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괜시리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적당히 파랗고, 조금은 추운 듯하여 끌어당긴 이불 속은 한없이 포근하다..
보통은 아이랑 신랑이 부산스럽게 나가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식탁 정리를 하고 빈그릇을 씻고 청소기를 돌리고 ....어느새 점심 때가 되면 대충 있는 거 꺼내먹고 기껏 여유부리는 날은 커피 한잔 타서 컴퓨터 앞에 앉아 홈피도 관리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웹서핑을 하는 정도이다.
그런데....오늘은 그 모든 일을 팽개치고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그냥 하루 농땡이 치고싶었고 나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침대에서 바라보니 열린 방문 너머 싱크대에 설겆이 안하고 쌓아놓은 그릇들이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보아넘길만하다.....더 누워있어도 될 것같다..
누워서 TV를 켜본다..그동안 못봤던 미니시리즈들이 줄줄이다. 내가 좋아하는 다큐도 한 프로 떼고, 중화TV에서 방송하는 드라마도 한 편 본다. 어느새 점심시간..
나를위한 특제 라면을 끓인다..계란 하나 탁~풀고 파 송송 썰어넣고..음~~
입가심으로 사과 하나 깎아 먹고 은은한 국화 차 한잔 마시고 나니 그제서야 기운이 난다.
시계는 오후 두시...어느새 아이 올 시간이 다되어 간다.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라디오 볼륨을 높여놓고 쌓였던 설겆이를 한다.
베란다 가득 놓여있는 화분들도 자기들을 좀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귀찮다고 시든 잎이랑 늘어진 가지정리를 차일피일 미루어 놓았는데 더 이상 미루기 힘들겠다.
내년 봄을 위해서 적당히 전지도 해줘야할 것같고 시든 잎이며 벌레 먹은 잎도 정리하고 어느새 자기가 주인인양 화분을 차지하고 있는 잡초들도 뽑아주고 그동안 내버려둔게 미안해서 부지런을 떨었다....그런데 아뿔사...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던가....너무 열심히 화분정리를 하다가 그만 시든 잎인 줄 알고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 줄기가 이제 막 솟아나는 꽃대였던 것이다...
이런이런....너무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서 잠시 어쩔줄을 모르고 아까워했다.
몇 년 전, 친정아버지가 가져다 주신 화초였는데 처음보는 화초였다. 잎이 연꽃 잎처럼 크고 넓적한데 몇 년이 지나도 꽃이 피지않아 아파트라 그런가보다하며 기다리다 포기한지 오래였었다. 그런데 이렇게 예고도 없이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니...
자른 줄기를 버리려다 무심코 들여다보니 국화꽃봉오리처럼 동그랗게 맺어있는 걸 보고서야 그게 꽃대라는 걸 깨달았다. 이 얼마나 낭패인지...
하루를 늘어지게 보낸 여유 뒤끝이 너무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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