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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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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리나라 2007-10-26


 “저어……, 시간이 넘은 것 같은데…….”

 곁눈질을 하며 책상 앞에 앉은 사람에게 조심히 말을 건넸다. 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은 그 사람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톤을 높였다. “기다려!”그 말뿐이었다. 표정 없는 얼굴에 사무적인 태도의 그를 이곳에서는 ‘간수’라고 불렀다. 나는 반박할 말도 잊은 채 멍하니 의자에 지칠 대로 지쳐 쉰내가 나는 몸을 기댔다.1분 1초가 왜 이리 길게 느껴질까. 시계를 바라보는 눈의 신경들이 곤두서고 긴장으로 미세한 떨림이 생겼다. 손에는 땀이 배어 나와 끈적거리며 기분 나쁘게 축축했다.

 텅 빈 사각의 방에는 의자 하나와 헉헉대며 겨우 시늉만을 하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창문도 하나 없이 꽉 막힌 공간에 ‘째각’거리는 시계 소리는 소음처럼 시끄러워 신경들을 긁어댔다. 언제부터인가 입은 옷 위로 땀들이 튀어나와 여기저기 지도를 마구 그려대고 있었다. 빨리 나갈 수만 있다면 이 정도의 더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저 문만 나서면 자유인데 열 발자국도 안 되는 저 문을 나서기가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목이 터져라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팔딱팔딱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움직여도 보고 싶었다.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추고만 싶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찜통 같은 더위 속에도 지쳐 있던 세포들은 잠의 유혹을 떨치질 못했다. 더위에 늘어진 닭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구석에서 쪼그리고 자고 있던 자신이 한심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그 사이 책상 앞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당황해서 달려가 물었더니 금방 교대해서 서류가 덜 정리되었다고 또 기다리란다.

 순간, 다리에서 힘이 풀리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 정말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목 끝에 다다랐던 울음을 차마 꺼내 놓을 수 없어 이를 악무니 목에 커다란 것이 걸렸는지 온몸이 아파 온다. 흐려지는 시야를 애써 머리를 흔들며 눈 안에 가득한 눈물 덩어리를 손으로 쓱 훔쳐내었다. 현기증이 모여들며 자꾸만 몸이 가라앉으려 해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을 놓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 생각에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삶이란 놈은 어쩌면 그렇게 나와 불협화음을 이루었는지……. 평생 만날 수 없는 수평선처럼 바라만 보며 서먹서먹해 다가 설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긋나 버린 걸까.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머릿속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서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나는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런 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삶에 끼어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별 다른 느낌 없이 작별을 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도시라는 문명 속으로 하나 둘씩 날개를 폈지만 나는 고향의 흙 속에 뿌리를 내렸다. 마음속에는 날아간 너희들보다 뿌리를 내린 내가 나중에는 훨씬 큰 열매를 맺으리라는 큰 꿈이 있었다. 땀 흘린 만큼 돌아오는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며 새벽닭 울음에 논을 갈고, 밤 별들의 자장가에 하루를 마감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몸이 무너져 내릴 만큼 힘들었지만 모여 가는 땀의 결실들이 통장에 차곡차곡 불어가는 재미에 피곤도 잠시 제쳐 두고 젊음을 땅에 투자했다.

 모은 돈으로 젖소를 사기 시작했고, 조금씩 숫자가 늘어갔다. ‘이제는 조금 여유롭게 살 수 있겠지.’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못하고 자만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신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시련을 주셨다.

 분유파동과 소 값 폭락으로 하루아침에 제대로 힘 한번 못 써보고 만신창이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과수원에 수확해 놓은 배를 몽땅 도둑맞고 말았다. 1년 농사의 결실을 세상에 내놓기도 전에 밤사이 창고가 텅 비어 버리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피와 살과 땀으로 이루어진 그 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맛있게 먹는 배이지만, 나에게는 꿈의 전부이고 희망의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출발선에 서 보지도 못하고 실격처리 되었으니 얼마나 허탈하고 기가 막힐 수가!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야 한단 말인가. 현실을 받아들이자니 억장이 무너져왔다.

 시련의 파편들을 주워 담기도 전에 IMF라는 거대한 회오리는 마지막 남은 꿈마저 휩쓸고 가 버렸다. 무너져 버린 꿈들은 술과 친구가 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었다. 꿈과 희망이 깨져 버린 삶은 의미가 없어졌고, 하루하루가 지옥보다 두렵고 세상에 나서기가 무서웠다. 실패자의 낙인을 찍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다시 일어설 용기마저도 좌절의 술잔을 들게 만들었다. 지독하게 나약해진 20대의 청춘은 그렇게 버려지고, 쌓여가는 술병들과 함께 영혼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눈물도 내 방황을 막을 수 없었고, 세상을 원망하며 철저히 어둠 속에 나를 가두어 버렸다. 정신의 철창은 자물쇠까지 채워져 외딴 섬에 유배되어 마지막 남은 빛마저 꺼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자식같이 키워 오던 생명을 죽일 수가 없어 오래된 습관처럼 새벽이면 먹이를 주고 젖을 짰다. 내 몸에 밴 젖소에 대한 애정은 술에 취한 정신도 어쩔 수가 없었는지 발길을 그곳으로 가게 했다.

 그러던 겨울 새벽,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소의 상태를 살펴보다 그만 소 뒷발에 얼굴을 차여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공격하던 얼굴 없는 영혼들. 발버둥 치며 살기 위해 매달렸던 나는 밧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입으로는 차라리 죽었으면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삶에 대한 강렬한 바람이 고개를 들어 자꾸만 빛을 향해 자맥질을 해 댔다. 누군가가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나를 끄집어내려고 소리를 질렀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주술사의 주문처럼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다가와 말했다. ‘넌 꼭 살아야 한다!’

 눈을 떴을 때 의사는 기적이라 했다. 수십 군데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라는 걸 어머니가 우기고 우겨 이곳저곳을 발이 닿도록 찾아다녀 수십 번의 수술 끝에 살린 것이라고 했다. 살아난 건 정말 기적이라며 녹음기처럼 계속 떠들어 댔다. 그러나 얼굴 한쪽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어색했다. 소의 발이 눈 쪽을 가격해서 여러 차례의 성형수술로도 눈의 모습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의식속에 손이 저절로 눈으로 갔다. 움푹 패여 버린 눈 주위로 슬픈 햇살이 몰려들면 벌떡 일어나 유리창을 커튼으로 가리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어둠이 훨씬 편했다.

 병원 생활 1년 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다. 낯선 모습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서서히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모든 것들을 삐뚤게 바라보는 눈이 머릿속에 생겨 버렸다. 나는 내 삶에서조차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했다.

 퇴원 후 아무 생각 없이 농사만 지었다. 개미처럼 일하고 자고 또 일했다. 흙 속에 발을 담그고 세상과 등을 돌렸다. 자신이 없었다. 누가 농사지으며 사는 젊은 병신을 좋아할까! 그때 왜 도시로 훨훨 날아가지 못했는지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늙어 가는 어머니를 위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당신의 갈라 터진 손을 쉬게 해드려야 하는데 가슴만 답답했다. 이미 너무도 먼 길을 어긋난 채 걸어왔다는 현실에 무릎을 꿇고만 싶었다. 하루가 다르게 굽어져 가는 허리로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으로 겨울 찬바람이 지나갔다. 막내아들의 목숨을 살리겠다고 머리가 흰 노인네는 버선발로 젊은 의사의 가운을 잡고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차라리 당신을 데려가고 제발 아들을 살려달라고. 살만큼 산 당신을 데려가라고.

 가정을 이루어 자식 놓고 사는 것 보고 눈감는 것이 소원인 당신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결혼뿐이었다. 선배의 소개로 여자를 만났다. 착하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아 회사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내 모습을 이해하고 아껴준 유일한 여자였다. 흉한 얼굴을 보기 싫다 하지 않고, 살다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 했다. 마음이 올바르고 거짓이 없는 성실함이 좋다며,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흠을 가지고 산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인생의 동반자가 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농사꾼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아 탄로가 났고, 듣지 않았으면 했던 말들을 듣고 말았다.

 “난……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기 싫어요. 도시에서 가난하게 사는 게 시골 가서 농사꾼의 아내가 되는 것보다 좋아요. 우린…… 인연이 아닌가 봐요.”

 그날 밤, 내 정신은 미쳐 버렸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도 이보다 아프지는 않으리라.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채 운전대에 손을 얹었다. 죽음이 오히려 편하고, 답답하고 병신인 얼굴쯤 세상에서 사라져도 괜찮을 듯 했다. 나 하나 없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구라는 무대 위에 작은 조연배우 하나 잠시 나왔다 사라지는 것일 뿐.

 얼마쯤 왔을까.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려 보니 앞차의 뒷부분에 내 차가 부딪혀 찡그린 얼굴로 연기를 내고 있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음주운전을 한 나는 감옥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냉동 생선처럼 얼어 버린 시간을 녹여야만 했다. 밖에서는 몰랐던 자유의 소중함에 몸서리를 쳤고, 날아다니는 작은 새를 보며 부러워했고, 같은 하늘인데도 담하나 사이의 하늘은 기운 잃은 푸른빛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지루했던 기다림의 끝이 바로 오늘인데, 간수는 나갈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뭐 마려운 강아지 모양 안절부절 기다린 안타까움의 시간이 지난날의 상처들을 다 끼워 맞출 무렵,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문이 마술처럼 열렸다.

 “따라 오시죠.”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쥐가 났다. 드디어 자유를 향해 걸을 수 있게 되는가 보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문을 나오니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면회를 못 오게 했으니 오늘이 당신을 보는 첫날이었다. 눈가에 아까부터 고이기 시작한 물기를 애써 닦으며 어머니를 보았다. 간간히 보이던 검은 머리가 눈을 씻고 찾아도 안 보일 만큼 하얗게 변해 버린 머리카락이 고생의 시간을 대신 말해 주었다. 이마에는 몇 개의 골이 더 패여 늙은 세월을 더 아프게 보이게 했다. 파란 꽃무늬 셔츠에서 땀 냄새가 그리움으로 흘렀다.

 “고생 많았다. 이거 빨리 묵으레이.”

 까만 봉지를 내밀며 어머니는 등을 돌리셨다. 얼마나 오래 여기서 기다리신 걸까. 두부가 더위에 상해서 봉지 안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입 안 가득 두부를 넣었다. 속에서 난리를 쳤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조바심에 목이 타도록 기다렸을 당신을 생각하니 맛이 간 두부도 넘길만했다.

 오전에 나온다던 사람이 밤이 되어 나왔으니 늙은 어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저만치 걸어가는 당신을 따라 어둠이 내려앉은 산길을 걸었다. 버스는 끊어진 지 오래고,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혹시나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어도 더 속력을 내며 꽁지에 불붙은 닭처럼 내뺐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빡빡 깍은 머리로 손이 갔다. 교도소로 이어진 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으니 말을 안 해도 그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 터였다. 버스가 다니는 길까지 나가려면 적어도 한 시간을 걸어야 하는데, 산길을 걸으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더운 날씨에 지쳐 있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와 나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걷고 있었다. 앞서 가는 당신은 말없이 앞만 보며 가쁜 숨을 내쉴 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며 걷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의 뒷모습을 보았다. 순간,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자꾸 자꾸 뜨거운 것이 흘렀다. 예전에 선배가 부모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면 그때는 진정으로 어른이 되는 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 어깨에 얹혀 있는 서러움의 무게들을 왜 몰랐을까. 그저 어머니는 자식에게 모든 걸 다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알고 살아 왔다. 지금까지 너무나 어리석게 살아왔다는 걸 이제야 알다니,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살은 모두 자식에게 주고 껍데기만 남은 등으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며 날아갔다.

 “이놈의 길. 참 길기도 하네.”

 한숨처럼 허공에 내뱉고는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어머니와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조용한 산길에 웬 불청객(?)이냐며 졸고 있던 보름달이 눈을 비비며 내려다보았다. 지나온 길 위에는 눈물의 발자국들이 삶의 깨달음으로 자꾸만 자꾸만 쌓여가고 있었다.


 잘 있다가 나왔다며 술 한잔 하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갔더니, 기울이는 술잔가득 눈물을 마시며 친구가 내게 해준 이야기이다.

 그날 흘린 눈물로 자신은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세웠단다. 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를 등에 업고 자기가 농사지은 밭에서 팔순잔치를 하는 거란다. 그때까지 예쁜 가정도 만들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 친구의 눈가에 가득했던 아름다운 이슬이 보기 좋았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면 어른이 된 것이라던 선배와 한자리에 모여 미래를 위하여 건배를 했다. 자아, 우리도 어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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