겨웠을지 생각하니

내가 모진 엄마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미안했다.


이런 나날 속에서 내 머리가 정상이길 바란다면 얄궂지...

이렇게 내 자신을 위로해 보고 싶다...


오늘 아침, 아들 놈 때문에 며칠째 상에 올리고 있는 우족 곰국이 담긴 솥의

가스 불을 켜놓은 일이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아주 약한 불로 올려놨지만 벌써 시간이 5시간이나 지났으니...

뭔 일이 터지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뭔 일이 없어서 연락이 없는 거라고 위로하고 싶었지만

혹여 뭔 일이 터져서, 건물이 모두 날아가 버려서 연락할 사람이 사라졌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썰물처럼 밀려드니 이건 잠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가깝게 있는 것이 딸 아영이였다.

오늘은 학교수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학교에서 직접 학원으로

가야하는 날. 집에 들르려면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조급한 나는 더 이상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아영이 교실로 전화를 했다.

놀란 목소리의 선생님께,

“선생님 어쩌지요? 제가 오늘 가스 불을 껐는지 기억에 없어서...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 중에 아영이가 제일 가까이에 있어서... 죄송하지만

아영이가 집에 좀 다녀 올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선생님... 나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어찌나 면목이 없던지.

정말 이해는 하실까? 문득 궁금했다.


일한답시고... 딸의 솟구치는 학구열(?)에 뒷바라지 못하는 나날,

언젠가 출근 1시간 전을 앞두고 딸내미 한다는 말이 수학 숙제가 있단다.

왜 그것을 이제야 말하느냐고 물으니 전날 얘기했는데 엄마가 대꾸를 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어쨌든 딸이 펼친 수학교과서를 들여다보니 실험이 따라야 하는 까다로운

문제들이 나열되어있었다. 실험을 않고는 답을 구할 수 없는 그것에

나는 어쩌지를 못하고 그냥,

“안되겠다. 그냥 가서 혼나...”라고 했다.

상심한 딸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그렇게 학교로 아이를 보냈다.

퇴근해서 저녁식후, 아침의 일이 생각나서,

“숙제 못해 간 것 어떻게 됐니” 라고 물었다.

내 물음에 아영이가 덤덤히 한다는 말이,

“숙제 안 해온 사람 손들라고 해서 손들었더니 3명밖에 손들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나보고 왜 숙제를 해오지 않았냐고 해서 엄마가 그냥 가서 혼나라고

하셨어요, 라고 했어요.“

“헉...(이런 융통성이라고는 벼룩의 쓸개만치나 없는 가시나...) 그랬더니

선생님이 뭐라시디?“

“(뒷걸음을 몇 발치 뛰는 흉내를 내며) 정말?! 그러셨어요.”

.......


딸을 솔직하다고 칭찬할 수 없는 어미의 소견머리...

그런 일이 있은지 3일쯤 지났을까,

어제 저녁 잠들기 전에 한다는 말이 사회 숙제가 있단다.

숙제가 뭐냐고 물으니 알림장을 뒤척인다. 그리곤 <우리 가족이

우리 고장에 가입한 단체 알아오기>란다.

“우리 집은 가입한 단체가 없다.”

라고 대꾸를 해주니 그럼 엄마가 학습장에 그렇게 쓰란다.

나는 정말 그렇게 썼다. 보통의 부모들은 없는 것도 꾸며서 숙제를

작성해서 보내는 성의를 보일 텐데... 나는 딸내미만치나 솔직하게

알림장에 (우리 가족은 고장 단체에 가입된 곳이 없습니다.)라고

써줬다.

그 글을 선생님은 오늘 확인 했을 텐데,

수업도 끝나지 않은 아이에게 가스밸브에 대한 확인을 바란다며

집에 잠시 보내 달라는 부탁까지 드렸으니

나를 어찌 여길지...

딸의 삶은 또 어찌 여길지...

내가 정말 엄마 노릇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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