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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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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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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BY 둘리나라 2007-10-22

  


 “끼이이익”

 더위로 지쳐있던 여름 오후가 일순간에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대문 밖에서 자전거 멈추는 소리가 들려 얕은 잠이 들었던 나는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혜빈아, 이거는 아이들 삶아주고, 요거는 된장찌개 끓일 때 넣어 먹어라.”

 박스를 들고 대문을 여시는 아버님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계셨다. 새까맣게 타 버린 얼굴에서 땀이 방울방울 흘러 등을 적시고 있었다. 박스 안에는 고구마와 감자가 사이좋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친구 분이 하시는 감자 장사도 도와주고 용돈도 번다며 새벽마다 농수산물 시장으로 출근을 하셨다. 덥다고 말렸지만 집에서 놀면 뭐하냐며 나가시더니 팔고 남은 호박이며 감자를 소중히 챙겨 가져다주시는 것이었다. 피곤하실 텐데도 자식들 입에 들어갈 거라고 베게에 피곤한 몸을 눕히지도 않고 바람도 더위를 먹어 녹초가 된 거리를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이다.

 여름 오후는 사람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린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개미 새끼 한 마리 다니지를 않는데, 뜨거운 김이 확확 나는 아스팔트 위를 환갑이 넘은 다리는 그렇게 페달을 밟아 30분을 오고서야 의자에 앉을 수가 있었다. 시장에서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거지만, 어디 부모 마음이 그런가. 옷을 뚫고 내리꽂는 화살 같은 햇살도 깊은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버님, 더우시죠? 시원한 냉커피 타 드릴게요.”

 “오냐, 오냐.”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치는 당신에게 며느리는 얼음 몇 개 띄운 커피 한 잔 드리는 게 고작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아버님의 주름살이 선풍기 바람으로 날린 머리카락들 속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이제는 편히 쉬면서 자식들의 효도와 손자들의 재롱에 즐거워하실 나이인데 아직도 사글셋방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하며 자식들이 잘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만 하시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30년을 홀로 자식들 키우며 살아오신 어려움과 고통도 모자라 가난까지 안겨 준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어이구, 내가 말라죽겠다. 말라죽겠어. 큰아버지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잠이 안 온다. 잠이……!”

 아버님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며 큰아버님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두 달 전, 서울에 계시던 큰아버님이 아버님 댁으로 오셨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내도 자식들도 모두 큰아버님에게서 등을 돌려 갈 곳이 없어져 동생인 아버님에게 마지막을 의지하러 오신 거라 했다. 평생 혼자 사는 것에 길들여진 아버님에게 큰아버님은 불청객(?)일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 텔레비전도 여기 틀어라 저기 틀어라. 술이라도 드시는 날에는 밤이 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 내며, 큰어머님을 찾아오라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 고개를 절래절래 젓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신경이 쓰이는데 여러 가지 일들로 복잡하게 하니 속이 많이 상하신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본인도 며느리가 불편해할까 봐 손수 식사며 청소를 하시는데, 큰아버님을 돌봐 달라고 할 수는 없으셨다. 어쩔 수 없이 형님과 살게 된 그날부터 혼자만의 가슴앓이가 시작되고 만 것이었다.

 “나 혼자 사는 것도 힘이 들어 억지로 하루하루 버티는데 큰아버지는 내가 리모컨인 줄 아는지 눈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가만히 앉아 전부 시키기만 하니……. 오죽했으면 아이들도 싫다 하고 부인도 싫다고 했을까.”

 짜증 섞인 불만은 열을 뿜어내는 선풍기 바람과 함께 방 안에 가득 찼고, 갈팡질팡 날아다니는 파리의 날개에 내려앉았다. 파리채를 들고 힘껏 내리치는 아버님의 손끝에서 비명도 없이 죽음을 맞은 파리는 아버님의 불만도 함께 가져갔다. 금방 화제가 파리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한숨 돌리시고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뒷모습에 노을이 내려앉았다.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중심을 잡으려고 몇 번이나 이리저리 돌리는 걸 보며 혹 당신 인생의 비틀거림을 바로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건 아닌 가 코끝이 아파 왔다.

 ‘우리라도 좀 잘살면……. 자식들이라고 있어 봐야 전부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힘겨워 하니 당신 속은 가을 들판처럼 허허롭지 않으실까!’

 두 분 사이가 젊었을 때 결코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듣고 나니 더욱 아버님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예전에 아버님의 사업이 잘못되어 큰아버님께 조금만 도와 달라고 울며 매달렸지만, 아이들과 나가 죽으라고 호통을 치며 끝내 도와주지 않았단다. 결국 실패하여 당신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지긋지긋한 가난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미움이 오직 할까. 차라리 남이라면 덜할 텐데.

 “그렇게 잘나갈 때 조금만 도와줬으면 지금 이렇게 살지는 않아도 되었을 텐데. 자식들과 울며불며 살아올 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죽을 때 되어 갈 곳 없으니 혼자 사는 나를 찾아와. 정말 염치도 없다.”

 가슴에 응어리진 아픔은 시간이 흘렀어도 앙금처럼 남아 생각만으로도 서러운데, 늙고 병들어 나타난 형이 뭐가 그리 반갑겠는가.

잘해주었던 사람도 불쑥 나타나 조용했던 삶에 끼어들면 싫은데 말이다.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먹고 싶다는 반찬에 따뜻한 밥을 지어 차려 드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여자들도 어려운데 하물며 환갑을 넘기신 분이 칠순이 되어 가는 형님의 밥상을 봐 드리자니 힘이 부쳤을 것이다.

 “나이 들어 함께 사는 자매는 있어도 형제가 한 방에서 사는 게 어디 흔한 일이가. 너 보기 창피해서……. 무슨 망신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났다. 나이 든 노인 두 분이 얼굴만 바라보며 하루 종일 무얼 하실까.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홀아비 두 명이 옛날 같으면 호롱불 밑에서 이를 잡으며 보냈겠지만, 요즘은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주며 밤을 지내시는지.

 탁자 위에 놓인 컵에서 얼음이 녹고 있었다. 단단했던 얼음도 더위 앞에서는 부드러운 물이 되는데, 아버님의 가슴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녹아내리길 빌었다. 방울방울 맺힌 물들을 두 손으로 감싸니 시원함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사랑도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있어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겨울에 얼음이 필요 없듯, 지금 더위에는 얼음이 최고이듯, 당신의 사랑도 꼭 필요한 그때 움직여 준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큰아버님과 마음을 열고 지내실 것이다.

 그날 밤. 아이들 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낑낑대며 들고 택시를 탔다. 큰아버님이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돌려 고장이 나 돈도 없는데 사게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보던 것을 드리려고 나선 길이었다 .

 “아버님. 저희 왔어요.”

 두 분이 사시는 방문을 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아버님이 땀을 온몸으로 흘리며 큰아버님의 발을 씻겨주고 있었다. 그렇게 밉다고 하시더니…….

 “큰아버지가 몸이 불편해서 면도하고 발 씻겨 드린다.”

 그 모습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따스함이라 쓸까, 아니면 훌륭한 노래를 들을 때 저절로 흐르는 눈물이라 쓸까, 시간이 정지한 듯 나는 머릿속 사진기로 그 모습을 찍고 말았다.

 텔레비전을 설치해 드렸더니 큰아버님은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리모컨으로 이곳저곳을 눌러 보셨다.

 “이제 형님 낮에 나 없이도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수건으로 발을 닦아 드리며 아버님은 입가에 미소를 보이셨다.

수많은 텔레비전의 채널처럼 변화무쌍했던 아버님과 큰아버님의 인생. 가족 드라마처럼 가슴 따뜻했던 일들도, 만화처럼 황당했던 일들도, 뉴스처럼 많았던 사건들도 따지고 보면 남들의 눈에는 브라운관 속의 일들이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남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 남은 건 두 분이 가슴을 열고 텔레비전 프로의 시작과 끝처럼 ‘화면 조정’을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조정해서 좀 더 나아진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큰아버님이 불편해하실까 봐 서둘러 나오는데 불 꺼진 골목까지 따라 나오신 아버님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밉다 밉다 해도 내 형제고 핏줄인데 어쩌겠노. 나 아니면 누가 반갑다 하겠노. 마누라도 자식들도 싫다며 등을 돌렸는데 내까지 그러면 상처받아 저 양반 죽을지도 모른다. 내 가슴에 맺혔던 아픔은 세월 속에 묻어 버렸다. 나이 드니까 감정도 무뎌지더라. 혜빈아, 너는 내 마음 알제.”하며 눈가가 젖어왔다.

 가슴 끝에서부터 따스함이 차오르며 눈물이 났다. 우리는 잘하셨다며 웃었고, 기쁘게 집에 돌아왔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를 않았다.

형의 발을 씻으며 아버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발가락 하나하나를 닦으며 자신의 마음도 닦아 내신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삶이라는 단어 속에 세월은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채 살아 있는데, 가끔은 잊음으로 치유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오늘 아버님에게서 또 한 가지의 인생을 배웠다. 용서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삶인지를. 뒤돌아보면 가슴 아픈 기억들도 세월 속에 묻고 비워 버리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오늘처럼 아버님의 주름살이 멋있어 보인 적이 없었다. 이 밤, 두 분은 손을 잡고 포근한 잠에 빠졌을 것이다. 아무런 욕심 없이 그저 함께 있기에 좋았던 어릴 적의 냇가로 달려가는 꿈을 꾸고 계실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 작은 이정표 하나 세우고, 하늘을 보고 껄껄 웃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두 분의 하루하루가 서로에게 사랑만을 주는 나날들이 되기를 빌며 더위에 짜증을 내는 선풍기를 끈다. 선풍기도 쉬어야 내일 또 힘을 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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