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때 한소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머리를 눈까지 길러 옆으로 드리운,
깊은 눈매가 항상 슬퍼보이는 소년이었습니다.
항상 고독하게 홀로 서있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 소년이 100미터 거리의 초등학교에 자주 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토요일 방과후면 그애를 멀리서나마 볼수 있을까 초등학교 밴치에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그 소년에게 보내는 글로 연습장을 채우며 행복해 하기도 하고,
초등학교에서 한번도 못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나를 그소년에게 알리고 싶어 열심히 공부해 운동장 조회시간에
우등생으로 제이름이 발표될 때도 있었습니다.
졸업할 때 즈음... 그 소년에게 1년동안 써왔던 연습장편지들을 친구를 통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식했지만, 수줍었기에 한번도 가까이서 본적도 없이 헤어졌습니다.
고등학교때 그소년에게서 편지 한통이 왔었고,
그가 군대에 있을 때 한번 만나자는 전화가 왔었고,
나갔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기 일주일전에 전화가 왔었고,
이제 결혼을 하니, 전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먼사랑은, \"때때로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주전 중학교친구로부터 그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나를 궁금해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시 망설였지만, 친구와 같이라면 한번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내 삶에 비타민이 될 것 같아 친구에게 같이 만나자고 했습니다.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한껏 멋을 냈습니다.
고급스럽게, 심플하게, 커리어우먼답게, 지적이게.......
그소년도, 그를 가슴에 새겼던 나도 말이 없고, 내성적이었기에...
서로 대화를 잘 이끌어갈지...걱정도 되고..어색해지면 어쩌나..또 걱정이었지만,,,
못지않게 그 소년이 어떻게 변했을지...
요즘 설레일것이 없고, 궁금할 것이 없는 건조한 삶에 살짝 핑크빛 감정이 돌아
행복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빌딩밖에서 친구와 나는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떻게 변했을까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채웠습니다.
친구가 왔다! 하고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파란 1톤트럭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달려갔습니다.
그가 타라고 합니다.
도어를 여니, 안에 흙먼지가 가득했습니다.
부끄러워서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그는 추리닝을 입고 있었습니다.
대형까페에 들어갔습니다.
1미터도 안되는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본적이 그날 처음이었습니다.
노란 브릿지가 머리 사방에 있었고, 뒷목에는 꽁지머리를 묶기까지 했으며,
얼굴 입가엔 크게 불뚝 튀어나온 사마귀가 있었습니다.
하는 말은 어떤지요?
할말이 없다고..수줍어하면서 그는 연신 담배를 피워물었고,
옆자리는 피로연을 하는 신혼부부팀이 시끄럽게 떠들며 신랑은 맥주병을 거시기에 대고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온 한마디...
\"잘 있었어유?
지금 섬에 있는디, 볼라고 막 왔어유~.\"
아~ 정말 깬다..깨고도 또 깬다.
맥주병이 벽에 세게 부딧치는 것처럼 아주 확 깬다...
친구가 화장실을 갔을 때, 우리 둘은 정말 머슥했습니다.
성격상 둘다 말이 없기도 했지만, 내 첫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이렇게 예의가 없고, 성의가 없는 엉뚱한 사람이었나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감에
무표정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래도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에...
그때 왜 나오지 않았어요? 했더니, 일이 있었서 못나왔다 합니다..
역시나 아무 감동이나 애절함이 느껴지지 않는 멘트였습니다.
그자리에서 뜨고 싶은 맘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창회모임을 핑계로 일어섰습니다.
그놈도 간댑니다.. 우리와 나이는 같지만,
1년 늦게 들어온 그놈도 은사님들을 초대한 20주년 동창회행사에
같이 간댑니다. 정 가고 싶음 집에 들어가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오랬더니,
괜찮다고 우지직하게 고집을 피웁니다..
나중에 그놈이 없는 자리에서 친구에게 역시 첫사랑은 만나는게 아니랬는데, 진리구만....
옛추억을 아련하게 회상하며..아기자기하게 이야기하고팠는데,
모습을 보니, 날 만나러 오겠다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그놈이 꾸미는 것이나 외모에 대하여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생각은 순수하고 착한놈이니,
그낭친구로 지내라 합니다.
그담날..엄마집에서 내집으로 떠나는 날,,,
그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잠깐 들러서 고구마 좀 가져가아~ 내가 고구마농사 짓잖여~어. 먹고 싶을때마다 말혀어~
이렇게 만나고 연락헌게 얼마나 좋아아~ 집에 조심히 잘가아~\"
\"미안하다, 엄마 김장 담그는 거 돕느라, 들를시간 없을 것 같아.\"
\"그럼 택배로 보내주께에~. 주소 보내주어~.\"
이틀후, 고구마상자가 두박스나 배달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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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가까이서 볼수 없던 먼 발치의 사랑이었던 내 10대때 첫사랑...
교정벤치에서 오늘도 오지 않는 소년을 애타며 쓸쓸히 교문을 나서게 했던 내 첫사랑..
만나면...내가 그때에 그랬었노라고 같이 수줍게 추억하고팠던 내 첫사랑....
20년만에 만난 첫사랑이 내게 선물을 했네요..
고구마 두빡스!!
소년이었던 그가 몇시간만에 그놈이 되었네요.
난 역시나 남자복이 없는 사람인가봐요...
다시 무미건조한 삶으로 돌아갑니다.
가슴에 난 구멍으로 바람이 쌩~ 지나갑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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